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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언덕 ㅣ 단비청소년 문학 2
창신강 지음, 최지희 옮김 / 단비청소년 / 2013년 3월
평점 :
단 하나의 작품만으로도 마음에 새겨지는 작가가 있지요. 저에게는 창신강이 그런 작가 중에 한 명입니다. 그의 전작 《나는 개입니까》를 매우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인간으로 변신한 개의 눈에 비친 인간 세계를 그리고 있는데요. 진심이 담긴 이야기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평이한 듯 독특한 맛이 느껴지는 문장도 참 좋았고요. 깊이 우려낸 차의 풍미 같다고 하면 될까요. 자극적인 맛은 없지만, 마시면 마실수록 그윽한 향이 온몸으로 퍼져가는 부듯한 느낌.
하늘 언덕은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곳이다. 그곳은 꿈꾸는 아이들을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보여 준다. 하늘 언덕은 상처 받은 아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있다. 그곳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본문 중에서)
요즘 힐링, 힐링 하죠. 지금 소개하는 작품 《하늘 언덕》에서 창신강은 진정한 '치유'의 의미를 묻고 있습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차오포' 마을은 "시끄러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맑은 공기와 파란 하늘과 녹음이 우거진 곳"입니다. 자연 속에서 사람과 동물이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곳이지요. 차오포 마을에는 '나무 사이 집 꽃차'라는 '아동심리 치료 센터'가 있는데요. 마음이 병든 아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이 이야기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리취안취안은 누군가에게 버림받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리취안취안은 처음으로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바로 거위에게 버림받은 슬픔이었다. 생각이 깊은 뚱보 거위는, 방금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와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는 손님 발빝에서 손님 신발에 묻은 먼지라도 털어 주듯 부리로 신발을 가만가만 쪼았다. 리취안취안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본문 중에서)
과체중으로 걷는 일조차 버거워하는 아이, 거식증에 걸려 콩나물처럼 말라버린 아이, 부모와의 갈등을 폭력으로 표출하는 아이, 돈 세는 일에만 집착하는 아이... 소설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물질적인 삶에 우선하는 도시 생활의 폐단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풍요는 우리에게 편리한 삶을 제공해 주지만 상대적으로 정신적인 공허(空虛)를 달랠 여유를 박탈하지요. 이런 공허감은 이제 도시인의 기질 같은 것으로 굳어진 지 오래. 그래서인지 힐링을 부르짖고는 있지만, 글쎄요. 힐링마저 돈으로 사려는 세태를 보면 참 씁쓸합니다. 이런 어른들 사이에서 아이들이라고 멀쩡하겠어요?
진상상은 처음으로 자기가 날마다 몇 번씩 세던 돈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진상상은 상자 속 돈을 바라보듯 아이아이 그림을 혼자 우두커니 바라봤다. 그러자 늙은 말 아이아이가 갈기를 휘날리며 마을 전체가 울리도록 콧김을 내뿜고 네 발굽으로 땅을 내디뎌 그림 속에서 뛰쳐나와 문을 박차고 마을 밖 푸른 초원으로 달려 나갔다. (본문 중에서)
자연(自然)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안아줄 엄마의 큰 품과 같습니다. 뚱뚱하거나 말라비틀어진 모습, 남을 괴롭히거나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병든 마음을 편견 없이 받아들여주는, 자연이라는 거울은 아이들 각자의 본연의 마음을 그대로 비춰주는데요. 처음으로 자기 자신과 마주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마음의 빗장을 여는 법을 배워나가게 됩니다.
리취안취안은 뚱보 거위가 자신을 기다렸다는 생각이 들자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선 채 다리를 움직이지 않았다. 뚱보 거위도 리취안취안을 보더니 기다랗고 하얀 목을 쭉 뺐다. 그때 리취안취안은 뚱보 거위 눈 속에 담긴 것을 보았다. 뚱보 거위 눈 속에만 있는 그것은 지난 이틀 동안 리취안취안이 잃어버릴까 봐 걱정하던 것이었다. 그런데 거위 눈 속에 아직도 그것이 있는 것을 보자 리취안취안의 마음이 편안하고 잔잔해졌다. 리취안취안은 땅에 앉아 거위를 품에 안았다. (본문 중에서)
아이들 스스로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이 소설은 자연(自然)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병든 삶을 이야기합니다. 진정한 힐링, 치유란 무엇일까요.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인정하고 마음을 여는 일. 치유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는 간단한 진실을 이 소설은 소박한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마음을 여는 일, 그것은 또 다른 세계로 디디는 작은 발걸음 같은 것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뚱보 거위와 늙은 말(馬)의 세계. 사람과 동물이 교감하고 친구가 되는 곳.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자연(自然). 그곳이 '하늘 언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