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생각의 흐름 - 정신의학 전문의 하지현 교수가 제안하는 지식과 감성의 튜닝
하지현 지음 / 해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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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에 묻은 모래가 내 눈으로 들어갔다. 영이는 제 입을 내 눈에 갖다 대고 불어주느라고 애를 썼다. 한참 그러다가 제 손가락에 묻었던 모래가 내 눈으로 더 들어갔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영이도 울었다. 둘이서 울었다. 어느 날 나는 영이보고 배가 고프면 골치가 아파진다고 그랬다. "그래 그래" 하고 영이는 반가워하였다. 그때같이 영이가 좋은 때는 없었다.

                                                                                         * 피천득, 《인연 「우정」 》중에서

 

     빼놓지 않고 보는 티븨 프로그램이 몇 있다.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KBS2)도 그중에 하나다. 일반인들의 소소한(?) 고민을 들어주는 프로그램이다. 고민 주인공들이 호소하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어긋난 관점에서 불거진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나와 대립하는 크고 작은 대상들과 부대끼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이 '공감'이다. 함께 울어주는 것. "그래 그래" 하고 끄덕여주는 것. "하품을 하면 따라 하품을 하"(앞의 산문)는 것. <안녕하세요>의 고민 주인공들이 굳이 방송에까지 나와서 부끄러운 사연을 늘어놓는 것도 다 '공감' 때문이다. SNS와 스마트폰 보급화로 쉽고 즉각적인 대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가벼운 손놀림만으로 보이지 않는 타인과 만날 수 있다. 버스나 지하철, 길 위에서, 화장실 변기 위에서도 사람들은 작고 네모난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손끝으로 터치하는 '공감'과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이 즉각적인 '댓글'에 집착하고 기대했던 반응이 없으면 상처받기도 한다. <안녕하세요>에 소개되는 고민들 중에도 그런 세태를 반영하는 것들이 많다. 카톡에 빠진 엄마의 무관심을 토로하는 고등학생 아들의 사연이나, 페이스북 '좋아요'에 집착하는 여대생의 사연... 이 소심한 여대생은 자신이 올리는 사진이나 글에 친구들이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 것에 상처받는다. 그 사실을 눈치챈 친구들이 '좋아요'를 눌러'주면' 그건 '진심'이 섞이지 않은 공감이라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여대생의 심정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은 즉각적이고 간편한 접촉(대화)은 어느 순간부터 기계적인 공감에 중독된 사람들과 그에 상처받는 사람들, 그러면서 쉽게 떠날 수도 없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먹고 유지되는 것만 같다.

 

​   성숙이란 의존적인 사람이 독립적인 사람이 되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의존성을 적절히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이며, 타인을 필요로 하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지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    영화 《캐스트 어웨이》(미국,2001년)에서 무인도에 떨어진 남자 '척'은 낡은 배구공에 얼굴을 그리고 말벗을 삼는다. 영국의 정신분석학자 로널드 페어베언(Ronald Faibairn)은 자아가 "대상을 찾으려는 목적(object-seeking principle)"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해 자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본능적인 소통 욕구를 지닌 우리 모두는 척의 배구공 친구 '윌슨'이 억지스럽다고 여기지 않는다. 유일한 말벗이던 '윌슨'이 물결에 떠내려가는 장면에서는 윌슨! 하고 목놓아 부르는 척의 상실감을 똑같이 느낀다. 당신도 나도 척의 절실함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소통 욕구가 크면 클수록 관계가 자꾸 어긋나는 것은 왜일까.

​   자기 대상이란 자기애가 너무 강한 사람이 자기 밖의 타인을 자신, 즉 자아의 연장(延長)으로만 인식한다는 개념이다. 그래서 '입 안의 혀처럼 구는 사람'을 원하듯이, 내 안에서 충족되지 못한 욕구가 타인을 통해 해결되기를 집요하게 바란다. 타인은 나의 또 다른 분신인 '자기 대상'이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정신의학 교수 하지현은 이 책에서 소통에 목말라 하면서도 타인의 언저리를 서성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외로움을 진단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고 폭발적인 관계망들 속에서 왜 우리의 소외감은 짙어지기만 하는 것인지, 진정한 공감은 어떻게 싹트는지를 이야기한다. 책에 따르면, 엄마 배 속에서 탯줄로 연결돼 있던 가장 안전하고 완벽한 교감의 기억이 우리 무의식 안에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소통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이 원초적 관계를 이상적인 기준으로 삼게 된다고. 당연히 실망할 수밖에 없다. 세상은 엄마의 안전한 자궁 속이 아니고 말 안해도 알아서 영양소를 공급해주는 탯줄 같은 것도 없기 때문이다.

