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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조선 운동사 -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역사
한윤형 지음 / 텍스트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1) 역사가가 예언자의 역할을 하던 때가 있었다. 진정한 역사가는 역사의 참된 흐름을 읽고 역사가 나아갈 바/ 나아가야 할 바를 예언해야 한다고 규정되곤 했다. 근대의 가장 위대한 역사가 중에 하나였던 마르크스는 그러한 의미에서 가장 위대한 예언자로 여겨졌다. 물론 이제는 더 이상 대문자 역사를 믿지 않는 시대가 되었으므로 역사가는 이렇게 규정되지 않는다. 지금은 조금 상황이 달라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르크스는 좌파에게서조차 거짓 예언자로 몰리기까지 했을 정도다. 그렇다면 이 파편화된 시대에서 역사가의 역할은 무엇일까. 실패한 운동으로서의 안티 조선이라는 키워드로 지난 십여년의 역사를 읽어내려는 한윤형의 시도를 읽으면서 나는 이런 물음을 떠올렸다.
2) 87년의 민주화 운동이 삼당합당을 기점으로 그 동력을 상실한 후에 김영삼 정권의 등장과 언론의 권력화는 안티 조선 운동의 등장 배경이 되었다. 언론 권력의 피해자인 최장집이 주장하는 것처럼 언론 개혁은 민주주의의 정립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겨졌다. 수십년 전에는 군사정권이 타도의 목표였다면 지난 십여년은 조선일보로 상징되는 기득권 언론이 그 목표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목표마저 변하게 되었다. 삼성으로 상징되는 자본 권력이 사회의 전방위를 장악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언론마저 그들의 부스러기를 주워먹는 개가 되었다. (한윤형은 조선일보가 삼성의 하수인이 아니라고 했지만 조선일보는 결정적인 순간에 삼성에 순응할 수 밖에 없다.) 이제는 안티 삼성을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외쳐지고 있다. 그런데 과연 삼성의 이씨 가문이 사라지면 사회는 나아질까? 물론 내가 삼성을 비판해야 하는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 사회를 망치고 있는 진정한 실체를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과거에는 이 나라에 1인 1표만 정립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87년이 지나고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친 이후에도 이 희망은 정당하다고 볼 수 있을까?
3) 많은 이들이 생각하듯이 민주주의가 올바르게 지탱되기 위해서는 공론장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는 공론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공론장의 역할을 자임하는 언론들은 이미 그 역할을 배반한지 오래다. 이런 현실에 대한 경험적 증거들은 이 책에도 무수히 기록되어 있다. 이런 현실에서 각하와 같은 분들이 소통을 이야기하는 것은 기만에 불과할 것이다. '이 미친 세상'이라고 노래한 어느 밴드의 곡이 금지곡이 된 것처럼 미친 현실을 미쳤다고 말할 수 없는 곳이 한국 사회다. 나 역시 의과대학이라는 기형적 공간에서 소통 불가능이라는 현실에 절망해왔다. 나는 한윤형의 책이 그 닫혀버린 공론장을 비집어 열어낼 수 있는 자그마한 망치와 정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