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제가 이 책을 완독하고 느낀 것은 이 책의 행간 곳곳에서 자연신학의 망령이 배회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낸시 피어시가 이원론을 극복하는 도구로 지적 설계를 끌어들이면서 마치 지적 설계가 기독교를 확증하는 것처럼 말하며 무신론자에서 유신론자로 전향한 앤터니 플루를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플루는 기독교인이 된 것이 아니라 이신론자가 된 것이지요. 더군다나 피어시는 마치 불신자가 자신의 모순율로 다양한 세계관 중에서 적합한 세계관을 선택할 수 있는 것 처럼 말하는데 이건 반틸이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 순간 기독교는 자연주의의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데 월터스토프가 하나님의 무시간성과 시간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배격하는 것처럼... 그리고 가장 이 책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피어시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언어의 감옥" 논제를 별 논증도 없이 잘못된 것이라고 배격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철저한 언어적 존재라는 것은 현대 철학의 가장 중요한 논제 중 하나이며, 피어시가 자랑스럽게 언급하는 플란팅가의 작업 역시 이 논제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작업인데 말입니다. 언어의 감옥을 부인하면 다시 "소여의 신화"가 복원되고 그것이 자연인의 인식의 기초로 작동할 것이 틀림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틸이나 비트겐슈타인, 데리다, 그리고 로티 등이 주장하는 것 처럼 자연인의 언어가 실재를 표상할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자연신학이 들어설 공간이 없을터인데 낸시 피어시는 이런 현대의 기본적인 통찰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피어시가 개혁파 전통을 계속 언급은 하지만 개혁파의 가장 주된 원리 중 하나인 인간의 전적인 죄악됨, 무능력성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