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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줄리언 반스가 2008년에 발표한 이 책은 삶과 죽음에 대한 폭넓은 사유와 통찰을 담고 있다. 과학과 종교, 예술, 철학, 개인적 기억의 영역까지 아우르는 줄리언 반스의 입담은 지적이고 예리하며 해학적이고 유희적이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맞닥뜨렸을 의문과 불안의 영역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구덩이>를 대담하게 쑤석거리고 있는 이 책은 그래서 주제의 묵직함과는 별개로 재미있게 읽힌다.
설령 신이 지켜보고 있었다 해도, 왜였을까. 신이 내 스스로 씨앗들을 쏟아버리는 상황을 분명 못마땅해했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어버렸던 건. 나의 열의에 찬, 지칠 줄 모르는 자위행위를 저 위에서 목격했지만 그럼에도 하늘이 무너져 내리지 않은 건 그 짓이 죄라고 단정하지 않아서라는 생각은 왜 못했던 걸까? 더군다나 죽은 조상들이 내 행동을 보고 하나같이 미소지으며 이렇게 말할 거라는 상상 역시 해본 일이 없었다. “뭘 망설이니, 아가야? 할 수 있을 때 즐기렴. 일단 영혼이 육신을 이탈하고 나면 할 게 그리 많지 않아. 그러니 우릴 위해서 한 번 더 해다오.” (31쪽)
다양한 작품들에서 죽음에 대한 고민과 사유를 계속해 왔던 줄리언 반스는 이 책에서 모든 격식(문학적 형식이나 인간적 체면 같은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글쓰기를 선보인다. 평소 자신의 글에 사생활 노출을 꺼리던 그가 이 책에서는 가족과 지인의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폭로하는가 하면 개인적 체험이나 내밀한 감정 묘사에도 거침이 없다. 이런 솔직한 태도에는 이 책의 성격과도 연관이 깊다. 불가지론자인 줄리언 반스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한 걸음 물러난 거리에서 접근하고 있다. 가장 개인적인 기억을 불러올 때마저도 그의 엄정한 태도에는 변함이 없다. 심지어는 삶과 죽음에 대해 애착과 두려움을 느끼는 자기 존재마저도 뇌과학적인 견지에서는 허깨비에 불과하다는 가정을 내세우면서 무구한 허망을 드러내기도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많은 아이들이 겁에 질려 있는 걸 알아차리고선 차례대로 옆으로 가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겁이 나니? 음, 그런 거라면 하느님 생각만 해.” 아이들은 사실상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숲 속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까짓 것, 믿어버려! 손해 볼 것 있어? 그리고 추정컨대 손해 본 아이는 한 명도 없었던 것 같다. 존재하지 않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 요정들과 도깨비들과 나무의 악령들한테서만큼은 우리들을 보호해주실 것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늑대들과 곰들(과 암사자들)한테서는 아니라 하더라도. (43쪽)
<홍당무>의 작가 쥘 르나르, 알퐁스 도데, 투르게네프, 스탕달, 플로베르, 스트라빈스키, 베토벤, 쇼스타코비치와 같은 저명한 예술가들은 물론 유진 오켈리 같은 기업가의 죽음, 가족과 친지의 죽음에 관한 일화와 그들이 남긴 경구들을 늘어놓으면서 삶과 죽음의 민낯을 민망할 정도로 집요하게 응시하고 있는 이 책은 하나의 진실로 절망과 위로를 동시에 안겨준다. 이들은 모두 죽었다. 우리도 결국 죽을 것이다, 라는 당연하지만 믿기지는 않는 명제 앞에서 우리는 절망과 두려움을 느끼는 한편 이 절망과 두려움이 나만의 것은 아니라는 보편성에 위로 받는다. 줄리언 반스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삶이라는(죽음을 포함한) 오리무중의 구렁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의 고뇌가 한낱 뇌의 망상에서 기인한다는 가정을 체념적이지만 유쾌한 어조로 이어간다.
힘든 건 단순히 구덩이를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응시하는 것이다. 인생은 어마어마하게 위험한 사안으로, 그 근본적인 목적은 단순한 자기 영구 보존이라는 것, 인생은 공허 속에서 펼쳐진다는 것, 우리의 행성은 어느 날 얼어붙은 침묵 속에서 정처 없이 헤매리라는 것, 그리고 인류는 그 모든 격앙된, 지나치게 교묘히 계획된 복잡성 속에서 발전해왔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며, 우리를 그리워할 어떤 이나 그 어떤 것도 세상에 없기 때문에 고스란히 잊히리라는 확실성은 고사하고 그 가능성이라도 직시한다는 것이 우리에겐 힘든 일이다. (285쪽)
줄리언 반스는 이 책에서 끝내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에 대해 <유머를 갖춰 체념하는 법>을 잘 보여준다. 그가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은 체념과 유머이다. 죽음이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체념하고 남은 삶을 건강하게 웃으면서 살아가자고 하는 지혜가 엿보인다. 유머야말로 삶이라는 망상 앞에 선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퍼포먼스라고 말이다. 이 책은 그런 믿음을 온몸으로 보여주려는 듯하다. 삶과 죽음, 현실과 허구, 기억과 진실의 문제를 사유하는 과정을 맨몸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아니, 이 책은 처음부터 어떤 결론 같은 것을 목적하지 않고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죽음(삶)에 관한 <이 일화 저 일화 사이를 비실비실 걸어다니는> 모양을 보여줄 뿐이다. 줄리언 반스는 이에 대해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이고 있다. <나의 이런 일화들은 내가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곧이곧대로 믿어선 결코 안될 것이다>라고. 이러한 사유의 형식은 자칫 산만하다 느껴지기도 하는데, 삶과 죽음이라는 속성을 고려하고 보면 가장 정직한 포즈로 다가오기도 한다. <인생의 행보가 비실비실 걷는 것이니까>, 알 수 없는 것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 뿐이니까. 길고 산만한 소설 같고 어지러운 꿈 같기도 한 이 책은 그러나 <해몽할 만한 꿈>인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