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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위험한 생각
대니얼 C. 데닛 지음, 신광복 옮김 / 바다출판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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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칼 바르트(Karl Barth)와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는 20세기 개신교 신학에서 계시(啓示)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보여준다. 바르트는 계시를 인간이 스스로 도달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적 자기계시로 이해하여, 하나님께서 자발적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시는 사건으로 파악한다. 반면 판넨베르크는 바르트 이후 시대에 등장하여, 계시는 역사 속에서 객관적으로 드러나고 검증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바르트의 계시론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였다. 본 글에서는 먼저 바르트가 계시를 하나님의 주권적 자기현현으로 이해한 방식과 핵심 내용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판넨베르크의 주요 비판 논점을 정리한다. 이어서 판넨베르크가 왜 계시가 역사적 과정 속에서 검증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지 그 신학적 배경과 의미를 분석한다. 이러한 논의에는 두 신학자 간의 학술적 대화와 논쟁이 담겨 있으며, 관련 주요 참고문헌도 함께 제시한다.

칼 바르트의 계시 이해: 하나님의 주권적 자기계시

칼 바르트는 계시를 철저히 하나님의 주도적 행위로 보았다. 그는 인간의 종교적 노력이나 이성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알려주실 때에만 참된 하나님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 바르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계시의 주체이자 대상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시는 **주어(主語)**이며 동시에 계시되는 객체이고, 그 계시 행위 자체도 하나님이다​

. 바르트는 이를 삼위일체적 용어로 설명하는데, 하나님 아버지는 계시의 근원인 **계시자(揭示者, the Revealer)**이고, 예수 그리스도 성자는 계시의 **내용(揭示, the Revelation)**이며, 성령은 그 계시를 우리에게 실현시키는 **계시의 매개(揭示性, the Revealedness)**라고 보았다​

. 이처럼 계시는 온전히 하나님께 속한 사건으로서, 하나님이 자유롭게 그리고 주권적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바르트의 계시관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계시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완전히 자신을 계시하셨다고 강조했다​

. 성경은 그리스도에 대한 인간의 증언이지만,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 말씀 선포를 통해 하나님이 현재적으로 말씀하신다고 보았다​

. 따라서 계시는 항상 하나님의 주도권 아래 있는 사건이지, 인간이 객관적으로 취급하여 분석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다​

. 바르트는 “하나님의 계시는 역사(歷史)의 한 속성이나 일부가 되지 않는다”고까지 말했는데​

, 이는 하나님이 역사라는 매개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실지라도 **본질적으로 하나님은 역사 속 사물들과 동일시될 수 없을 만큼 초월적(other)**이라는 뜻이다​

.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라는 계시 사건은 일반 역사가 다루는 검증의 통제 아래 놓일 수 없다고 바르트는 보았다​

. 요컨대 바르트에게 계시는 인간이 심판하거나 증명하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베푸시는 은혜의 사건이며, 신학은 오로지 이 계시에 “복종”하여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인간이 다른 경로로 하나님을 알려는 시도는 하나님의 자유와 은혜를 거부하는 불순종의 표현이라고까지 경고할 정도로, 바르트는 계시의 일방성초월성을 철저히 옹호했다​

.

판넨베르크의 비판: 계시의 역사성과 합리성

판넨베르크는 바르트 이후 세대의 신학자로서, 바르트의 계시론적 독단이 현대인에게 신앙의 진리성을 설득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바르트식의 “말씀 신학”(Theology of the Word)이 교회를 지성사회로부터 고립된 울타리(ghetto) 안에 가두며, 무신론의 도전에 답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 현대인 다수에게 “하나님”이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한 소리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그저 믿으라는 식의 신학은 설득력을 잃는다는 것이다​

. 판넨베르크는 따라서 신학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제시해야 하며​

, 최소한 신앙이 순전히 주관적 체험이나 결단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 그렇지 않으면 신자들조차 자기 믿음이 허상에 불과한 것 아닌지 의심에 사로잡힐 수 있다고 우려하였다​

.

판넨베르크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계몽주의의 이성적 비판 전통과 맥을 같이한다. 그는 이성적 근거에 의존하지 않는 긍정 신학(positive theology of revelation)은 결국 “주관적인 의지의 행위나 불합리한 믿음의 도박”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바르트처럼 계시를 오직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으로 간주하여 인간 이성과 경험을 배제하면, 남는 것은 주관주의나 **맹신(fideism)**뿐이라는 것이다​

. 판넨베르크는 바르트의 계시론이 객관성을 가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아무 외적 정당화도 없는 신앙 모험의 비이성적 주관성”에 기초한다고 비판했다​

. 쉽게 말해, 바르트의 하나님 말씀 신학은 겉으로는 거룩하고 객관적인 진리를 말하는 듯하지만, 결국 믿는 사람 마음속 결단 외에는 근거가 없지 않느냐는 날카로운 지적이다​

. 판넨베르크는 이런 방식의 신앙은 이성 간 대화(intersubjective dialogue)를 가로막고 기독교 신앙을 사회적 담론의 장 밖으로 밀어내며, 신학 자체를 **고립된 방언(glossolalia)**처럼 만들어버린다고 우려했다​

. 실제로 그는 바르트의 “위로부터” 계시 노선이 신학을 “절망적이며 자기유폐적인 고립(higher glossolalia의 고독)”으로 이끈다고 경고하면서, 이러한 길을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 요컨대 판넨베르크에게 바르트의 계시론은 근거 없는 주장으로 보였고, 이는 신앙을 독단적 영역에 가두어 비신앙인과 소통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판넨베르크의 계시론: 역사적 검증 가능성과 신학적 의미

판넨베르크는 바르트와 달리 계시의 역사성(historicity)을 신학의 중심에 놓았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가 구체적 역사 사건들을 통하여 일어난다고 보았으며, 따라서 그 사건들은 역사적 연구와 검증에 개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1961년 출간된 《계시와 역사》(Offenbarung als Geschichte) 논문집에서 판넨베르크는 “참된 하나님의 계시는 일시적인 신비체험이나 단순한 언어적 선언이 아니라, 역사적 보도(reportage)와 분석을 통해 간접적으로 파악되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 이는 계시를 오직 성경의 문자나 초자연적 음성에 국한시키지 않고, 역사 일반이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매개가 될 수 있다는 폭넓은 관점이었다. 실제로 그는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이스라엘의 역사에만 제한하지 않고 “모든 역사가 원칙적으로 하나님의 현현을 담지할 수 있다”고까지 말하며, 전 우주 역사의 통일성 속에서 계시를 보려고 했다​

.

