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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말하다 - 세계의 문학가들이 말하는 남자란 무엇인가?
칼럼 매캔 엮음, 윤민경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신기하다. 사람 몸에서 이리 많은 눈물이 흐를 수도 있구나. 볼을 타고 줄줄 흐르는 내 눈물을 골똘히 들여다 보면서 그 사람이 던진 말이었다. 혐오나 조롱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경이였다. 우는 사람을 처음 보는 듯이 나를 관찰하는 태도가 눈물을 멎게 했다. 충격이었다. 살면서 그런 상황은 또 처음이었다. 나는 눈물을 닦고 앞에 있는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아닌 눈물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그는 나와는 별개의 생물처럼 여겨졌다.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그 이상한 생명체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바로 '남자'였다.
"그럼, 어릴 때 아빠는 눈물이 나오려고 할 때마다 대신 노래를 불렀다는 거예요?" "아니, 아빠는 노래를 잘 못해. 그래서 울고 싶을 때마다 주로 누군가를 때리곤 했단다."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것 참 이상하네요." 레브는 골똘히 생각하면서 말했다. "난 행복할 때 누군가를 때리는데." (163쪽)
남자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다양한 형식으로 대답하는 이 책에서도 남자의 형편 없는 공감 능력은 주된 이야깃거리가 된다. 자기 감정을 억누르고 나약함을 애써 감추면서 만화영화에나 나올 법한 영웅 놀이에 심취하는 남자들. 자기 감정을 돌보지 않는 그들은 자기 자신과의 불화로 지치고 외롭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으니까 누구에게 위로받기도 불가능하다. 눈물이 나오려고 하거나 행복해지면 누군가를 때리면서 그게 남자다운 거라고 자위할 뿐이다.
그날 밤, 소년은 자신의 방 거울 앞에 벌거벗은 채 서 본다. 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혐오한다. 털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섬세하고 가녀린 몸, 그리고 그 안의 나약함이 보인다. 그는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잘려나간 머리털을 가슴과 겨드랑이에 풀로 붙인다. 자신의 높고 가는 목소리를 없애보려 휘발유를 들이마시고 성냥에 불을 붙여 삼킨다. 양팔 근육을 칼로 베어내 벌리고 그 사이로 돌멩이들을 집어넣어 근육이 부풀어 보이게 한다. 허벅지와 종아리뼈를 반으로 쪼개고 쪼개진 뼈 사이에 각목을 대어 키를 늘린다. 작은 성기를 긴 칼로 베어내 중간에 칼을 꽂는다. (226쪽)
'남자다움'이란 관념에 희생된 남자들의 진짜 속내도 이야기 곳곳에 묻어난다. '거짓말쟁이'와 '사기꾼' 노릇에 지친 남자들은 이제 모르는 것은 그저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울고 싶을 때 울고 무서우면 달아나고 좋으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단순한 삶은 그들에게 너무 먼 이야기일까. 영웅 놀이에 질린 남자들은 그저 사람 노릇을 하고 싶은 것인데.
때로는 제가 남자가 아니길 바랍니다. 그저 나무이기를 바라기도 하지요. 사람들은 겨울에도 나무에 꽃이 피길 원하지만 나무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러면 사람들도 더이상 나무에게 겨울에도 꽃을 피우길 바라지 않지요.(134쪽)
세계적인 작가 여든 명이 말하는 남자 이야기는 짧지만 굵직한 여운을 남긴다. 단편, 에세이, 직설적인 충고에 이르는 다양한 형식이 읽는 맛을 더한다. 이야기 형식은 갈리지만 요지는 하나로 모아진다. 남자는 지상에서 가장 고독한 생명체라는 것. 그래도 긍휼히 여겨서는 안 된다. 자존심을 다친 남자가 생존을 위협 받은 짐승처럼 뾰족한 이빨을 세우고 당신에게 달려들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