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문의 중편 <<하품>>은 제목 그대로 하품을 유발하는 작품이다. 무료한 두 사내의 무의미한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절로 하품이 터져나온다. <내가 말했다> <그가 말했다>로 일관하는 무심하고 단조로운 구성, 엿가락처럼 끈적하고 길게 늘어지는 유희적 문장들은 그러나 <결코 지루하지 않은 음악처럼> 여겨지기도 해서, 이 참을 수 없는 하품의 근원을 골똘히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떤 때는 우리가 서로 구별이 안 갈 정도로, 한 사람으로 여겨지기까지 했어, 우리의 비루함이,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어주었던 비루함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었던 것 같아, 그가 말했다. (29쪽)
한 편의 부조리극을 연상케 하는 이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오후의 동물원에서 조우한 두 사내가 하품처럼 터져나오는 무의미한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전부다. 뚝뚝 끊어지면서도 끈적하게 이어지는 무미건조한 대화를 들여다보면 두 사람은 십년 혹은 십오년 전 살인을 저지른 공범자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견딜 수 없어하면서도 대화를 멈출 수도 없다는 듯, 멈춰서도 안될 것 같다는 듯 이상한 대화를 이어간다.
- 우리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는 건 어떨까, 어떤 기분인지 보고 싶어, 그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 - 싫네, 내가 말했다.- 나도 싫네, 자네가 싫어하는 일을 하는 건 나도 싫네, 그가 말했다. 나는 이제 정말로 이자와 작별을 고하고, 내가 갈 만한 어디든 가고 싶었다. 나는 마음속으로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기고 있었지만, 여전히 엉덩이는 벤치 위에 달라붙어 있었다. (65쪽)
서로를 멸시하고 혐오하면서도 끊임없이, 마치 중요한 숙제이기라도 하다는 듯이 절박하게, 그러나 목적도 이유도 핵심도 알 수 없는, 단순한 말장난 같은가 하면 심오한 뜻을 품은 선문답처럼 다가오기도 하는, 이상하고 권태로운, 대화 그 자체를 위한 대화만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소설을 읽다 보면 하품처럼 터져나오는 물음이 있다. 과연 두 사내는 누구인가.
그는 아무 말 없이, 바지 호주머니에 한 손을 집어넣고서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는데, 마치 내가 그의 수중에 있기라도 한 듯한 태도였다. 이제 억지는 그만 부리도록 하지, 나로서도 어느 정도 지겨워졌으니까, 나는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그에게가 아닌, 나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여겨졌다. (98쪽)
구체적인 인물 묘사나 정황 묘사가 없는 이 소설에서 발화자의 정체는 묘연하다. 생생한 육체를 입고 활보하는 말(言)들 속에서 인물(들)은 죽은 듯 살아 있거나 살아 있는 듯 죽어 있다. 소설 곳곳에 죽음을 암시하는 말들이 종종 등장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나>와 <그>. 이들은 두 사람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이고 살아 있는 자이면서 동시에 죽어 있는 자이기도 하다. 서로 완전히 동떨어진 듯하면서도 <우스꽝스런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닮기도> 했다. <나>이면서 동시에 <그>인 존재의 끝없는 중얼거림은 이상의 시 <오감도: (시 제15호)>를 떠올린다. 거울 속의 그(나)와 불화하면서도 끝내 떨어질 수 없는, <악수할 수조차 없는 두 사람을 봉쇄한 거대한 죄>에서 <<하품>>은 터져나오는 것이다. 무의미한 생을,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딜 수 있다는 걸 견딜 수 없>어 하는 이(들)의 대화 혹은 독백은 참을 수 없이 무의미해서 찔끔, 눈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