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들의 역사
마야 룬데 지음, 손화수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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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1월 미국 플로리다의 한 양봉농가에서 꿀벌이 사라졌다는 피해 사례가 접수됐다. 일벌이 사라지고 벌통에 남겨진 여왕벌과 애벌레는 떼죽음 당했다. 플로리다를 기점으로 세계 곳곳에서 벌들의 실종 사례가 보고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벌들의 개체수가 꾸준히 감소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전 세계 식량작물의 60퍼센트 이상이 꿀벌의 수분(受粉)에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꿀벌의 실종은 전인류적인 위기로 이어지는 무서운 경고이다. 꿀벌의 실종을 야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원인들 - 농작물 살충제, 유전자 조작 옥수수, 휴대전화 전자파 등 보다 편리한 삶을 위한 인간의 개발이 결국 독으로 돌아온 셈이다.

 

   벌들이 없으니 꽃과 나무는 열매를 맺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이전에는 어딜 가나 눈에 띄었던 흔한 과일과 채소들이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사과, 아몬드, 오렌지, 양파, 브로콜리, 당근, 블루베리, 땅콩, 커피 등. 2030년이 되자 육류 생산량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가축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게 되면서 발생한 일이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우유와 치즈 없이 끼니를 이어가야만 했다. 그뿐만 아니라 가공 연료 대체용으로 사용했던 해바라기 기름과 같은 생물학적 연료의 생산량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꽃가루를 옮겨주던 벌들이 사라지니 해바라기 꽃도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인류는 다시 석탄이나 석유와 같은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를 이용해야만 했고, 따라서 지구온난화 현상이 눈에 띄게 가속화되었다. 동시에 지구 인구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494)

 


   벌들이 사라진 세상은 어떨까.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상상에서 시작된 이 소설은 생태계 불균형이 초래한 지구의 암울한 미래상을 실감나게 구현하면서 문명의 이기에 푹 젖어 있는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운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 배치된 세 인물들 - 2098년 중국의 인공수분 노동자 타오, 2007년 미국의 양봉업자 조지, 1852년 영국의 동물학자이자 곡물 종자 상인 윌리엄의 이야기는 벌들의 집단 폐사 현상이 어떻게 인류의 대재앙으로 이어지는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딱정벌레는 쉴 새 없이 무시무시한 입을 움직였다. 나는 살금살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애벌레는 하나씩 하나씩 딱정벌레의 입 속으로 사라졌다. 개미들은 일렬로 서서 딱정벌레에게 자기가 낳은 자식들을 바치는 중이었다. 나는 얼른 몸을 일으켜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계속 머물러 있었다. (425)

 


   세 인물의 사연을 갈마드는 구성은 이야기에 극적 긴장감을 더하면서 속도감을 높인다. 짧고 강렬하게 이어지는 한 장면 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육백 쪽 분량의 장대한 서사가 한달음에 읽힌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솜씨가 치밀해서 감탄하게 된다. 희귀하고 묵직한 소재를 보편적인 주제로 잘 풀어냈다. <벌들의 역사>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야기의 큰 줄기는 벌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망한다. 이야기 곳곳에서 꿀벌의 생태와 양봉업, 그리고 일벌의 실종과 벌들의 집단 폐사 현상, 이른바 벌집군집붕괴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CCD)에 관해 구체적으로 언급된다. 꿀벌의 행동 양식과 그에 적합한 벌통 제작 과정이 담긴 책 <눈 먼 양봉가>를 중심점으로 해서 얽혀드는 인물들의 삶 또한 꿀벌의 생태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가상의 웅덩이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몸을 일으킨 후 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삶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었다.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고 꽃가루를 모아 오고 꿀을 만들어내는 일. (580)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고 꽃가루를 모아 오고 꿀을 만들어내는> 벌들의 생태는 인간의 생태와도 흡사하다. 이 소설은 벌들의 역사를 조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 생태계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인간 삶을 꿀벌의 생태와 연결시켜 들여다본다.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서로 무관해 보이는 세 인물의 삶은 너무나도 닮아 있다. 어린 자식을 잃고 슬픔에 잠긴 타오 부부, 스승과 아내 자식에게마저 인정받지 못해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 윌리엄, 양봉업을 이어받지 않겠다는 아들과 반목하는 조지는 시공간만 다를 뿐 모두 인류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자식을 낳아 기르고 그의 미래를 위해 헌신하는 삶. 소설 속에서 윌리엄의 스승 람 교수가 <돼지새끼>의 삶이라고 일갈하고 있는 인간의 생태는 그러나 꿀벌보다는 복잡한 무늬를 그릴 수밖에 없다. 꿀벌에게는 없는 마음의 작용 때문이다. <벌들의 역사>는 복잡미묘한 인간 마음의 파동을 섬세하게 따라가면서 인간의 삶과 그 가치에 대해 집요하게 묻고 있다.

 

   바로 그런 것이 인생이라고? , 인생은 바로 그런 거라고 말해야겠지? 성장을 하고 후손을 보고, 자기 자신의 삶보다는 자식들이 요구하는 것과 그들의 삶을 본능적으로 더 앞세우는 일. 자식들의 배를 채워주는 일. 인간은 바로 그런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노예로 변하기 마련이지. 지능과 지성이 자연과 본능 앞에서 머리를 숙여야만 하는 삶. (65~66)

 


   <벌들의 역사>는 생태계 불균형이 초래할 인간의 미래를 경고하는 한편 긍정적인 미래상을 암시하고 있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살기 위해서,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떨어져 살아야 한다. 자연을 파괴하고 거부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을 억제하고 자연과 함께 살아나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는 것은 교육과 지식이며...>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대변하는 세 인물의 접점이 되는 <눈 먼 양봉가>의 전언을 새기고 조금씩 실천할 수 있다면 <돼지새끼>보다는 나은 삶이 우리를 기다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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