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이야기 - 무신론자를 위한
조반니 파피니 지음, 음경훈 옮김, 윤종국 감수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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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의 설교는 길고 지루했다. 나른하게 내리감기는 눈을 치켜뜨면 두툼하게 살 오른 목사의 눈두덩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얇은 방석을 뚫고 올라오는 마룻바닥의 찬 기운에 오소소 몸이 떨렸다. 불편함과 냉기가 나를 무릎 꿇렸다. 하반신에 감각이 사라질 때까지 목사의 설교는 이어졌고, 벌 받는 죄인이 된 심정으로 나는 몸을 한껏 옴츠렸다. 이따금씩 목사는 죄인들을 벌하려는 하느님처럼 두 팔을 높이 쳐들고 성경 구절을 외쳤다. 우렁우렁 울리는 목사의 음성이 하느님의 것이라도 되는 양 노인들은 고개를 떨구고 작은 어깨를 떨었다. 그런 광경은 어린 나를 주눅들게 했고 내심 반항심을 품게 만들었다. 보이지 않는 크고 우악스러운 힘이 사람들의 머리를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하느님도 하느님 흉내를 내는 목사도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자라서도 그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독교인들만큼 끈질긴 종족은 없을 것이다. 어찌나 끈질기게 전도를 하는지, 나는 오기가 생겨서 성경을 공부해 보기로 했다. 뭘 좀 알아야 반박도 할 수 있을 테니까. 성경을 해석해 놓은 비디오를 보고 성경책을 읽는 동안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를 구원하려는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면 속시원한 대답이 돌아오지도 않았다. 헛짓이다 싶어서 그만 뒀다.

 

    맹렬하게 기독교를 씹어대던 중학생 동창 세현이는 기독교인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사촌 경희가 와서 어머니하느님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하다 갔다. 말수 적고 부끄럼 많던 경희가 노회한 연설자가 되다니. 어머니하느님이란 이상한 명칭보다도 그게 더 놀라웠다. 저런 게 신, 아니, 기독교의 위력인가. 기독교에 대한 나쁜 인상 때문에 기독교를 나쁘게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기독교인들이여, 내 말도 좀 들어달라. 나는 구원을 믿지 않는다. 

 

    주변인들이 하나 둘 기독교인이 되어갈 때마다 이상한 위기의식을 느낀다. 무엇이 저들을 끌어들이는가 의아하기도 하다. 그러면 또 죄인처럼 성경을 펼쳐놓고 이상하고 지루한 '이야기'를 읽어보기도 한다. 경희는 구원을, 천국을, 영원한 생을 이야기했다. 영생이란 것, 불멸이란 것은 내게 끔찍하고 무서운 벌 같은데, 너는 구원이라고 했다. 정말로 신이 있다면, 믿음 없고 반항적인 나를 늙어 죽게 하기를. 천국도 지옥도 빛도 어둠도 없는 영원한 죽음을 내려주기를. 그것만 기도하고 싶다.

 

    파피니는 드디어 오랫동안 헤매며 찾아왔던 목적지에 도달했다. 신이 사람이 되지 않는 한, 사람은 절대로 신에 이를 수 없다는 진실을 발견한 것이다. 인간이 삶의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은 신이 땅에 내려올 때가 아니다. 신이 사람이 되어야 하고, 무한한 것이 유한한 세상에 들어와야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이 신처럼 불멸의 존재가 되는 것은 오직 육체로 된 신, 즉 예수를 믿는 길밖에는 없다. (프롤로그 중에서)

 

    예수의 삶과 죽음을 연대순으로 조명하고 있는 이 책을 택한 건 예수보다도 저자인 조반니 파피니 때무이었다. 좌파 지식인이었던 파피니는 무신론자였다. 그런 그가 가톨릭에 입문하고 쓴 책이 바로 이 책이다. 1921년에 이탈리아에서 처음 출판된 이후 여러 차례 재판되었고 널리 번역되면서 "가톨릭 문학의 고전" 반열에 올랐다. 한때 무신론자였던, 노벨상 후보에까지 오른 전기 작가가 조명하는 예수의 얼굴이 궁금했다. "가톨릭 문학의 고전"이라고 하니 신화나 소설처럼 읽어도 될 것 같았다.

 

     예수는 영혼의 노동자이기에 앞서 물질 노동자였다. 그의 나라이기도 한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가난한 사람들을 불러 모았지만, 그 역시 가난한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부유한 부모나 커다란 저택은커녕, 푹신한 양털이불조차 꿈꾸지 못할 만큼 가난했다. 하늘의 왕이자 하느님의 아들이 이처럼 비천하고 가난한 목수의 작업실 한 켠에서 살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성경 내용을 바탕에 두고 문학적인 서사와 파피니 개인의 독창적인 해석이 버무려졌다. 상징과 비유로 가득한 성경에 비하면 잘 읽히는 편이다. 신성으로 포장된, 가려진 예수의 인간적인 면모도 잘 살려냈다. 파피니 자신의 목소리가 많이 실려 있어서 주관적이라는 인상이 있지만, 나 같은 무신론자, 예수 무식론자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기독교인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파피니 개인의 주관적인 해석이 이 책을 읽는 참맛이라고 말하고 싶다. 쉽게 읽히지 않는 꽤 두꺼운 책을 끝까지 붙들고 있게 한 것이 파피니의 입심이었으니까.

 

    사람은 천사가 되어야 하는 짐승이고, 영이 되어가는 물질이다. 만일 사람 안에 야수성이 득세하면 인간의 지성은 약화되고 사멸한다. 그리하여 인간은 짐승보다 못한 존재가 된다. (본문 중에서)

 

    무신론자를 위한 예수 이야기라고 하는데, 어떤 의미에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성경을 모르고 예수를 모르는 무신론자(무식론자)가 이 책을 얼마나 소화해낼지, 끝까지 읽어내기는 할지 의문스럽다. 종교와 신화, 역사 등 실로 방대한 내용이 먼저 읽는 이의 어깨를 짓누른다. 성경을 한 번도 읽어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무식론자가 성경을 처음 읽을 때처럼 정신없이 헤맬 수도 있겠다. 길 잃은 양처럼 어둠 속을 두리번거릴 때, 회개한 가톨릭 신자의 열띤 음성이 구원처럼 우렁우렁 울려올 것이다. 매혹적이고 믿음이 가는 음성이어서 어린 양은 천천히 발길을 돌려 그쪽으로 향하게 된다. 두려움과 호기심을 품고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그렇게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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