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탄생 - 사라진 암호에서 21세기의 도형문까지 처음 만나는 문자 이야기
탕누어 지음, 김태성 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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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는 사회 풍속의 흔적이다. 


           -  미하일  바흐친 (Mikhail Bakhtin)

 




  



    대만 출신 문화비평가 탕누어唐諾는 이 책에서 (한자의 뿌리가 된) 갑골문에 담긴 인류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통시적으로 탐찰한다. 갑골문 이전 존재했던 소수의 문자나 부호부터 현재 통용되고 있는 한자어까지 이른바 한자의 변천 과정을 인문학적 사유와 곁들여 풀어낸다. 한눈에 그 의미가 드러나는 것부터 상상과 추론이 필요한 복잡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갑골문을 섬세하게 재현해 내면서 구체적인 문자 형성 과정을 보여주는데, 한자에 생무지인 사람도 어렵지 않게 그 아름답고 기이한 갑골문의 세계에 입장할 수 있다. 



   상형자는 문자이기 때문에 미세한 것까지 완벽하게 그릴 필요는 없다.그것이 어떤 흔적이든 발자국이든 새끼줄이든 암호든 간에, 신속하고 경제적으로 사물 또는 개념의 독특하고 구별되는 특징을 포착할 수 있으면 된다. 하지만 이 특징은 보통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구별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사물(최대의 공동 기억)이 가장 좋다. 위로는 해와 달과 별을 올려다보고 아래로는 들짐승과 날짐승, 벌레와 물고기들을 굽어보게 된다. 문자는 편리하게도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고 중첩되며, 보고도 잘 이해가 되지 않으면 내일 해가 뜨고 날이 밝을 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일 수 있는 그런 것들로부터 시작됐다. (본문 중에서)



    탕누어는 익숙하거나 낯선 한자어의 갑골문 조형을 우리 눈앞에 펼쳐 보이면서, 그 이면에 깔린 놀랍고 참신한 이야기를 길어올린다. 태아가 어머니의 둔부 아래쪽으로 빠져나오는 출산 과정을 소박하게 묘사하고 있는 '육 ' 자(출산 과정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을 이 글자에서 확인할 수 있다)어미가 아이를 등에 업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는 ' 보 ' 자, 손에 밧줄을 잡고 갓난아기를 교살하는 장면을 형상화한 ' 기 ' 자, 작대기로 노인을 살해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교' 자 등 하나의 문자 안에 이토록 광대한 세계가 펼쳐져 있을지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익숙한 한자어도 오래 들여다 보게 된다. 한 획 한 획, 흘리듯 찍힌 점 하나에도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망' 자가 아직 완성되지 않고 진행 중인 '봄'의 행위라고 말할 수도 있다. 미완성인 이유는 우리가 아직 선명하게 보지 못했거나, 선명하게 보았다 해도 아직 분명하게 생각하고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본 어떤 대상이 사실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거나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따라서 눈앞의 사물이 우리의 망막 위에 선명하게 맺히는 자연현상 외에 '바라본다'는 행위는 '바람'과 응시', '기다림'을 나타낼 수 있고 '상실'이나 '고독' 같은 의미의 층차를 담을 수도 있다. (본문 중에서)



   "영원한 미완성의 체계"라 할 수 있는 문자의 가변성은 끝없는 변화 속에 내던져진 인간 존재의 삶을 그대로 반영한다. 한자의 조자造字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당대인의 사유 방식과 생활 풍속이 흡수될 수밖에 없다. 인간 삶의 형태나 사고방식은 어떤 식으로든 변화하고 발전한다. 삶의 기본 도구인 문자의 변화 역시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문자의 불완전성은 곧 인간의 불완전성이기도 한 것인데. "잘못 이해하기"와 "잘못 읽기", "잘못 쓰기"도 문자의 생장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미1' 자처럼 계산적이고 논리적인 통찰에서 탄생한 문자도 있다. 하지만 무작위적이고 임의적인, 거친 황무지 태생의 문자들도 수두룩하다. 



