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알렉상드르 졸리앙 지음, 성귀수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알렉상드르 졸리앙은 날 때부터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장애인입니다. 세 살 때부터 십칠 년 동안 장애인 요양 시설에서 생활했던 그의 삶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요양 시설에서는 그에게 '자기를 내려놓으라'고 했습니다. 삶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놓아버리라는 말이었는데요. 당시 졸리앙은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 이상한 주문은 버거운 삶에 더해진 새로운 짐처럼 느껴졌지요. 시간은 흐르고 흘렀습니다. 졸리앙의 연약한 어깨를 짓누르던 그 이상한 짐은 견고한 영혼의 집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정신의 발자취, 한 사람이 지나온 마음의 풍경을 담고 있습니다.
선불교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지요. "여우가 여우가 아니기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저 역시 종종 이런 질문을 떠올려본답니다. "지금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기 위해선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없지요. 알렉상드르는 알렉상드르가 아니기 위해 무언가를 할 수가 없습니다. (본문 중에서)
붓다는 붓다가 아니니, 바로 그래서 내가 이를 붓다라 이르니라. 《금강경》의 한 대목인데요. 졸리앙이 이 책에서 풀어놓는 모든 이야기가 바로 이 한 문장에서 시작해 끝을 맺고 있습니다. 세상 어떤 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대로의 존재는 아니라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인데요. 우리의 선입견이 사람과 사물을 가두고 거기서 집착도 생겨난다는 것이지요. 우리의 생각, 말이라는 것이 하나의 고정된 관념, 선입견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 무엇이든 확정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는 자세... 저 《금강경》의 가르침에서 졸리앙은 내려놓기, 바로 집착하지 않는 태도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최근 들어 부쩍 마음수행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자기를 지키는 것이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죠. 세상이 요구하는 것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자가 살아남는 이 현실은 자기를 잊고 잃어버린 허깨비들을 낳고 있습니다. 자기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사는 삶에 익숙한 사람들... 이제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그대가 앉아 있을 땐 앉아 있어라. 그대가 서 있을 땐 서 있어라. 그대가 걸을 땐 걸어라. 무엇보다 서둘지 마라. (본문 중에서)
내려놓아라. '나'는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를 묻는 사람들에게 불교에서는 이런 가르침을 줍니다. 졸리앙이 요양 시설에서 지겹도록 들은 말이기도 하지요. 내려놓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고통을 회피하거나 삶을 단념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슬플 때 슬퍼하고 기쁠 때 기뻐하고 놀 때는 마음껏 노는 것.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는 것. 내려놓기,는 오히려 삶과 단단히 밀착되는 작은 지혜입니다.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허깨비의 삶을 이어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감정'이라는 것은 매우 불편한 찌끄레기에 불과합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자기 안의 욕구를 담고 있기 때문이지요. 《금강경》에서부터 성경, 옛날 성인들의 잠언들을 인용하며 졸리앙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그 어떤 생각이나 말에 갇히거나 집착하지 말고, 지금, 여기,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지요.
"새들하고 싸우지 마. 날개 달린 짐승들은 함부로 쫓는 게 아니야. 그냥 낮에 파란 하늘 한 귀퉁이 살짝살짝 드러날 때를 틈타 한 번씩 쳐다보는 게 나을 거야." 그 말을 들은 후로 새들만 응시하는 버릇은 없어졌습니다. 어차피 한곳에 머물지 않고 휑하니 지나가버리는 떠돌이들이니까요. 대신 저는 드문드문 보이는 파란 하늘 조각에 집중합니다.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어온 평화, 붓다의 본질 말입니다. 제 인생에 그토록 짙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다는 걸 깨닫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새 떼들 뒤쪽에 펼쳐진 푸른 하늘을 본다고 해서 불안과 고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자꾸 자기 시야를 제한하고, 안 좋은 것에만 집중하는 고질적인 버릇을 뜯어고치자는 것이죠. (본문 중에서)
앞서 언급한 대로, 책의 큰 줄기는 《금강경》의 한 대목으로 이루어집니다. 나머지는 부연에 불과하지요. 불교의 핵심 사상을 풀어놓고 있는 이 사람, 졸리앙은 재미있게도 기독교 신자입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진정한 '내려놓기'를 실천하고 있는 셈입니다. 종교와 사상적 경계를 넘어 순수하게 자기를 탐색하고 있으니까요. 그의 순수한 자기 탐색은 삶의 본질을 일깨워 줍니다. 우리 삶은 결국 자기에게로 돌아가는 복잡한 여정이라는 것.
삶은 계속되고...... 바보는 제 갈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뿐입니다. (본문 중에서)
부끄러운 사실을 고백해야겠습니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장애인에 대한 나의 편견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을요. 졸리앙은 철학을 전공한 철학자인데요. 철학자,보다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라는 타이틀에 마음이 치우친 것입니다. 나와는 다른 특별한 사람일 거라는 무의식적 편견을 알아차린 건, 책에 대한 실망감에서였습니다. 특별할 것이 없었습니다.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여타 마음수행 책과 다를 바 없었죠. '나와는 다른 특별한 사람'... 그러니까 뇌성마비 장애인의 삶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 고뇌에 찬 타인의 삶을 훔쳐보면서 나의 고뇌를 위로하려고 했던 찌질한 마음이 참 부끄럽습니다. "장애는 장애가 아니다. 그래서 이를 장애라 부른다." 마음속으로 되뇌어 봅니다. 굳이 이런 부끄러운 고백을 하는 것은... 혹시 저처럼 특별한 기대를 품고 책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입니다. 이 책은 뇌성마비 장애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순수하게 자기 탐색을 해 온 정신의 발자취를 담고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