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 대화하기 - 애견 언어 교과서
미동물행동심리학회(ACVB) 지음, 장정인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어릴 때 나는 세상 모든 개들이 사람을 물어뜯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다. 길 모퉁이마다 지뢰처럼 숨어 있던 크고 작은 개들. 내가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거친 숨을 흘리며 날뛰던 개들. 달음질하는 내 뒤를 힘차게 추격하던 개들. 개들. 개들! 그 시절, 모든 개들은 거대한 '이빨!'이었다. 더러운 털로 뒤덮인 네 발 달린 이빨들을 피해 달아나는 일이 나에겐 중요한 숙제였다. 세상을 향해 뾰족한 이를 드러내고 온몸으로 발광하던 개들. 그때 그 개들을 사나운 짐승으로 만든 것이 인간의 무지였음을 이제는 안다. 소 돼지 닭처럼 개는 그냥 개에 불과하던 시절이었다. 한 자리에 묶여 사람 음식 찌끼를 해결하는 가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구십년대 후반부터 애견 인구가 무섭게 늘기 시작해서 지금은 천만 명을 넘겼다. 최근 몇 년 사이 동물학대법이 강화되고 반려견이라는 명칭도 생겼다. 인간의 소유물이던 개들이 삽시에' 친구가 된 것이다.

​   (...) 늑대가 조상이라 할지라도 개는 늑대가 아니며 늑대와 매우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돌보는 사람 없이 개를 홀로 내버려 두었을 때 개가 하는 행동은 이 세상을 지배하려 드는 것과는 관련이 없으며, 우리가 '개떼의 우두머리'가 될 필요도 없다. (머리말 중에서)

    개의 신분상승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개와 인간이 친구가 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급증하는 유기동물들이 이를 증명해 보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개에 무지한 상태에서 개를 기르기 시작한다. 귀엽고 앙증맞던 강아지는 크고 시끄러운 사고뭉치 개로 전락한다. 사람들은 개가 멍청하거나 복종심이 부족하다고 불평한다. 고함을 지르거나 무력을 사용하면서 개와 기싸움을 한다. 개는 점점 더 나빠지고 사람들은 끔찍한 짐승'을 거리에 내버린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개를 기르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다. 천한 가축이었을 때나 '반려'견이 된 지금이나 개들의 사정도 크게 나아지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개들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외부인이 접근하면 짖어서 알리고 주인이 밥 주면 꼬리 몇 번 흔들어주면 되었던 가축의 일상이 더 평온해 보이기도 한다. 사람을 봐도 짖거나 따라가선 안 되고, 똥 오줌은 지정된 장소에, 사람 물건은 물고 뜯어선 안 되고, 더러운 곳에 앉거나 뒹굴어서도 안 되고, 안 되고... 안 되는 것투성이다. 인간의 '친구', 반려견으로 사는 개들의 피곤한 심정을 생각해 보았나. 우리의 반려견들은 이렇게 외치고 싶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개지 사람이 아니라고요! 왈왈.

    개가 뭔가 해주기를 기대한다면, 그에 대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개는 무보수로 봉사할 생각이 없을 테니까. 그러나 개가 일단 단어와 행동을 결부시킬 줄 알면, 개한테 행동을 시킬 때마다 이에 대해 매번 보상할 필요가 없다. 사실, 그래서는 안 된다. 개의 입장에서는 언제 보상해 줄지 전혀 알 길이 없으므로 언젠가는 여러분이 크게 한턱 쏘겠지 하는 희망을 품고 '도박'하는 마음 자세로 시키는 것을 계속 할 것이다. (본문 중에서)  