특히 판넨베르크 신학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다. 그는 예수의 부활이야말로 하나님의 최종계시의 전조(前兆)이자 세계 역사의 완성에 대한 미리 보기(preview)라고 강조했다​

. 더 나아가 부활 사건은 일반 역사 연구의 통상적인 기준으로도 검증 가능하다고 주장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 이는 20세기 신학자들 가운데 흔치 않은 입장으로, 판넨베르크는 신약 성서의 부활 증언이 역사적 사실로서 충분한 증거를 지닌다고 보았다. 만일 예수 부활이 실제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실이라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계시임이 공적으로 입증되는 셈이다. 판넨베르크는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것은 나의 역사에도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상식적 전제를 신학에 적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그는 현대 신학자들이 계시를 피하기 위해 역사(Historie)와 이야기(Geschichte)를 분리하거나, 초역사적 “구원의 역사”(Heilsgeschichte) 개념으로 역사 비평의 눈을 피하려는 시도를 비판하면서​

, 역사의 통일성객관성을 철저히 존중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러한 접근의 신학적 배경에는 19세기 이상주의 철학, 특히 헤겔의 역사철학 영향이 일부 있다는 평가도 있다​

. 판넨베르크는 역사를 절대정신의 자기전개로 본 헤겔의 틀에서 계시의 보편사적 전개를 사유하려 했고, 궁극적으로 역사 속에서 하나님 존재의 진리가 입증된다고 전망했다. 그의 계시 이해는 또한 종말론적 성격을 지니는데, 그는 최종적인 계시의 완성은 역사의 종말에 이루어지며, 현재의 계시는 그 완성을 향해 미리 앞당겨진(proleptic) 것이라고 보았다. 예를 들어 예수의 부활은 장차 모든 인간의 부활과 하나님의 최종 승리를 앞서 보여주는 사건이며, 최종 종말 때 그 의미가 완전히 밝혀져 모든 이에게 자명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종말론적 관점 덕분에 판넨베르크는 현재 역사 연구로 신학을 개방하면서도, 동시에 신앙의 미래 지향적 확실성을 말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지금은 역사적 가설의 형태로 신앙의 진리를 탐구하지만, 종말에 가서 그 진리성이 최종 확증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계시를 현재 완결된 교리로 보는 바르트와 대조적으로, 계시를 진행 중인 역사 속의 개방된 진리로 보는 판넨베르크의 신학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판넨베르크의 계시론이 지닌 신학적 의미는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그는 계시와 역사를 밀접히 결합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의 공공성을 회복하고자 했다. 계시를 역사적 사실들과 연결시키면, 신앙의 주장들은 공개된 역사 연구의 장에서 검토와 논박의 대상이 된다​

. 판넨베르크는 바로 이러한 비판 가능성이 신앙을 허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당한 토대 위에 세우는 일이라고 보았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에서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다”고 한 것처럼, 기독교 신앙은 사실적 진위 여부에 중대한 의존을 한다. 판넨베르크에 따르면, 부활을 비롯한 계시 사건들은 실제로 일어난 객관적 사실이므로, 이를 합리적으로 입증하거나 최소한 역사적으로 설득력 있게 변호하는 것이 가능하다​

. 이렇게 함으로써 신앙은 사적 경험이나 신비적 직관이 아니라 공적 진리 주장으로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둘째, 판넨베르크의 입장은 신학과 타 학문(예컨대 역사학, 철학) 간의 대화를 촉진한다. 바르트의 계시관 아래에서는 신학이 자기 고유의 언어 게임에 머물 위험이 있지만, 판넨베르크는 신학이 보편 학문성을 가져야 함을 역설했다​

. 이는 현대 세속화된 사회에서 기독교 신앙이 지성을 가진 이들과 소통하고, 무신론자에게도 이해될 수 있는 언어로 자신의 근거를 제시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셋째, 판넨베르크는 계시의 범위를 교회 울타리 밖으로 넓힘으로써, 하나님이 세계 역사 전체의 하나님임을 드러내고자 했다​

.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나 신약 교회의 경험만이 아니라 인류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모색함으로써, 신학을 보다 포괄적인 역사 해석학으로 승화시키려 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신학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지만, 동시에 헤겔식의 거대한 역사 철학에 의존함으로 인한 위험도 내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물론 판넨베르크의 이러한 주장은 신학계에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바르트를 비롯한 신학자들은 계시를 역사적 검증에 종속시키는 접근이 자칫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오류를 반복할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바르트는 1964년 판넨베르크의 주요 저서 *《예수: 신과 인간》(Jesus: God and Man)*을 읽은 후 보낸 편지에서, 판넨베르크의 방식이 자신의 신학과 “매우 다른, 어쩌면 결별된 입장”이라고 평했다​

. 바르트는 판넨베르크가 역사적 예수 연구와 부활의 확률적 해석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역사적 개연성이라는 모래 위에 집을 세우는 것과 같다”고 우려했다​

. 그는 부활에 대한 역사비평 결과는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데, 그렇게 가변적인 토대 위에 하나님 계시의 확실성을 놓는 것은 위험하며 신학의 후퇴라고 보았다​

. 요컨대 바르트는 판넨베르크의 노선을 **“아래로부터의 신학”**으로 규정하며, 이는 위로부터의 계시에 집중한 초대교회 신앙보다 퇴행적이라고 혹평한 것이다​

. 이러한 비판에 대해 판넨베르크는, 역사적 탐구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면서도 계시의 공개성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응답했다. 그는 오히려 바르트 식으로 계시를 폐쇄적 신앙공동체 내부의 문제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자기격리된 신학의 막다른 골목”이라고 반박하였다​

. 이 논쟁은 계시를 둘러싼 신학의 두 길: 곧 신앙의 내적 확실성역사적 합리성 사이의 긴장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현대 신학이 계속 숙고해야 할 주제임을 드러낸다.