 

​    쉘 실버스타인(Shel Silverstein)의 우화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The Missing Piece)』에서 이가 빠진 동그라미가 빠진 조각을 채우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절박감을 이해할 수 있다. 동그라미가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 나서게 한 것은 바로 대상에 대한 갈구였고, 그 길에서 마주친 조각들과 빠진 부분을 맞춰보는 과정은 소통의 노력이었다. 그런데 빠진 조각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완전한 공 모양이 되고 싶어한 동그라미는 꼭 맞는 짝만을 찾았기 때문이다. 완벽에 대한 기대감으로 손쉬운 만족감을 거부한 것이다. (본문 중에서)

 

    당신과 나, 우리는 이 빠진 동그라미와 닮았다. 완벽한 동그라미만을 꿈꾸면서 다른 모양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버린 어리석은 쉘 실버스타인의 '이 빠진 동그라미' 말이다. 타인을 독립적인 하나의 조각으로 인정하지 않고 나의 연장선에서만 바라본 것은 아니었나. <안녕하세요>의 소심하고 외로운 여대생처럼, 타인을 내가 원하는 반응만을 되돌려주고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키는 도구로만 대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상적이고 완벽한 소통에 대한 기대를 버리라고 이 책은 충고한다. 조금만 기대치를 낮추면 생각보다 큰 만족감을 얻게 될 수 있다고.

    상대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내용은 아무리 잘 전달해도 제대로 소화가 되지 않는다. 내 마음이 아무리 급해도 상대가 문을 열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벽만 치게 되거나 문 안으로 들어가도 산산이 부서져 사라지거나, 아니면 의도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잘못 해석될 수 있다. (본문 중에서)

    소통을 다루는 책들에서 흔히 다루는 것이 화법이다. 같은 뜻을 담은 말이라도 그 말을 전하는 목소리나 억양, 사소한 말버릇 같은 것들을 무시하지 말라고 이른다. 이 책에서도 같은 내용을 다루는데, 말을 잘하는 것보다도 중요한 것이 잘 들어주는 것. 그리고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상대를 건강하게 자극하고 전혀 몰랐던 자기 모습을 들여다 보게 해주는 좋은 질문이야말로 대화의 윤활유가 되어주는 한편 비판이나 충고 없이 상대의 변화를 이끌어 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약간은 손해 보아도 좋다는 마음가짐으로 상대를 대하는 것은 소통이라는 거래에서 중요한 덕목이다. 관계에서 말로 퍼줘봤자 실질적인 손해는 없다. 내가 남을 좀 더 칭찬하고 조금 더 도와주고 배려해 준다고 해서 직접적인 손해는 없다는 말이다. 내가 해준 만큼 똑같이 돌려받지 못해도, 내가 한 행동을 스스로 칭찬하고 만족하면 된다. (본문 중에서) 

   

​    인간관계는 '주고 받는 것'이다. 책에서는 탁구에 비유하고 있다. 탁구를 칠 때 이기려고 어려운 공을 넘겨 주면 경기는 쉽게 끝나고 만다. "어떤 공을 쳐도 받아주고, 다시 치기 쉬운 곳으로 정확하고 평이하게 넘겨"주면 안정적인 공을 오래 주고 받을 수 있다. 내가 먼저 만족하려고 할수록 만족감에서 멀어지는 것이 인간 관계인 것 같다. 상대에게 상처 주면 나도 상처 받는다. 오래 안정적인 관계를 이어가려면 내 쪽에서 먼저 받아치기 쉬운 공을 넘겨 줘야 하는 것이다. 적당히 강약을 조절하고 리듬을 맞추면서 최적의 거리를 찾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그 방법을 명쾌하게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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