    2009년 가을, 하루를 처음 만났다. 하루는 네 달 된 강아지였다. 동그란 배, 고불거리는 갈색 털, 살랑거리는 꼬리. 새카만 눈동자를 굴리면서 되똥거리는 사랑스러운 강아지였다. 그때까지도 개 공포증이 있던 나는 하루를 만지는 것부터 시작했다. 손끝부터 단계적으로(?) 털의 감촉과 체온에 익숙해져야 했다. 용기내어 안아보려다 낯선 촉감에 놀라 하루를 손에서 놓친 적도 있다. 하루 역시 사람 손길에 익숙지 않았을 것이다. 머뭇거리는 손과 바동거리는 털뭉치의 시간들. 샴푸 거품을 뒤집어쓴 채 이 방 저 방 뛰어다니던 하루, 칫솔을 문 채 달아다던 하루, 중성화 수술을 마치고 잠든 것처럼 누워 있던 하루, 하루야 하루야 흔들어 깨우던 기억. 아기 사자처럼 호랑이(장난감)를 물고 다니던 하루. . . 이가 돋아나도 하루는 나를 물어뜯지 않았고, 세상 모든 개는 거대한 이빨'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친구를 얻게 되어 행복했고, 내 친구도 행복하기를 바랐다. 친구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궁금한 점이 생기면 펫샵이나 수의사 선생님을 찾았다. 인터넷에서도 많은 정보를 구했다. 도움이 되는 정보도 있었지만 사실과 어긋나는 정보도 많았다. 몇 년 사이 반려동물 관련 책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눈에 띌 때마다 찾아 읽었다. 대부분의 책들이 개의 본성과 훈련법 같은 것들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몇 권 읽어보면 개들의 생태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래도 뭔가 부족한 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 소개하는 책은 그 알 수 없는 허기를 채운다는 기분으로 읽었다.

   긍정적인 어떤 것을 개한테 건네주기 전에 먼저 앉는 법을 가르치면, 개는 우리가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을 대신하여 결정을 내리도록 허락해 줄 것이다. 다만 이를 충분히, 일관적으로 반복해서 가르쳐야 듣는다. (...)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아이한테 '제발(please)'이라고 말하도록 가르치는 것처럼, 개한테도 무얼 받기 전에 똑같이 하도록 시키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    미 수의 행동심리학회(ACVB)에서 내놓은 이 책은 전문적이고 상당히 분석적이다. 그간 내가 읽어온 책들이 단순히 개의 본능이나 생태 등을 보고하는 형식이었다면, 이 책은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개의 모든 것을 해부한다. 개의 몸짓 언어와 긍정적인 훈련법, 훈련 도구, 나이든 개 돌보기 같은 기본적인 문제부터 공격성, 분리불안, 소리 공포증, 강박증 등 문제가 되는 행동들을 다룬다. 전문용어들이 등장하는데, 읽기에 걸림돌이 될 정도는 아니고, 장마다 용어 정리가 되어 있다. 서문에서 저자(들)은 이렇게 밝히고 있다. "개 주인이 개의 행동 문제에 대해 올바른 과학 정보를 얻고 개의 행동에 관해 널리 퍼져있는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겠다는" 바람에서 이 책을 썼다고. 책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상식이라고 믿는 잘못된 정보를 제시하고 바로잡아준다.

​    개는 얼굴 표정과 몸의 자세로 내적 동기와 의향을 전달한다. 개가 전달하는 신호를 알아들으려면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리가 탐지하기에 개의 신호는 너무 빠르고 미묘하다. 예를 들어, 숨쉬는 패턴이 변한다면 개가 불편하다는 신호일 수 있다. 또 특정 품종의 개는 얼굴이 납작하다든지 귀가 헐렁헐렁하다든지 고유의 특성 탓으로 자신의 기분이나 행동의 의향을 신체적으로 전달할 수 없다. (본문 중에서)  

 

    어린 시절 내 뒤를 쫓아오던 사나운 '이빨들!'은 어쩌면 불안하고 겁에 질린 상태였는지 모른다. 본능을 억압하는 환경에 처해 있던, 도움이 필요한 개였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내 몸짓이 그들의 사냥 본능을 자극했던 건지도 모른다. 달아나는 것이 내 본능이었다면 쫓는 것은 개들의 본능이니까. 타고난 본능과 언어가 다른 개와 인간이 오해하고 충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개의 문제는 곧 사람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명백한 사실을 간과하는 것 같다. 개가 인간의 친구는 될 수 있어도 인간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개에게 인간의 습성을 강제하는 것은 무지보다도 더 나쁜 것 같다. 문제 행동을 보이는 개들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 책은 그 사실을 일깨워 준다. 개들을 향한 우리의 애정이 너무 일방적이었던 건 아니었나. 온몸으로 쏟아내는 개의 말을 무시하면서 사람의 규칙만 강요하고 있던 건 아니었나. 돌아보게 된다. 물고 뜯고 짖고 아무데나 싸는 개들과 오늘도 씨름중인가. 잘못된 정보와 인간적 오해로 점점 개와 멀어지는 당신을 위한 조언이 이 책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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