결론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와 칼 바르트의 계시론 논쟁은 20세기 신학사에서 계시의 본질과 인식 가능성에 대한 심층적인 토론을 제공한다. 바르트는 계시를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로 이해하여, 계시의 초월성과 독자성을 지켰지만 현대 이성이해와는 단절된 방향으로 나아갔다. 반면 판넨베르크는 계시를 역사적 현실과 접목시켜 신앙의 객관적 타당성을 입증하고자 했고, 그로써 신학을 공적 담론의 영역에 놓으려는 야심찬 시도를 펼쳤다. 그의 주장대로 계시가 역사 속에서 검증 가능해야 한다는 입장은 신학을 사회와 소통하게 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는 한편, 계시의 신비와 초월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는 비판도 동시에 받았다. 결국 이 논쟁은 계시에 대한 이중적 요구—곧 신적 주권성공적 검증성—사이에서 신학이 어떠한 균형을 모색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오늘날에도 신앙의 진리를 증언함에 있어, 바르트가 강조한 계시의 은혜성과 우월성, 그리고 판넨베르크가 강조한 계시의 역사성과 이성적 소통 가능성을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두 신학자의 대화는 우리에게 계시를 하나님의 자기현현이자 역사 속 사건으로 총체적으로 파악하려는 신학적 과제를 상기시키며, 신앙과 이성의 생산적인 만남을 추구하는 데 귀중한 통찰을 제공한다.

참고 문헌:

  • Karl Barth, Church Dogmatics I/1 (Edinburgh: T&T Clark, 1936-1962).
  • Wolfhart Pannenberg 외, Offenbarung als Geschichte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61); 영어판 Revelation as History (New York: Macmillan, 1968).
  • Wolfhart Pannenberg, Jesus – God and Man (London: SCM Press, 1968).
  • Hilbert VanderPlaat, “Pannenberg’s Critique of Barth’s Theology of the Word,” MA Thesis, McMaster University (1983)​.
  • Kevin Diller, Theology’s Epistemological Dilemma: How Karl Barth and Alvin Plantinga Provide a Unified Response (Downers Grove: IVP Academic, 2014), pp. 72–73​derevth.blogspot.comderevth.blogspot.com.
  • Richard Lischer, “An Old/New Theology of History,” Christian Century 91:8 (1974), pp. 288–290​.
  • Karl Barth, “Letter to Wolfhart Pannenberg (1964),” in Karl Barth: Letters 1961-1968 (Grand Rapids: Eerdmans, 1981), pp. 158–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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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신학은 20세기 신학자들이 이를 거부하기 전까지 개혁주의 전통에서 환영받는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코넬리우스 반틸은 자연 신학의 가장 큰 비판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반틸은 프랜시스 쉐퍼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그렇다면 당신도 어떤 형태의 자연 신학도 '거기 계신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말한 적이 없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1] 반틸은 자연 신학이 개혁주의 신학에서 설 자리가 없다고 믿었습니다.[2] 이러한 정서는 반틸의 제자들의 저서에서도 반복됩니다. 예를 들어, 리처드 가핀은 "자연 신학은 반(半) 펠라기우스주의적인 인간론과 불신자의 하나님을 아는 능력에 대한 제한적인 낙관론을 가진 로마 가톨릭과 아르미니우스주의 신학에서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만,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3]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자 페트루스 반 마스트리흐트는 "그러므로 기독교의 계시 신학은 자연 신학을 배제하지 않는다."[4]라는 정반대의 주장을 합니다. 반틸은 자연 신학을 거부하는 데 매우 분명해 보이지만, 그는 특정 유형의 자연 신학을 인정합니다. 그는 역사적인 교회의 자연 신학과 자신의 자연 신학 버전을 대립시킵니다. 무엇이 반틸로 하여금 고전적인 자연 신학을 거부하게 만들었을까요? 더 중요한 것은, 반틸이 고전적인 자연 신학을 소위 개혁주의 버전과 대립시킨 것이 옳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짧은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고전적인 자연 신학에 대한 반틸의 거부는 역사적인 개혁주의 가르침에 대한 오해에 근거하며, 기껏해야 개혁주의 신학에 혼란을 야기하고, 최악의 경우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이 주장을 변호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고전적인 자연 신학에 대한 반틸의 비판을 이해해야 합니다. 둘째, 반틸의 견해를 비판합니다. 셋째, 자연 신학의 중요성에 대한 간략한 관찰로 결론을 맺습니다. 반틸의 고전적인 자연 신학 거부는 역사적인 개혁주의 가르침에 대한 오해에 근거하며, 기껏해야 개혁주의 신학에 혼란을 야기하고, 최악의 경우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반틸의 고전적인 자연 신학 비판

게르하르두스 보스는 반틸의 비판을 검토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연 신학에 대한 간결한 정의를 제공합니다. "자연으로부터 내용과 방법을 취하는 하나님에 관한 가르침."[5] 이 정의를 염두에 두고 반틸이 고전적인 자연 신학을 거부한 이유를 이해하기 위한 기준점을 얻습니다. 반틸의 거부에는 두 가지 주요 이유가 있습니다. (1) 성경의 하나님의 계시와 분리된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말하려는 죄 많은 자율적인 인류의 노력을 나타내고, (2) 계시의 유기적인 통일성을 보존하지 못합니다.

첫째, 반틸은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성경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죄 많은 사람들이 자율적인 인간의 이성에서 시작하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쉐퍼에게 보낸 편지에서 반틸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위대한 그리스 철학자나 데카르트, 칸트, 헤겔 또는 키르케고르 등과 같은 위대한 현대 철학자 중 누구도 '거기 계신 하나님'에 대해 말한 적이 없습니다."[6] 이 철학자들은 자율적인 이성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 거짓된 말을 합니다. 기독교 신학자들이 철학자들의 오해를 바로잡더라도 자연 신학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신학자들은 자율적인 이성의 기름과 성경 계시의 물을 결합하려고 시도하여 신성한 계시의 순수성을 훼손합니다. 반틸은 이러한 유형의 사고를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 계시와 반역을 결합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에 종합적 사고라고 부릅니다.[7] 잡종 자연 신학보다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스스로 증명하는 그리스도"에서 시작해야 합니다.[8] 반틸은 "우리는 칼 바르트가 주장했지만 행하지 않은 것, 즉 삶 전체에 대한 해석을 '위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실제로 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어떤 사실에 대한 묵상을 태양의 빛과 같고 다른 모든 빛의 근원인 하나님의 아들의 빛 안에서 시작해야 합니다."[9]라고까지 말합니다.

