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시절
안드레아스 알트만 지음, 박여명 옮김 / 박하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폭력과 학대, 위선과 모순으로 얼룩진 유년기의 기억이 한 인간을 파괴해 나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그리는 이 책은 저자의 경험을 고스란히 옮긴 자전소설입니다. 충격적인 내용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놀랍도록 서늘하고 차분하게 이어지는 어조입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문장에조차 감정이 배제된 느낌이랄까. 자기 감정과도 철저히 거리를 두고 있는 한 남자의 담담한 고백이 읽는 이의 마음을 왈칵 뒤흔드는 것입니다.

 

 

   나는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에게. 내가 가치 없는 존재라는 비참함도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라는 존재는 블랙홀을 뱅뱅 돌며 계속해서 추락했다. 어디에도 도킹하지 못한 채. 나에게는 낙하산도, 착륙장도, 터널 속 한 줄기 빛도, "사랑해"라는 속삭임도 없었다. (291쪽)

 

 

     '고백'보다는 '고발'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네요. 아동학대 희생자인 안드레아스가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폭력의 내부를 추적하고 폭로합니다. 폭력의 중심에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이차 대전 당시 나치친위대 대원으로 활동했던 아버지 프란츠 사버 알트만은 전쟁의 폐해를 온몸으로 증명하는 인물인데요. 전쟁의 악몽을 경험한 그는 평생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립니다. 마음이 고장난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이 있는 보금자리, 가정을 또 하나의 전쟁터로 만들어 버립니다. 남편의 멸시와 폭력에 무기력한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증오에 차 복수를 꿈꾸는 안드레아스,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면서 아버지로부터 벗어나는 형들과 누이. 끊임없는 육체적 정신적 학대에 질린 가족들은 결국 뿔뿔히 흩어지고 마는데요. 안드레아스는 시종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어조로 폭력의 광기가 한 가정을, 인간을 어떤 식으로 파멸시키는가를 보여줍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누군가를 죽이고 자신 또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처하면 사람은 병이 든다. 그래서 전쟁 후 집으로 돌아온 남자들은 이성을 잃었다. 누군가는 말을 잃었고, 누군가는 기쁨을 잃었다. 미친 듯이 악을 쓰며 잠에서 꺠어나는가 하면, 자신이 싸우는 모습을 보았고, 두려움에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고, 친구들이 죽는 환영을 보았다. (23쪽)

 

 

    안드레아스가 나고 자란 '알트외팅' 역시 위선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입니다. 변태 성욕에 사로잡힌 수도사들, 여제자의 몸을 강제로 탐하는 선생, 폭력을 조장하거나 묵인하는 어른들. 부모와 선생, 그리고 신이 부재하는 세계에서 성장한 안드레아스는 오랜 시간을 비정상적인 죄책감과 애정결핍, 바닥을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립니다. 아버지를 죽이는 데 실패하고 집을 뛰쳐나온 이후,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면서 번 돈 모두를 마음 치유를 위해 써 왔다고 하는데요. 다양한 방식의 심리치료와 명상, 여행을 하면서 이엄이엄 흘러온 그가 마침내 닿은 탈출구는 '글쓰기'였습니다. 삶의 수많은 위협으로부터 "나를 안전하게 해줄 유일한 도구, 그것은 바로 언어였다"고 책의 말미에서 안드레아스는 고백하고 있는데요.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상처를 똑바로 응시하는 안드레아스의 '용감한' 태도는 안드레아스 자신은 물론 독자들에게도 모종의 해방감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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