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노먼 F. 매클린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소개하는 책은 영화의 원작이 된 《흐르는 강물처럼 A River Runs Through It, 1992, 미국》과 두 편의 중, 단편을 싣고 있어요. 노먼 매클린이 말년에 써 낸 이 책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소설집인데요. 국내에서는 이 책이 첫 완역본입니다. 표제작을 제외한 두 편의 소설은 노먼 매클린이 청년 시절 산림청에서 임시 노동을 했던 경험이 녹아 있습니다. 산림청 관리와 벌목 일에 대한 상세한 기술이 조금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이어지는데요. 특징을 잘 살려낸 인물 묘사와 삶의 희비극을 재치있게 다루는 솜씨가 지루함을 상쇄합니다. 두 편의 소설에는 크게 한탕 잡으려는 노름꾼들이 등장하는데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노름빚에 쫓겨 죽임을 당하는 동생 폴의 세계를 살짝 엿볼 수 있습니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씌었다는 공통점 외에도 책에 실린 세 편의 소설들은 숨은 의미나 내용 면에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데요. 연작 소설로 읽어도 무방해 보입니다.

    표제작 《흐르는 강물처럼》은 다소 밋밋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화자인 '나'가 가족의 삶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요. 소설적 긴장감이 없는 평면적인 구성이 답답하고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요. 소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플라이 낚시 기술에 관한 묘사 역시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도 있는데요. 이 부분은 크게 신경 쓸 것 없습니다. 소설에서 묘사하는 낚시 기술은 이해를 요하지 않거든요. 낚시는 그저 이야기의 미끼일 뿐이니까요. 

  

   시인들은 '시간의 점(点)들'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나 영원을 순간으로 압추기켜 놓은 그 시간의 점을 실제로 체험하는 사람은 낚시꾼들이다. 온 세상이 물고기였던 순간이 있었으나 갑자기 그 물고기가 사라져버렸으니 그거야말로 시간의 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는 그 도망친 놈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본문 중에서) 

 

     장남인 노먼과 동생 폴은 장로교 목사인 아버지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 성장합니다. 아버지는 형제에게 '아름다움'만이 타락한 본성을 구원한다고 가르칩니다. 힘과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서는 신의 리듬을 따라야 한다는 것인데요. 열렬한 낚시꾼이었던 아버지는 낚시야말로 신의 리듬을 구현하는 아름다운 동작이라고 확신합니다. 원칙적이고 감정 표현에 인색한 아버지는 플라이 낚시를 통해 두 아들과 교감을 나누는데요. 똑같이 아버지에게 낚시를 배운 두 아들은 전혀 다른 성향을 보입니다. 아버지에게 배운 네 박자 리듬을 벗어나지 않는 노먼과 달리 동생 폴은 자기만의 독창적인 리듬을 타고 물고기를 낚아올립니다. 폴의 삶을 움직이는 리듬은 충동과 직관입니다. 본성에 충실한 그의 삶은 신의 대리자인 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타락이지요. 타락한 폴은 그 자신의 본성 때문에 불행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요. 폴의 죽음과 그를 받아들이는 가족들의 태도는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나는 거기 앉아서 잊어버리고 또 잊어버렸으며, 마침내 흘러가는 강물과 그것을 바라보는 나만이 남았다. 강물 위에서 더위의 아지랑이들이 서로 춤을 추었고, 이어 서로 관통해 나가더니 다시 서로 손을 잡고서 서로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마침내 강물을 바라보던 자는 사라져버리고 거기에는 오로지 강물만 남았다. (본문 중에서) 

 

     노먼 매클린은 이 소설에서 '강물'과 '낚시'라는 소박한 미끼를 던져서 삶의 의미들을 멋지게 포획합니다. 단단하고 유려한 문장에서 솟구쳐 오르는 생의 이미지들! 부서지는 햇살과 물고기, 젖은 돌멩이들. "영혼과 기억"과, 침묵, 그리고 말씀... 노먼 매클린의 '강물'에는 많은 것들이 잠겨 있습니다. 강물의 침묵 또는 말씀을 낚아올리는 것은 읽는 이 각자의 몫으로 남는데요. 여기에 바로 이 소설의 매력 아니, 마력이 있습니다.

​    낚시꾼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낚시 행위 그 자체를 이 세상과 별도로 떨어진 하나의 완벽한 세계로 만들고 싶어한다. 나는 그 세계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떤 때는 내 팔에 있는가 하면 어떤 때는 내 목구멍 속에 있고, 또 어떤 때는 깊숙한 곳 그 어디라는 느낌만 들 뿐 구체적으로는 어디에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많은 낚시꾼들이 그 세계가 완벽해지기를 기다리면서 그토록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그들은 더 좋은 낚시꾼이 될 것이다. (본문 중에서)

​    이 소설을 통해 노먼 매클린은 탁월한 낚시꾼임을 증명합니다. 단조롭게 흐르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낚시의 진정한 의미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제 막 미끼를 물고 수면 위로 튕겨져 나온 물고기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제야 강물 소리가 들려오고. "강물은 아주 많은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한참을 강둑에 서 있게 됩니다. 그래요, 완전히 낚이는 것이죠. 

   ​ 모든 것은 하나로 융합되고 그 속으로 하나의 강이 흐른다. 강은 세상의 대홍수에 의해 조성되었고, 시간의 근원에서 흘러나와 돌들 위로 흘러간다. 어떤 돌들에는 태곳적의 빗방울이 새겨져 있다. 그 돌들 아래에는 말씀들이 있고, 그중 어떤 것은 돌들의 말씀이다. (본문 중에서)

    ​"나는 언제나 강물 소리에 사로잡힌다." 소설은 이렇게 끝맺고 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크고 아름다운 물고기를 낚아 올린 낚시꾼의 기분이 이렇겠지요. 이 한 문장을 건져올리기 위해 그토록 많은 미끼가 필요한 거였구나.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흐르는 강물처럼》은 말보다는 음악에 가까워 보입니다. 말을 보탤수록 이 소설과는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 들어요. 여기까지만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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