둘째, 반틸은 헤르만 바빙크로부터 계시의 유기적 통일성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입니다.[10] 자연과 성경 모두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계시는 유기적인 전체이므로 누구도 성경과 분리된 자연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자연 세계의 계시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 계시와 분리되어 그 자체로 충분하거나 분명한 적이 없었습니다."[11] 누구도 자연이나 성경에서 하나님의 계시의 일부를 취할 수 없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전 우주에 대한 해석을 전체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12] 반틸은 "인간은 타락 이전에도 초자연적인 사고 소통 없이는 자연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습니다."[13]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타락 전이든 후든 전체 진리와 분리된 계시적 진리는 없습니다. 자연 신학은 성경과 분리된 어떤 진리를 얻으려는 어리석은 시도이며 실패할 운명입니다.

고전적인 자연 신학에 대한 반틸의 강력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자연 신학 견해를 장려합니다. 첫째, 불신자들이 세상적인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하늘에 관한 것은 두더지보다 더 눈이 멀었다는 존 칼빈의 주장에 대한 반작용으로 반틸은 칼빈이 틀렸다고 믿었습니다. "칼빈조차도 자연인은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것에 대해서도 두더지처럼 눈이 멀었다는 것을 항상 충분히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습니다."[14] 그러나 반틸은 "자연인은 모든 면에서 눈이 먼 것은 아닙니다."[15]라고 인정할 수도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반틸은 혼란스러운 반대 주장으로 자신의 주장을 흐리게 합니다. 자연인이 모든 면에서 눈이 먼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두더지처럼 눈이 멀 수 있습니까? 존 프레임은 이 시점에서 반틸의 생각에 깊은 긴장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16] 반틸은 혼란스러운 반대 주장으로 자신의 주장을 흐리게 합니다.

둘째, 반틸은 성경과 적절하게 결합된 한, 즉 그가 독특한 개혁주의 자연 신학 이해라고 믿는 한, 자연 신학의 한 형태를 인정합니다. 그의 판단으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할 때 그러한 자연 신학을 담고 있습니다. "비록 자연의 빛과 창조와 섭리의 사역이 하나님의 선하심, 지혜, 능력을 분명히 드러내어 사람들을 변명할 수 없게 하지만..." (I.i). 반틸은 고백의 자연 신학이 성경과 매우 밀접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아퀴나스의 자연 신학과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합니다.[17] 자연 및 특별(성경) 계시의 유기적이고 분리될 수 없는 성격에 대한 반틸의 이해를 고려할 때, 그는 고백이 자신의 견해, 즉 독특한 개혁주의 자연 신학 이해를 가르친다고 판단합니다.

반틸의 견해 비판

반틸의 자연 신학에 대한 오해는 세 가지 오류에 근거합니다. (1) 역사적인 개혁주의 신학은 고전적인 자연 신학을 사용할 때 종합적 사고를 하지 않습니다. (2) 반틸은 바빙크의 계시의 유기적 본질에 대한 개념을 오해합니다. (3) 반틸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자연 신학을 아퀴나스와 더 넓은 보편적 전통의 견해와 잘못 대립시킵니다.

첫째, 역사적인 개혁주의 신학(그리고 주로 보편적 교회도 포함할 수 있음)은 자연 신학에서 종합적 사고를 하지 않습니다. 창조의 모든 사실을 해석하기 위해 항상 성경의 스스로 증명하는 그리스도에서 시작해야 합니까? 역사적인 개혁주의 전통은 이러한 개념이 성경이 아닌 임마누엘 칸트의 철학에서 기원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것을 결코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습니다. 반틸은 칸트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적 사고와 비기독교적 사고를 처음 가능하게 만든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가져왔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의 의미입니다. 따라서 우리 시대에 와서야 기독교적 사고와 비기독교적 사고를 대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정면 충돌을 위한 무대가 마련되었습니다. 이제 두 입장 사이에 명확한 대립이 있습니다."[18] 반틸의 요점은 원칙적으로(출발점) 자율적인 이성과 성경 사이에 정면 충돌, 즉 대립이 있으므로 이러한 상황에서는 가인과 아벨, 벨리알과 그리스도 사이에 동맹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점에서 이러한 용어로 말하지 않습니다.

창조와 분리된 구원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두 책을 모두 사용하십시오. 반틸은 자연 신학을 거부하는 현대 개혁주의 전통의 한 흐름에 속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연 신학을 일축하기 전에 교회 역사를 살펴보고 교부 시대, 중세 시대, 종교 개혁 시대 및 종교 개혁 이후 시대의 신학자들이 자연 신학이 신학과 변증학에 중요한 요소라고 믿었던 이유를 물어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자 구원자이시고 창조와 성경에서 자신을 계시하셨다면 왜 우리는 하나님을 구원자로만 언급하고 하나님의 계시의 절반으로 자신을 제한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불신자들이 "진리를 불의로 막는다"고 알려준다면 이는 우리가 변증학에서 창조 안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언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자연 신학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창조와 자연 계시는 구원과 특별 계시를 위한 필수 전제 조건입니다. 창세기와 분리된 복음은 없고 창조와 분리된 구원은 없습니다. 우리는 자연과 성경이라는 하나님의 두 책을 모두 사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연 계시와 성경 계시를 모두 사용해야 합니다. 역사적인 개혁주의 전통과 거리가 먼 자연 신학은 필수적인 역할을 해왔으며 회복하고 사용할 가치가 있는 역할입니다.


자연 신학의 회복과 중요성

반틸의 주장은 현대 개혁주의 전통 내에서 자연 신학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개혁주의 전통과 성경의 가르침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자연 신학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1. 역사적 맥락에서의 자연 신학

  • 교부 시대부터 종교 개혁 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신학자들이 자연 신학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변증하고, 기독교 신앙의 합리성을 제시했습니다.
  • 토마스 아퀴나스, 존 칼빈과 같은 신학자들은 자연 신학을 통해 일반 계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불신자들과의 대화에서 공통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 개혁주의 신학자들 역시 자연 신학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이해하고, 세상 속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펼치는 데 활용했습니다.

