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도덕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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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과 결혼에 관한 파격적인 담론을 펼치는 이 책은 1929년 출간 당시부터 큰 물의를 빚었다. 책이 출간되고 십 년이 흐른 1940년에는 러셀의 임용을 약속한 대학에서 일방적으로 취소 통보를 해 오기도 했다. 이 책에 대한 당시 사회의 냉담한 반응은 경직된 인습과 그로 인한 폐해를 비판한 러셀의 주장에 대한 훌륭한 반증이 된 셈이다. 러셀에 의하면 <서슬이 시퍼런 도덕은 대개 음탕한 감정을 억누르기 위한 반작용>이었으니까.

 

     교회는 육체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하나같이 죄로 이어지기 쉽다는 이유로 목욕하는 습관을 비난했다. 불결한 것을 칭송했고, 신성한 냄새는 날이 갈수록 지독해졌다. 성 바울라는 육체와 의복이 청결하다는 것은 영혼이 불결하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몸에 기생하는 이를 하나님의 진주라고 불렀고, 몸에 이가 들끓는 것을 신성한 사람이 마땅히 지녀야 할 표식으로 여겼다. (본문 중에서)

 

     러셀은 이 책에서 생물학적 본능에 반하는 결혼 제도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면서 낡은 성윤리와 결혼관의 쇄신이 필요하다는 논지를 전개해 나간다. 러셀은 성욕과 성행위는 본능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개인과 사회에 왜곡된 성윤리를 주입한 초기 기독교와 가톨릭의 교리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원죄설을 기반으로 하는 초기 기독교와 가톨릭의 영향을 받은 금욕적 인습은 시대적 문화적 변천을 거치면서도 개인과 사회 깊숙이 박힌 죄의식을 뿌리 뽑지는 못했다. 성행위는 물론 성욕을 느끼는 것도 죄악이라는 인습이 지배적인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부모가 되고 그 부모 역시 자식에게 폐쇄적인 성의식을 심어주는 악순환을 반복해 왔기 때문이다.

 

      중세에 고귀한 정신을 가졌던 사람들은 지상의 삶을 혐오했다. 인간의 본능을 원죄와 타락의 산물로 여겼고, 육체와 육체의 욕망을 혐오했으며, 성적인 요소가 전혀 없어 보이는 무아無我의 명상 속에서만 순수한 기쁨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입장을 가진 사람은 사랑의 영역에서 단테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남성은 몹시 사랑하고 흠모하는 여성과 성교라는 관념을 결부시키지 못한다. 모든 성관계는 불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러셀은 거의 모든 문명사회에서 채택하고 있는 일부일처제와 거기서 빚어지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광범하고 심도 있는 논의를 펼친다. 논의의 중심에 있는 기독교의 금욕적 성윤리의 해악에 대해서는 여러 시대 여러 방향에서 재고하는 한편 일그러지고 불구가 된 성의식이 만연한 개인과 사회의 복지를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일부일처제 사회의 전통적인 도덕가들은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며 간통의 심리를 곡해한다.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질투심 때문에 이 그릇된 이론에 목을 매단 채 허풍을 떠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따금 볼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배우자보다 의도적으로 더 좋아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간통은 합당한 이혼 사유가 아니다. (본문 중에서)

 

     러셀은 결혼의 주요한 의의를 자손의 출산과 양육이라고 보았다. 그의 결혼관에 따르면 부인이 임신하지 않았다는 의사의 증명서만 있으면 아이 없는 부부의 이혼을 허용해야 하며, 간통은 합당한 이혼 사유가 되지 못한다. 미혼 남녀의 유사 결혼을 권장하는 한편 가부장제의 붕괴를 예고하면서 새로운 결혼관과 가족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당대의 인습과 성적 금기를 건드리는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은 1950년 노벨문학상 수상에 큰 공헌을 하기도 한다. 쉽게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거의 한 세기를 지난 현 시점에도 공명할 수 있는 논점들이 분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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