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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3월
평점 :
프리랜서 작가인 '나'의 삶은 바닥을 치고 있다. 번번이 퇴짜 맞은 원고가 쌓여가고 수중에 있는 재산이라고는 4,264원이 전부이다. 밀린 월세 때문에 세들어 사는 집에서 쫓겨날 판인데 마땅한 일거리도 없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답답한 현실에 쫓기듯 걸음을 내딛던'나'는 불광천 다리 밑에서 구인 전단지를 발견한다. "일하실 분 찾습니다. 일당 오만 원. 성공 보수도 있음. 젊고 건강한 사람 우대. 문의는..."전재산이 오천원도 되지 않는 '나'에게 오만원은 거액이었고 '성공 보수'라는 문구 또한 유혹적이다. 서른셋, 내세울 거라고는 젊음과 건강한 몸뚱이밖에는 없는 '나'는 눈앞에 나타난 황홀한 미끼를 덥석 물 수밖에 없었다.
"멀쩡한 어른이 먹고살려고 이런 일을 해요?"
"누나는 멀쩡한 어른이 아니야."
"그럼요?" (...)
"우리는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쫓는 어른들이야."
"정말 멀쩡한 어른이 아니네요." (본문 중에서)
황홀해 보였던 미끼는 황당한 세계의 밑바닥에 '나'를 철퍼덕 내던져 놓는다. 거기, 낡은 소파 위에 섬처럼 떠 있는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오리 한 마리를 찾고 있다. 한데, 보통 오리가 아니다.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다. 노인이 삼 년째 애지중지 길러온 가족 같은, 아니 "유일한 가족"이었던 고양이 호순이를 노인이 보는 앞에서 통째로 꿀꺽해버린 범압(犯鴨), 말하자면 범죄오리를 찾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주요 업무였다. 딱히 업무 방식이랄 것도 없다. 사건(!) 현장인 불광천의 오리들을(정확히 말하면 잠재적 용의자 얼굴을) 사진에 담아오는 일이 업무 내용의 전부다. 대체 이게 말이 되는가. 그 오리가 저 오리 같고 저 오리가 그 오리 같은 오리 얼굴을 어떻게 판별하겠나. 아니, 그보다 앞서 오리가 고양이를 잡아먹는 일이 현실에서 가능하기는 한가.
왜 하필 오리였을까. 오리보다는 개가 더 그럴싸하지 않나. 개가 고양이를 물어 죽이는 일이라면 흔치는 않아도 있을 법하지 않은가. 골똘히 생각해본 다음에야 깨달았다. 얼마든지 있을 법하기 때문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적어도 노인에게는 그랬으리라. 노인에게 필요한 것은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 그러니까 진실이 아니라 왜곡된 진실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진짜가 아닌 가짜. (본문 중에서)
제11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는 제목 그대로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쫓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그래. 여기저기서 헉소리가 들려온다.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가 현실에 존재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니까. 따라서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찾는다는 노인의 말은 허구가 된다. 노인의 '범압 소탕작전'에 휘말린 '나'와 '여자', '아이' 역시 허구를 쫓는 셈이 된다. 실로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에 대한 노인의 서사는 매우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것이어서 '나'를 비롯한 세 사람은 한순간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가 존재할 가능성을 고려해보기까지 한다. 자신이 만들어낸 허구에 사로잡힌 노인과 허구의 주인공을 쫓는 인물들은 허먼 멜빌의 소설《모비딕》을 떠오르게 한다. 허구라는 망망대해에서 또 하나의 허구를 찾아헤매는 노인과 하수인들의 무모함과 절박감은 흰고래를 쫓는 에이해브 선장과 선원들의 광기를 닮아 있다.
"좀 더 듣게. 좀 더 차분히 들으라고. 알겠나?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가 판지로 만든 가면이야. 그러나 어떤 일이라도...... 의심할 수 없는 이 생의 행동 속에서는 말야. 그 엉터리 가면 뒤에서 무언가 알 수는 없지만 엉터리가 아닌 것이 고개를 쳐드는 법이야. 만일 사람을 때려주고 싶다면 그 가면을 찢어버리게. 죄수는 벽을 때려 부수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네. 내게는 저 흰고래가 바로 벽일세. 바싹 가까이 다가와 있네. 그야 저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수도 있지. 그러나 그게 뭐란 말인가? 그놈이 나를 마구 휘두르며 덤벼들고 있어. 그 바닥을 알 수 없는 게 나는 미워 견딜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흰고래란 놈이 심부름꾼이건 두목이건 나는 이 미움을 그놈에게 풀고 싶은 거야. (<모비딕> 동서문화사, 2007, 222쪽) (본문에서 재인용)
김근우는 노인의 목소리에 에이해브 선장의 목소리를 덧입히면서 '허구'를 쫓는 사람들의 심리를 대변하는 한편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의 상징성을 절묘하게 풀어낸다. 허구의 세계에서 불가능한 것은 없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할 수 없는, 이를 테면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의 존재 역시 허구의 세계에서는 가능하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고양이를 잃은 슬픔에 빠진 고독한 노인과 돈 없고 빽 없고 능력도 없는, 삶의 가장자리에 내몰린 가련한 인생들(이들에게는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여자, 남자, 아이, 노인으로만 불린다)이 열심을 다해 몰아가던 허구의 배가 마침내 삶의 진실을 낚아올릴 때 느껴지는 저릿한 감동은 '이야기'를 즐기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익숙한 감각이다.
불광천은 마포 망원지구에서 홍제천과 합류한다. 저 물이 그 물이고 그 물이 저 물이고, 저것과 그것이 결국 하나가 되어 어느 게 저것이고 그것인지 분간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게 되는 그런 지점, 그 지점은 수심이 꽤 깊었다. 거기서부터 한강까지는 불과 몇 킬로미터 되지 않았다. (본문 중에서)
반짝 인기를 누리던 광명의 시절을 녹슨 훈장처럼 간직하고 있는 '나'는 언젠가 '진짜' 문학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을 접을 수 없다. 장르소설, 이른바 경계문학을 해 온 '나'는 사람들의 멸시와 '가짜'라는 꼬리표가 익숙하면서도 억울하다. 실제로 장르소설을 써 온 김근우는 그간 이어온 문학적 고민들을 '나'의 목소리에 싣고 있다.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기준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 절박한 물음이 이야기를 떠받치는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김근우는 시종 안정적인 문장과 넉살 좋은 입심으로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단조롭지만 힘 있는 구성으로 독자를 휘어잡는 솜씨가 보통 아니다. '진짜'와 '가짜', '진짜 같은 가짜'와 '가짜 같은 진짜'를 정신없이 뒤섞고 감추는가 하면 이내 눈앞에 들이미는 이 황당한 이야기에 휩쓸려 가다 보면 "저 물이 그 물이고 그 물이 저 물이고, 저것과 그것이 결국 하나가 되어 어느 게 저것이고 그것인지 분간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게 되는 그런 지점"에 이르게 된다. "그 지점은 수심이 꽤 깊"다. 정신 없이 휩쓸려 온 독자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가라앉으면서 점점 가라앉으면서 마침내 이야기와 한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