2. 성경적 관점에서의 자연 신학

  • 로마서 1:18-20은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인식할 수 있는 일반 계시의 존재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 사도 바울은 아테네 아레오바고 연설에서 스토아 철학자들의 시를 인용하며 일반 계시를 활용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 창조 질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인간은 이성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탐구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자연 신학의 현대적 의의

  • 현대 사회는 과학 기술의 발전과 세속화로 인해 기독교 신앙에 대한 도전이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 자연 신학은 이러한 도전에 맞서 기독교 신앙의 합리성과 타당성을 변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 또한, 자연 신학은 다양한 종교와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공통 기반을 마련하고,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4. 자연 신학의 유의점

  • 자연 신학은 성경 계시의 권위를 존중하며, 성경의 가르침과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 자연 신학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경계하고, 성령의 조명을 구해야 합니다.
  • 자연 신학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탐구하는 학문적 노력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겸손한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자연 신학은 역사적 개혁주의 전통과 성경적 가르침에 부합하며,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Natural Theology and Cornelius Van Til - Credo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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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와 코넬리우스 반틸의 자연신학 논쟁: 현대적 관련성 분석

바르트와 반틸의 자연신학에 대한 입장 차이

**칼 바르트(Karl Barth)**는 자연신학에 대해 단호히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습니다. 바르트는 자연신학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 밖에서 인간이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교설”로 규정하며, 이런 시도는 신학의 내용으로서 “가차없이 제거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 바르트에게 신학은 오직 계시(특별계시)에 대한 응답이어야 하며, 인간의 종교적 노력이나 이성으로 하나님을 알아가려는 것은 **“불신앙”**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

. 그는 하나님에 대한 어떤 지식도 하나님의 자기계시에 전적으로 의존하며(오직 은혜, sola gratia), 계시 밖에서 얻는 신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 바르트는 일반 계시(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드러냄) 자체를 전면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통해 인간이 하나님께 이르는 자연신학적 시도는 결국 우상숭배적이며 하나님의 참된 계시를 대체하려는 교만으로 간주했습니다​

. 따라서 신학은 언제나 “위로부터”(von oben) 내려온 계시로부터 시작해야지, 인간이 “아래로부터” 하나님을 추구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습니다​

.

**코넬리우스 반틸(Cornelius Van Til)**도 자연신학에 반대했지만, 그 접근과 논지는 바르트와 구별됩니다. 반틸은 타락한 인간의 자율적 이성으로 계시 없이 하나님을 알려는 고전적 자연신학을 비판했습니다​

. 그는 하나님의 일반계시(자연과 역사 속에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의 실재는 인정했습니다. 실제로 모든 인간은 창조 세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을 알 수 있을 만큼 계시를 받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도 불의로 진리를 억압하기에 변명할 수 없다는 성경의 가르침(롬 1:20)을 반틸도 수용했습니다. 그러나 반틸에 따르면 인간의 죄성 때문에 특별계시(성경을 통한 계시)의 안내 없이는 일반계시를 올바로 해석하거나 하나님을 savingly 알 수 없습니다

. 그는 “자연 속에 나타난 계시는 어느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 계시 없이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하거나 명료하지 않다”고 말하며, 자연계시와 성경계시는 유기적으로 하나를 이루기 때문에 그 중 하나만 떼어내어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 요약하면, 반틸에게 문제는 자연신학 자체의 부정이라기보다 계시 없이 자연을 연구해 하나님을 알려는 인간의 시도에 있습니다​

. 그는 반드시 성경적 전제(presupposition) 위에서만 자연에 대한 바른 신학적 이해가 가능하다고 주장했고, **“자신을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자연신학은 결국 오류에 빠진다고 보았습니다​

. 이러한 의미에서 반틸은 자연신학을 거부한다는 점에서는 바르트와 뜻을 같이 했지만, 바르트가 자연계시 자체를 신뢰할 수 없다고 본 것과 달리 반틸은 자연계시의 객관적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인간 측의 한계를 강조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 바르트는 계시의 초월성을 지키기 위해 자연과 계시 사이의 연결고리를 극도로 제한한 반면, 반틸은 계시의 통일성을 지키기 위해 자연계시도 본래 하나님의 계시의 일부이므로 특별계시와 분리해 다루어선 안 된다고 역설했습니다​

.

현대 신학에서 자연신학 논쟁의 전개

20세기 중반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영향으로 개신교 신학자들 사이에 자연신학에 대한 깊은 회의와 거부감이 퍼졌습니다. 특히 나치즘과 독일교회 사태를 겪으면서, 바르트는 자연신학이 세속 이념과 결탁하여 교회를 변질시킬 위험을 경고했고​

, 그의 유명한 “Nein!” 선언은 신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로 인해 한동안 주류 개신교 신학에서는 **“오직 계시”**에 입각한 신학이 강조되고, 자연신학이나 변증학적 시도는 부정적으로 여겨졌습니다. 예를 들어 1934년 바르트가 주도한 바르멘 선언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계시의 근거나 진리를 교회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천명하면서, 계시 외에 자연이나 역사에서 별도의 신적 진리를 찾는 시도를 공식적으로 거부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자연신학은 20세기 전반에 상당 부분 신학적 금기처럼 간주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대 신학의 전개 속에서 자연신학 논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20세기 후반부터 과학 발전과 종교철학의 부흥으로 자연신학의 르네상스가 일어났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 실제로 현대 철학적 신학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논증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재개되었는데, 영국의 철학자 리처드 스윈번(Richard Swinburne)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5대 논증 등 고전적 신 존재 증명을 확률론적으로 재해석하며 자연신학을 부활시켰고, 현대 우주론의 미세 조정(fine-tuning) 현상 등도 창조주를 가리키는 증거로 논의되었습니다​

. 이러한 움직임은 과학과 신학의 대화변증학(apologetics) 영역에서 자연신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한편 가톨릭 교회는 일관되게 자연신학의 정당성을 옹호해왔는데, 이미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70)에서 **“인간 이성의 자연적 빛만으로도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알 수 있음을 부정하는 자는 정죄받을지어다”**라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 전통적으로 로마가톨릭 신학은 성경 계시 외에도 자연적 이성을 통한 신 인식을 인정하며, 이를 신앙의 준비도구나 보조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가톨릭의 입장은 바르트 이후 자연신학에 회의적이었던 개신교 진영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개신교 내부에서도 시대가 흐르며 자연신학을 둘러싼 견해 차이가 드러났습니다. 개혁교회 전통에서는 바르트와 반틸의 영향으로 자연신학을 경계하는 태도가 강했지만, 동시에 역사적으로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 개신교 정통주의자들이 자연신학적 논증을 활용해왔다는 점을 재조명하는 움직임도 나타났습니다​