     '시' 자 부호의 진정한 불운은 한 구의 시체가 됐다는 것이 아니라 죽지 못해 살듯이 더러운 곳으로 추락하는 처지가 됐다는 것이다. 인체의 부호가 있는 글자는 갑골문 중 수가 가장 많은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전서篆書'에서 '예서隸書'를 거쳐 '해서楷書'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다른 부호들은 대체로 순조롭게 '인' 또는 인' 의 형태로 변화했고, 상당수는 다른 선 안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됐다. 오직 몇 개의 글자만이 고독하게 이 길을 걸어 '시' 자가 됐다. 재수 없게 '시'로 변한 글자는 그 의미가 우아하지 못하기가 상당히 쉽다. 그중 '미'자는 이미 상당히 문명화된 글자이고, 그보다 못한 것으로는 '고'(궁둥이)자와 '초'(남성의 음부)자, '비'(여성의 음부)자 등이 있으며, 배설을 나타내는 '비' 자와 '시' 자, '요' 자 등도 있다. 이런 좋지 않은 의미들을 모두 종합해 분석해 보아도, '시' 자 부호는 누구에게도 미움을 살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다. 음모를 꾸미는 것은 문자의 발전에서 끝없이 나타나는 인간의 무작위적이고 우연적인 사유일 뿐이다. (본문 중에서)



    무려 3,000~4,000년여의 세월을 가로질러 지금 여기 이런 형태로 우리 앞에 놓인 (태연자약한) 한자어들이 숨기고 있는 아름답거나 잔혹한 생의 궤적을 살피는 일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는 우리의 언어와 언어생활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로 삼아도 될 것 같다. 굳이 의미를 캐지 않더라도 좋다. 이 책을 구성하는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과 번뜩이는 통찰, 해학만으로도 읽을 만한 충분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미尾' 자의 갑골문 조형

 

 

 

 

 

 






1

   이 갑골문은 부엔디아 가족의 근친혼으로 태어난 왕도마뱀 같은 기형아일까? 아니면 가을날 오후에 참억새나 사리풀을 꺾어 몸에 꽂고 가는 딸아이의 지난날일까? 

이치로 보자면 답은 후자에 더 가까울 가능성이 크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이 글자의 엉덩이에 자라난 괴상한 꼬리를 이전에도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다. 이와 비슷한 형태가 '무無' 자에 나오는 사람의 손에도 나타났었다. (...) 이것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춤을 추는 사람을 묘사한 글자다. 두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내 딸아이가 허리춤에 꽂았던 참억새나 사리풀이다. '미尾' 자의 주인공인 괴상한 사람의 꼬리와 일치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이 진짜 꼬리로 조상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 인류의 기원에 대한 기억을 남기거나 일찍이 발생했던 인류의 참극을 기록하여 교훈으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라, 인공으로 제작한 물건으로 일종의 장식품일 수 있다는 합리적인 추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럴 경우 이 물건은 축제나 제사 때 사용한 일종의 분장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꼬리는 도처에 얼마든지 있는데, 왜 굳이 인공 조형물을 이용하여 진실을 가장하고 혼란스럽게 한단 말인가? 나중에 모든 진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글자를 만든 사람의 고심과 섬세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동물 형상의 갑골문 중 가장 아름답고 길게 말린 꼬리를 가진 것으로는 호랑이와 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동물들의 꼬리는 당연하게도 '맞는 동물'의 '맞는 위치'에 자라나 있다. 꼬리의 위치가 너무 정확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이 동물들의 꼬리를 구별하여 글자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동물 전체가 아닌 꼬리로 옮길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지사 부호의 직선 커서 또는 곡선 커서를 빌려 표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글자를 만든 사람들은 이런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주 자신만만하게 1차적 감각의 실존 세계에서 벗어난, 기이하고 경악스러운 나머지 그 괴이한 꼬리를 볼 수밖에 없는 모습으로 정보를 고착화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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