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삶
샤를 와그너 지음, 문신원 옮김 / 판미동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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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이설의 단편 <빈집>은 전시된 욕망에 빙의하는 현대인의 강박증적 자화상을 신랄하게 묘사해 낸 작품이다. 능청스러운 직설 화법이 정교한 내시경처럼 인간의 뒤틀린 욕망을 사실적으로 투시하는 동안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제스처를 망설이다 끝판에 가서는 왈칵 욕지기가 치밀어 오르게 된다.

 

    수정은 완벽하게 꾸며진 새 아파트에 방해가 되는 것들에 자꾸 화가 나기 시작했다. 잡지에 실린 사진대로 꾸몄고, 그걸 본 사람들이 부족하다고 지적한 것까지 보완한 집이었다. 자기 스스로조차 새 아파트에 어울리지 않는다 느껴지면 빈방으로 숨어들었다. 완전한 공간에 자기가 흠집이 되는 것 같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김이설, 오늘처럼 고요히문학동네, 2016)

 

    <내집마련>의 꿈을 이룬 수정은 새 아파트에 입주한 날부터 실내 장식에 공을 들이기 시작한다. 잡지나 블로그에 소개된 실내 장식을 소품 하나까지 똑같이 재현했고 그도 모자라 손님들의 취향까지 반영해서 완벽한 구색을 갖추었다. 수정이 느끼기에 완벽한 집에 흠집이 되는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그들 부부였다. 수정은 <자기 때문에 새 아파트의 완벽성이 떨어지는 건 아닌가>(위의 책) 해서 소파에 앉아 있기도 불편할 지경인데, 남편은 고급 실내 장식에 어울리지도 않는 너저분한 차림새로 소파에 발을 올려놓고 텔레비전을 보았다. 남편이 자러 가면 수정은 뒤바뀐 소파 툴의 위치를 소파와 직각으로 되돌려 놓았다. 수정은 점점 더 자신과 남편이 완벽한 새 아파트에 어울리지 않는 흠집이라고 느끼기 시작한다. 초라해 보이는 남편에게 화가 치밀어 오른다. 수정은 완벽한 거실에 나갈 때마다 외출을 하듯이 샤워를 하고 화장을 하고 외출복을 입고 양말까지 신는다. 그러고도 자신이 <새 아파트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빈방으로>(같은 책) 쫓기듯이 숨어드는 것이다. 그저 소설적 비약이라고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이야기이다.

 

    욕망으로 내면이 어수선해지면 결국 머지않아 외적으로도 어수선해진다. 도덕적인 삶은 자신을 잘 다스릴 줄 아는 삶이지만, 부도덕한 삶은 욕구와 열정에 사로잡혀 휘둘리는 삶이다. (20)

 

    김이설의 소설 <빈집>에 관한 이야기가 좀 길어진 것 같다. 소개하려는 책과는 무관해 보이는 소설 작품 얘기가 생뚱하게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책 샤를 와그너가 쓴 <단순한 삶>을 읽으면서 김이설의 <빈집>을 떠올렸다. 서평을 쓸 때 <빈집> 얘기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샤를 와그너도 김이설의 소설을 읽었더라면 필시 마음에 들어 했을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에 씌여진 이 책이 오늘날의 세태와도 서로 공명하는 것을 반갑게 여겨야 할까. 그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우리의 사회생활을 불안하고 복잡하게 만드는 이유를 조목조목 따져 보라.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그 목록은 제법 길어질 테지만, 결국은 본질과 부수적인 것을 혼동하는 보편적인 원인에서 비롯된다. (25)

 

    19세기 프랑스의 진보적인 목사가 쓴 이 책은 단순한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주제에 대한 현실적이고 명쾌한 조언이 담겨 있다.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수많은 유혹 속에서 삶의 본질 즉 알맹이를 취하면서 사는 것이 샤를 와그너가 말하는 단순한 삶이다. 그가 말하는 삶의 본질이란 인간다운 아름다움을 지키며 사는 것이다. 단순한 삶이라고 하면 먼저 형식적인 소박함 같은 것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그러니까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들의 삶 같은 것 말이다, 책에서 강조하는 단순함은 형식이나 기술이 아닌 일종의 마음가짐이다. 얼마나 소유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소유하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단순함이 드러나는 외적인 징후가 전혀 없다거나, 그 나름의 습관이나 특징적인 기호와 방법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거짓으로 꾸밀 수도 있는 외적인 면모들을 본질 자체와 깊고도 완전한 내면의 원천과 혼동해선 안 된다. 단순함은 일종의 정신 상태다. 단순함은 우리 삶에 활기를 불어넣는 핵심 의지에 있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존재방식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일 때, 다시 말해서 아주 솔직하게 그저 한 인간이고 싶을 때 가장 단순하다. (31)

 

    샤를 와그너는 물질적 풍요가 반드시 행복의 지표는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인간의 허영심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한다. 인간의 복잡한 욕망이 쌓아 올린 사회라는 건축물, 즉 인류의 거대한 집 안에서 어쩌면 우리의 참된 자아는 김이설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곁방으로 쫓겨난 신세인지 모른다. 쇼윈도 인생, 보여지기 위한 삶에 익숙해진 현대인의 삶은 부자연스럽고 복잡해지고만 있다. 자기 본성과 욕구 의지와 유리된 채 타인의 시선에 갇힌 삶은 공허하고 피곤하다. 이런 삶은 샤를 와그너가 말하는 단순한 삶, 인간다운 삶과는 거리가 있다. 욕망과 필요를, 부수적인 것과 본질을 혼동하지 말라는 샤를 와그너의 말은 그가 말하는 주제처럼 단순하고 소박하다. 이 단순하고 소박한 진리를 실천하는 일이 우리에게는 왜 이토록 어려운가 말이다. 이 책에서 그는 단순함의 본질부터 생각하고 말하기, 명성과 선행, 아이들 교육법에 이르기까지 삶에서 우리가 부딪치는 가장 일상적인 문제들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을 들려준다. 단순함에 대하여 240쪽에 달하는 장광설이 필요하다니. 그러고도 모자라서 우리는 계속해서 단순한 삶의 기술을 배우려고 다른 책들을 뒤적일 것이다. 샤를 와그너라면 이렇게 충고했을 것이다. 책 말고 당신 자신을 들여다 보라고. 가장 단순한 표현으로 이 책이 말하는 단순한 삶에 대해 정리하면서 이 글을 마치기로 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자기 본질에 충실한 삶. 이 책이 말하는 단순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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