. 실제로 16-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이성적 논증들을 신학에 통합시켰고, 칼뱅이나 튜레틴 같은 인물들도 자연 계시의 유용성을 긍정했습니다. 이에 비해 20세기 들어 네오칼빈주의자들(예: 아브라함 카이퍼)과 바르트 등이 자연신학 거부를 부각시켰는데, 일부 학자들은 **“자연신학에 대한 개혁주의적 거부는 후대의 특수한 현상일 뿐, 정통 개혁신학 전체의 입장은 아니다”**라고 지적합니다​

. 이러한 역사 인식에 따라 현대 개혁파 신학자 중에는 자연신학의 합법적 활용을 재평가하자는 견해도 나타났습니다. 예컨대 J. V. 페스코(J. V. Fesko) 등은 반틸이 개혁주의 전통을 오해하여 지나치게 자연신학을 배격했다고 비판하며, 고전적 자연신학을 일정 부분 회복할 것을 주장합니다​

.

결국 현대 신학에서 자연신학 논쟁은 바르트/반틸의 계시절대주의역사적 전통에 뿌리를 둔 온건한 자연신학 옹호론 사이의 긴장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일부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바르트의 입장이 지나쳐 기독교 신앙을 반이성적 고립 상태로 만들 우려가 있다고 보고, 성경도 일정한 범위의 자연신학을 지지한다(시19:1, 롬1:19-20 등) 자연 계시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제한적 지식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반대로 신정통주의나 후설화된(liberal) 신학 영향권에 있는 이들은 자연신학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계시의 유일성을 훼손하고 인간 이성을 절대화하는 길이라며 지속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왔습니다. 이처럼 현대에 자연신학을 둘러싼 논쟁은 과학 시대의 변증 요구, 전통에 대한 재해석, 계시에 대한 신학적 입장 차이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며 진행되고 있습니다.

자연신학과 계시에 대한 현대 신학의 논의와 적용

현대 신학에서 자연신학과 계시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주로 일반계시특별계시의 상호 작용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로 구체화됩니다. 대부분의 기독교 신학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연(창조)과 역사 속에서도 자신을 어느 정도 드러내셨다”*는 일반계시의 개념을 인정합니다​

. 그러나 일반계시로부터 독립된 자연신학이 가능한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내용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견해차가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자연신학”이라는 용어 대신 “일반계시”로 부르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는 제안도 있습니다​

. 자연신학이 마치 인간 이성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작업을 의미하게 되어 오해를 낳을 수 있으므로, 하나님이 창조를 통해 주신 계시라는 관점에서 **“자연신학=일반계시”**로 이해하자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복음주의 계통의 조직신학서들은 일반계시 장(章)에서 하나님이 자연 만물을 통해 자신의 존재와 속성의 일부를 알리셨음을 강조하고, 이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인식하되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 계시로 설명합니다. 이어 특별계시 장에서는 성경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계시가 필요함을 논하는 식으로 계시의 이원적 구조를 가르칩니다. 이런 접근은 자연신학에 대한 바르트의 우려를 감안하여 용어를 조정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실상 내용적으로는 제한적 의미의 자연신학을 긍정하는 셈입니다​

. 즉, 창조 세계로부터 얻을 수 있는 하나님 지식은 있다는 것이죠. 이를테면 **“자연의 책과 성경의 책”**이라는 두 권의 책 비유가 흔히 사용되는데, 하나님이 두 책을 통해 말씀하시지만 자연의 책(피조세계)만으로는 인간의 죄로 인해 불완전한 이해에 머물고, 성경의 책을 통해서만 구원의 지식을 얻는다는 식입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바르트나 반틸의 관점을 따라 계시의 일방성을 더욱 강조합니다. 이들은 일반계시라는 말조차도 계시의 충분성과 우월성을 흐릴 위험이 있다고 보아 조심스럽게 사용하거나 아예 선호하지 않습니다. 바르트는 하나님이 역사와 자연 속에도 자신을 계시하시지만, 그것을 신학의 토대로 삼을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 예를 들어 하나님이 창조로 자신의 능력과 신성을 나타내셨다 하더라도, 신학자는 자연을 연구해서 하나님을 밝히기보다 이미 주어진 계시의 빛 안에서 자연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세계로 나아가는 논의만 가능하지, 세계로부터 하나님께 나아가는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바르트의 테제로 요약됩니다. 반틸 역시 **“어떠한 사실도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보지 않고서는 참으로 이해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 무신론적 철학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은 결코 성경의 참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일갈했습니다​

. 반틸에게 자연계시는 언제나 특별계시와 함께 읽혀야 할 책으로, 성경의 관점 없이 자연만 가지고 진리를 파악하려는 것은 반역적 이성의 획책에 불과합니다​

.

이처럼 자연신학과 계시의 관계에 대한 현대 논의는 두 극단 사이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입니다. 온건한 입장의 신학자들은 자연신학을 하나님이 주신 일반은총의 일부로 보고,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고 변증하는 데 보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 이들은 자연신학이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거나 하나님을 충분히 알게 하지는 못하지만, 신앙의 합리성을 뒷받침하거나 보편 은총의 표지로서 역할을 한다고 평가합니다. 예컨대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 같은 신학자는 현대 과학시대에 **“열린 비밀”**로서 자연신학을 재해석하자고 제안하면서, 과학적 탐구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시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존 폴킹혼(John Polkinghorne) 같은 과학자이자 신학자는 자연세계의 합리성과 질서가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통찰을 “자연에 대한 신학적 해석”(theology of nature)으로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는 바르트의 우려를 의식하면서도, 자연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진리를 신학적으로 활용해 보려는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강경한 입장의 신학자들은 오늘날에도 자연신학을 적용하는 것을 극히 삼가고, 계시 중심의 신학을 고수합니다. 이러한 전통에 선 현대 신학자들은 바르트의 노선을 따라 설교와 증언의 내용으로 오직 계시된 말씀만을 인정하며​

