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택진 소설
정택진 지음 / 해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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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처럼 만난 세 친구가 재미삼아 바다낚시에 나섰다 배가 뒤집히는 사고를 당합니다. 해무는 짙고 사리 때라 물살도 거세서 지나는 배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 꼼짝없이 바다 한가운데 갇히고 만 것인데요. 뒤집힌 배 위에 고립된 세 친구가 죽음에 직면해 나누는 대화가 이야기의 결을 이루는 이 작품은 이외수문학상 수상작입니다. 중편소설이고요. 정통소설의 얼개에 충실한 이 소설은 다소 밋밋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겠는데요. 그 밋밋함을 상쇄하는 것이 구성진 남도 사투리입니다. 물에서 막 건져올린 물고기처럼 팔딱이는 어휘들이 생생한 현장감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배는 결을 타야 안 합디여! 근데 왜 그랬습디여? 끌고 가면서 천천히 털어내믄 될 것인디 뭐가 급하다고 줄을 짤렀습니여. 긍께 이 꼴이 돼부렀지라우. 안개 궂은 바다에서 살아날 방법이 있을지 어쩔지는 모르겄소마는, 해나 살어나거든 앞으로는 결을 잘 타시요이. (본문에서)

      

     남도의 투박한 정서가 녹아 있는 사투리는 읽는 묘미를 더하기도 하지만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기도 하는데요. 뫼얍다, 기알쳐내다, 족대기다, 실래기치다, 비깜하다, 뽈세... 대화는 물론 바탕글에까지 사투리(또는 옛말)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부록으로 어휘 정리가 되어 있을 정도인데요. 그것도 한계가 있어요. 일부 어휘는 부록에도 사전에서도 찾을 수 없고요. 안개에 가려진 길을 더듬더듬 걸어가는 심정이 되어버립니다. 그 뜻을 찾아보거나 짐작해 보면서 어휘에 붙들려 있다 보니 아무래도 이야기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네요.

 

     학원강사를 시작하면서 정삼은 자신의 모든 것을 개조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 첫 번째 시도가 '전라도'를 지우는 일이었다. (...) 그쪽 냄새를 풍겨서 좋을 게 없었다. 그 냄새의 시작이 일명 '껭껭이투'였다. 사람들은 그쪽 말투를 그렇게 불렀다. 정삼은 피를 간다는 심정으로 그 피에 묻어 있는 말투를 바꾸었다. (본문에서)

 

     앞서 소개한 대로 이야기 구조는 단순합니다.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고향 친구 치영 수열 정삼은 오랜만에 만나 들뜬 기분에 바다낚시를 나갑니다. 바위인지 뻘인지 뭔가에 꽉 걸린 그물을 처리하다 사고로 배가 뒤집힙니다. 뒤집힌 배 위에 몸을 실은 세 사람은 구조에의 희망과 죽음의 두려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지난 삶을 돌아보는데요. 어망 작업을 하다 손가락을 잃고 아버지마저 잃은 수열, 광주 민주화 운동의 참상을 경험한 치영, 강남 유명 학원 재벌 정삼. 저마다 다른 삶의 곡절을 겪은 세 남자의 이야기는 우리의 아픈 역사와 현 세태를 투영하는 한편 삶과 죽음이라는 다소 묵직한 사유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광주를 보면서 치영은, 죽음에 대한 그때까지의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겉멋 든 것이었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죽음은 결코 추상적인 것도 관념적인 것도 아니었다. 갯가에서 낚아 올린 볼락이 숨이 끊어져 뻣뻣하게 굳어지듯, 명절 때 추렴으로 잡아진 돼지가 이리저리 토막쳐져 이 집 저 집으로 나누어지듯, 죽음은 극히 일상적이고 흔한 일이었다. (본문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짜임새와 문장, 풍부한 사투리 어휘, 해학이 잘 녹아 있는 이 소설은 남도의 해풍에 실려온 신선한 바닷내음 같은 거친 질감을 자랑하는데요. 정해진 결말을 향해 내달리는 빤한 이야기 구조가 긴박감을 떨어뜨리고 있는 점, 삶과 죽음, 역사적 비극 같은 주제를 직설 화법으로 다루는 방식 등이 결과적으로 너무나도 익숙하고 빤한 이야기를 낳았다는 아쉬움이 크게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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