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품 (특별판) 작가정신 소설향 11
정영문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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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문의 중편 <<하품>>은 제목 그대로 하품을 유발하는 작품이다무료한 두 사내의 무의미한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절로 하품이 터져나온다. <내가 말했다> <그가 말했다>로 일관하는 무심하고 단조로운 구성엿가락처럼 끈적하고 길게 늘어지는 유희적 문장들은 그러나 <결코 지루하지 않은 음악처럼여겨지기도 해서이 참을 수 없는 하품의 근원을 골똘히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떤 때는 우리가 서로 구별이 안 갈 정도로, 한 사람으로 여겨지기까지 했어, 우리의 비루함이,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어주었던 비루함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었던 것 같아, 그가 말했다. (29쪽) 

     한 편의 부조리극을 연상케 하는 이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오후의 동물원에서 조우한 두 사내가 하품처럼 터져나오는 무의미한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전부다뚝뚝 끊어지면서도 끈적하게 이어지는 무미건조한 대화를 들여다보면 두 사람은 십년 혹은 십오년 전 살인을 저지른 공범자이다두 사람은 서로를 견딜 수 없어하면서도 대화를 멈출 수도 없다는 듯멈춰서도 안될 것 같다는 듯 이상한 대화를 이어간다 

- 우리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는 건 어떨까, 어떤 기분인지 보고 싶어, 그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 
- 싫네, 내가 말했다.
- 나도 싫네, 자네가 싫어하는 일을 하는 건 나도 싫네, 그가 말했다. 
나는 이제 정말로 이자와 작별을 고하고, 내가 갈 만한 어디든 가고 싶었다. 나는 마음속으로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기고 있었지만, 여전히 엉덩이는 벤치 위에 달라붙어 있었다. (65쪽)

     서로를 멸시하고 혐오하면서도 끊임없이마치 중요한 숙제이기라도 하다는 듯이 절박하게그러나 목적도 이유도 핵심도 알 수 없는단순한 말장난 같은가 하면 심오한 뜻을 품은 선문답처럼 다가오기도 하는이상하고 권태로운대화 그 자체를 위한 대화만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소설을 읽다 보면 하품처럼 터져나오는 물음이 있다과연 두 사내는 누구인가

그는 아무 말 없이, 바지 호주머니에 한 손을 집어넣고서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는데, 마치 내가 그의 수중에 있기라도 한 듯한 태도였다. 이제 억지는 그만 부리도록 하지, 나로서도 어느 정도 지겨워졌으니까, 나는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그에게가 아닌, 나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여겨졌다. (98쪽)

     구체적인 인물 묘사나 정황 묘사가 없는 이 소설에서 발화자의 정체는 묘연하다생생한 육체를 입고 활보하는 말()들 속에서 인물()은 죽은 듯 살아 있거나 살아 있는 듯 죽어 있다소설 곳곳에 죽음을 암시하는 말들이 종종 등장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와 <>. 이들은 두 사람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이고 살아 있는 자이면서 동시에 죽어 있는 자이기도 하다서로 완전히 동떨어진 듯하면서도 <우스꽝스런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닮기도했다. <>이면서 동시에 <>인 존재의 끝없는 중얼거림은 이상의 시 <오감도: (시 제15)>를 떠올린다거울 속의 그()와 불화하면서도 끝내 떨어질 수 없는, <악수할 수조차 없는 두 사람을 봉쇄한 거대한 죄>에서 <<하품>>은 터져나오는 것이다무의미한 생을,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딜 수 있다는 걸 견딜 수 없>어 하는 이()의 대화 혹은 독백은 참을 수 없이 무의미해서 찔끔,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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