, 윤리나 철학의 기초도 성경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 등의 윤리신학자는 기독교 공동체의 독특한 이야기와 계시 안에서만 참된 윤리가 나온다고 보아, 자연법이나 보편 윤리에 크게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이처럼 계시를 절대시하는 입장은 자연신학을 신학 내부로 들여오는 순간 세속 철학이 “낙타 코” 들이밀듯 침투하여 결국 신앙을 변질시킨다고 염려합니다​

. 따라서 현대 신학에서도 자연신학과 계시의 관계는 신학 방법론과 적용에 있어 계속된 쟁점으로 남아 있으며, 각 진영은 성경적 증거와 역사적 사례를 들어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바르트와 반틸 논쟁이 현대 신학자들에게 미친 영향

칼 바르트와 코넬리우스 반틸의 자연신학 논쟁은 오늘날까지도 여러 신학자들과 신학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먼저, 보수적 개혁신학 진영에서 반틸의 영향은 두드러집니다.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계열 학자들과 변증가들은 반틸의 전제주의적 변증학을 계승하여, 신앙의 전제 없이 중립적으로 이성에 호소하는 모든 자연신학 시도를 경계합니다. 예를 들어 개혁주의 신학자 리처드 개핀(R. Gaffin) 등은 **“자연신학은 로마가톨릭이나 알미니안 신학에서는 몰라도, 철저히 은혜에 의존하는 개혁신학에는 들어올 자리가 없다”**고까지 언급하며 자연신학에 반대했습니다​

. 반틸의 영향 아래 이러한 학자들은 성경의 권위와 자존적(自存的)인 하나님을 전제로 한 변증을 강조하고, 토마스 아퀴나스적인 이성 논증이나 팔리의 자연신학을 신학적으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반틸의 제자 격인 존 프레임(John Frame), 그렉 바한센(Greg Bahnsen), K. 스콧 올리핀트(K. Scott Oliphint) 등은 20세기 후반까지 활발히 활동하며 **“불신자에게 하나님을 증명하기보다, 하나님 없이는 증명 자체가 불가능함을 보이라”**는 전제주의 노선을 발전시켰습니다. 이들은 바르트의 신정통주의에도 비판적이었지만, 바르트가 자연신학을 배격한 점만큼은 높이 평가하며 오히려 “바르트가 말한 대로 위로부터의 신학을 우리야말로 제대로 수행한다”는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 즉, 반틸 진영성경에 근거한 신학의 중요성을 바르트 못지않게 강조하면서도, 바르트를 교리적으로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미묘한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반틸은 바르트를 **“새로운 형태의 근대주의”**라고 비판하며 그의 기독론이나 성경관을 문제삼기도 했습니다).

한편, 에큐메니칼하거나 진보적인 개신교 신학자들 중에는 바르트의 영향을 받아 자연신학에 회의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포스트바르트파로 분류될 수 있는 에버하르트 융겔(Eberhard Jüngel)이나 한스 율(Hans Urs von Balthasar와 구분되는 개신교 신학자) 등은 창조론적 담론 속에서 자연에 대한 긍정적 신학을 전개하면서도,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서만 올바른 자연 이해에 이를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또한 미국의 후기자유주의(postliberal) 신학자들 – 예컨대 조지 린드벡(George Lindbeck) – 은 종교 간 보편경험이나 자연신학적 논증보다는 교회 공동체의 언어와 내러티브에 집중해야 한다고 보아, 신앙을 외부 보편틀에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거부했습니다. 이러한 입장은 **“교회는 자기 고유의 이야기로 진리를 증언하면 충분하지, 세상 이성의 법정에 설 필요가 없다”**는 바르트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라고 평가받습니다.

반대로, 현대에 들어 자연신학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거나 재해석하려는 신학자들도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흔히 복음주의와 철학의 접목 지점에서 활약하는데, 알빈 플랜팅가(Alvin Plantinga) 같은 개신교 철학자는 “기독교 신앙은 자연신학적 증거 없이도 합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이른바 개혁주의적 인식론, properly basic belief 개념)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유신론적 논증들 자체를 폐기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플랜팅가의 입장은 전통적 자연신학을 대변하지는 않지만,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도모했다는 점에서 신학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또한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William L. Craig)나 존 레녹스(John Lennox) 같이 변증에 적극적인 복음주의자들우주론적 논증, 부활의 역사적 증거 등을 내세워 자연신학의 가치를 옹호하고, 기독교 신앙을 공론장에서 변호하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바르트나 반틸과는 결이 다르지만, 현대 신학자들이 자연신학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보여주는 스펙트럼의 한 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가톨릭 신학자들 (예: 카를 라너(Karl Rahner)나 요셉 라칭거/베네딕트 16세)은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중요 주제로 삼아, 계시에 근거하면서도 인간 이성이 진리를 포착하도록 도와주는 자연신학의 역할을 긍정했습니다. 이런 견해는 개신교 내 바르트-반틸파와 대비되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타종교와의 대화자연법에 의거한 윤리 등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요약하면, 바르트와 반틸의 자연신학 논쟁은 현대 신학자들에게 양날의 영향을 끼쳤습니다. 한쪽에는 여전히 그들의 경고를 받아들여 계시 중심, 이성 불신의 태도를 견지하는 학자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역사적 교회 전통과 현대 학문의 요청 속에서 자연신학의 적절한 역할을 모색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이 두 흐름은 오늘날까지도 신학 교육, 변증학, 선교 방법, 종교간 대화 등 다양한 맥락에서 논쟁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있습니다.

자연신학 논쟁이 현대 기독교 신앙과 철학에 미치는 영향 평가

자연신학을 둘러싼 바르트-반틸 식 논쟁은 현대 기독교 신앙의 실천과 철학적 풍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선 긍정적인 측면부터 살펴보면, 자연신학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은 기독교 신앙이 이성적 근거와 보편 진리와 접촉면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플러럴리즘 사회에서 복음을 변증하는 데 유용한 도구를 제공합니다. 실제로 신앙인들이 우주론, 생물학, 도덕철학 등의 영역에서 하나님 존재의 증거를 논하거나, 신앙교리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은 회심의 통로를 넓히고 지성적 대화에 참여하는 기회를 열어주었습니다. 한 학자는 바르트 식의 극단적인 자연신학 거부를 따를 경우 결국 반이성주의로 흐르게 되어 다원사회 속에서 기독교 신앙을 변호할 중요한 수단을 잃게 된다고 경고합니다​

. 이처럼 자연신학을 적절히 활용하면, 신앙과 과학의 대화나 신앙과 철학의 접점을 마련하여 현대인들에게 기독교 세계관의 지적 정당성을 호소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연신학적 성찰은 창조 세계에 대한 경외와 감사를 고취하여, 신자들이 일상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고 신앙 경험을 풍부하게 만드는 데도 기여합니다. 예컨대 별들의 질서, 양심의 소리, 진리 탐구의 보편성 등을 통해 신자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확신을 일상적으로 되새길 수 있습니다.

반면, 자연신학 거부 또는 경계 입장의 긍정적 영향도 존재합니다. 바르트와 반틸의 경고 덕분에 교회는 계시의 절대적 우위성을 재확인하고, 세속 이성이나 문화와 구별된 신앙의 독특성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 이는 복음의 순수성을 보존하고 신학이 철학의 종속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실제로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이 과도한 자연신학(계시보다는 인간 종교의 보편경험에 의존)을 펼치다가 복음의 초자연적 핵심을 상실했던 역사, 독일 교회가 자연 질서를 앞세운 나치 이념에 타협했던 사례 등은 바르트-반틸 류의 비판이 갖는 정당성을 뒷받침합니다​

. 자연신학을 경계하는 태도는 현대 교회가 세속주의나 종교다원주의에 맞서 정체성을 지키는 힘이 되었고, **“말씀 중심”**의 신학과 목회를 유지하도록 자극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입장은 신자들로 하여금 겸손히 계시에 순종하고, 신앙을 인본주의적으로 변질시키지 않도록 경계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철학적으로도, 바르트와 반틸의 영향으로 기독교 철학자들은 칸트 이후의 인식론적 한계와 인간 이성의 부패를 진지하게 고려하게 되었고, 신앙은 단순한 논증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깨달음임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영향 측면에서도 양 진영 모두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자연신학 옹호 일변도의 태도는 자칫하면 신앙을 이성의 종으로 만들거나, 복음을 철학적 개념으로 축소해 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일반 철학의 신 개념 수준으로 제한한다면, 기독교의 계시적 특수성(성육신, 삼위일체, 구속사 등)이 흐려지고 신앙의 초월성과 신비가 손상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자연신학적 신 개념만으로 구성된 이신론이나 보편종교론은 인격적이고 역사 개입적인 성경의 하나님과 거리가 먼 경우가 많았습니다​

. 또한 자연신학에 치중하면, 인간 스스로 증명되지 않으면 믿지 않으려는 태도를 부추겨 겸손한 신앙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반대로 자연신학을 완전히 배격하는 태도는 기독교 신앙을 지적 담론에서 고립시키고, **맹목적 신앙(fideism)**으로 오해받게 할 소지가 있습니다​

. 이는 진리를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기독교가 불합리한 신념 체계로 비쳐지게 할 위험이 있으며, 건전한 변증 활동의 위축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또한 자연계와 이성은 본래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데 이를 전적으로 불신하는 것은 창조의 가치를 폄하하거나 은총의 일반적 역사를 간과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자연신학을 멀리한 일부 교파에서는 과학에 대한 불신이나 반지성주의로 기울어 사회와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철학적 흐름에도 이 논쟁은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20세기 후반 분석철학의 부흥과 함께 기독교 철학자들이 자연신학 논증을 적극 다룸으로써, 오늘날 철학적 신학은 대학 철학과에서도 활발한 분야가 되었습니다​

. 이는 신 존재 증명, 악의 문제, 도덕적 논증 등 전통적인 철학 물음들에 기독교가 응답함으로써, 신앙과 이성이 만나는 건설적 장을 만든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대륙철학이나 해석학적 신학 쪽에서는 바르트의 영향 아래 존재론적 증명이나 형이상학적 신 논의를 경계하고, 언어, 경험, 관계성 등의 차원에서 신앙을 해석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습니다. 이런 흐름은 실존주의포스트모더니즘의 조류와 맞물려, 보편 이성에 기반한 자연신학을 하나의 권력 담론으로 비판하거나 각 공동체 고유의 합리성을 중시하는 철학적 다원성을 낳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자연신학 논쟁은 기독교 철학의 양대 접근(분석적-변증적 vs. 내러티브-해석적)으로도 이어져, 오늘날 신학도들이 자신들의 철학적 입장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결론: 신학적 균형의 모색

칼 바르트와 코넬리우스 반틸이 펼쳤던 자연신학에 대한 논쟁은 단순히 과거의 신학사적 사건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신학적 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논쟁을 통해 교회는 계시의 초점을 회복하는 한편, 이성과 신앙의 관계를 끊임없이 숙고하게 되었습니다. 현대 신학에서는 양 극단을 경계하며 균형 잡힌 입장을 모색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즉, 자연신학의 유익을 인정하되 그것이 계시 진리 위에 순복하도록 하고, 계시의 우위를 확고히 하되 그것이 반지성적 배타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많은 신학자들은 **“일반계시의 인정과 특별계시의 우선성”**이라는 원칙 아래 두 입장의 장점을 통합하려 시도합니다. 이렇게 할 때 교회는 창조 세계를 통한 하나님의 음성에도 귀 기울이며​

,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완전한 계시를 향해 겸손히 나아가는 바른 신앙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르트와 반틸의 논쟁이 남긴 유산은, 결국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의 계시의 신비 앞에서 인간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라는 경고이자 믿음의 도리를 온전히 전하기 위해 이성도 봉사시킬 수 있다는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이러한 유산을 바탕으로 현대 기독교는 신학과 철학의 대화 속에서 계속해서 진리를 모색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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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았습니다 - 삶과 죽음 그 너머의 경이로운 이야기
박진여 지음 / 김영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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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김영사처럼 나름 이름있는 출판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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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지 2025-02-28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전 저자님 책 2개 소장하고 가끔씩읽으면서 인생을 돌아보네요. 이번생은 제 영혼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gudrl32 2025-04-12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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