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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시간 - 당신보다 당신을 더 사랑했던, 버려진 반려견들의 이야기
킴 캐빈 지음, 안지은 옮김 / 가치창조 / 2013년 3월
평점 :
더 이상 나를 버리지 마세요!
내가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요.
언젠가 TV에서 섬에 버려지는 개들의 사연을 본 적 있습니다. 귀소본능을 저어한 사람들이 일부러 배를 타고 와서 개를 남겨두고 떠난다는 내용이었죠. 고아가 된 개들은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며 섬 곳곳을 떠돌고 있었는데요. 굶주림과 추위보다도 견디기 힘든 건 외로움이었던가 봅니다. 사람의 목소리와 온기에 길들여진 천진한 개들은 낯선사람을 졸졸 따라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역시 마음 깊은 곳에는 '가족'에 대한 기다림이 있었겠죠. 한 자리에 얼어붙은 듯 앉아 가족을 기다리던 개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애견 인구는 1,000만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 유기동물의 수도 10만에 이른다는 사실. 무책임하고 냉혹한 인간들에 의해 유기된 동물들은 보호소에서 일정 기간 보호를 받는데요. 일주일, 길게는 열흘 이내에 입양이 되지 않은 동물들은 안락사를 당하게 됩니다. 또 다른 유기동물의 자리를 위해서. 서울에서만 하루 50마리 이상의 유기견이 발생한다고 하니 전국적으로 가늠해 보면 그 수가 엄청나겠지요. 자유롭게(?) 거리를 떠돌던 개(또는 다른 동물들)들은 '구조'라는 명목하에 졸지에 시한부 삶을 선고받게 됩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과연 이 동물들은 어떤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일까요.
보호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인 자세 자체가 '구조'보다는 '도살'에 맞춰져 있어요. 개들은 구조의 대상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일'이고, 따라서 아무런 가책 없이 '일'을 처리하는 거죠. (본문 중에서)
지금 소개하는 이 책은 미국의 동물보호소에서 벌어지는 참혹상을 고발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의 현실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저널리스트로 일하는 저자(킴 캐빈)는 유기견 '블루'를 입양합니다. 블루가 안락사 직전 구조된 개라는 것을 알게 된 킴은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되지요. 블루처럼 건강하고 영리한 강아지가 왜 안락사 대상이 되어야만 했는가. 이 책은 그 의문을 따라 씌어졌습니다.
보호소 관리자는 패니 매이가 15분 안에 안락사를 시키게 되어 있어서 제가 입양할 수가 없다고 말했어요. 저는 그 개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죠. 그랬더니 그 사람이 '제 말을 들으세요. 그 개는 15분 안에 죽을 거라니까요. 입양하실 수 없다고요'라고 말하지 않겠어요. (본문 중에서)
킴이 고발하는 대부분의 동물보호소들은 개들을 전혀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보호소 직원들은 마치 쓰레기를 처리하는 청소부들처럼 보여요.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안락사 방식이었습니다. 그 놀라운 방식은 히틀러 시대를 연상케합니다. 작은 금속 상자에 안락사 대상 개들을 던져넣은 후 뚜껑을 닫고 가스를 주입하는 것이죠. 죽음의 공포와 고통 속에서 모든 개들이 죽기까지 30분이 걸리기도 한다고 하는데요. 개들이 모두 죽은 것을 확인하면 다음 차례의 개들이 방금 죽은 개들의 사체 위에 던져집니다. 가스실 작동이 완료되면 축 늘어진 개들의 사체는 쓰레기 차량에 실려 일반 쓰레기들과 함께 버려지는데요. 간혹 쓰레기더미 속에서 숨이 붙어있는 개들이 발견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개를 데리고 왔죠. 보호소 안은 늘 개들이 우글우글했어요. 하지만 저희에게는 개를 가둬놓을 우리가 10개밖에 없었어요. 뭐가 뭔지 구별할 수가 없었죠. 우리 하나에 너무 많은 개들이 있었거든요. 일주일에 한 번씩 시에서 덤프트럭을 보내주는데 그 트럭은 소형 트럭이 아니라 대형 덤프트럭이었어요. 저희는 개들을 한 마리씩 막대기로 잡아 심장 꼬챙이로 찔러 죽였죠. 저는 정말 그런 방법으로 개들을 죽이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제가 그 일을 하지 않았다면 저는 일자리를 잃었을 거예요. (본문 중에서)
72시간. 3일이죠. 3일 동안 미국 내 동물 보호소에서는 약 4만 2,000마리의 유기동물들이 죽어간다고 합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인간의 무책임과 냉혹함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숫자이기도 하지요. 킴이 만난 보호소 직원들의 눈에는 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죽여야 하는 개들을 생산해내는 무감각하고 냉혹한 사람들"로 비춰진다고 합니다.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보호소의 운영 실태를 비난하기 이전에 우리가 먼저 동물들을 책임감 있게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닐까.
미국에는 낡아빠진 옷들을 담은 가방을 굿윌(Goodwill)에 넘겨주는 것과 거의 마찬가지로 자신의 개와 강아지를 보호소에 버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본문 중에서)
거실 카펫을 망쳤거나 가장 좋아하는 신발을 못 쓰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또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다고 해서 버려지는 개들이 많습니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동물을 입양할 수 있는 시스템에서 유기동물의 비극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펫샵에서는 물론 인터넷에서도 쉽게 동물을 구할 수 있잖아요. 제가 가입한 모 카페에서도 매일 수십 마리의 유기견이 등록되고 있습니다. 순수무료 분양도 할 수 있고요. 그런데 카페를 통해 개를 입양한 사람이 다시 재분양 글을 등록하는 경우도 여럿 봤습니다. 개의 기본적인 성격이나 문제점 등을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쉽게 입양한 결과죠. 다른 주인을 찾아주려는 사람들은 그나마 양심적입니다. 사람 손에 길들여진 아기 같은 개들을 위험한 거리 혹은 외딴 섬 같은 데 버리는 사람들에 비하면 말이죠.
슬픔이 가득했던 시절, 이 녀석들은 내 곁에 바싹 달라붙어 있거나 공원에 산책 나가자고 졸라대 상쾌한 바람을 쏘이게 해줬으며 내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핥아주는 등 최선을 다해 날 위로해주었다. (본문 중에서)
동물보호소의 실태를 취재하면서 킴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물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동물의 안락은 물론 적절한 입양 가족을 찾아주는 데 최선을 다하는 진정한 보호소와 구조 단체, 위탁 사육, 무료 중성화수술 등 다양한 자원봉사 단체들의 이야기도 책에 담겨 있습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은 물론 일반인들의 동물에 대한 의식에 긍정적인 힘을 실어주기를 바랍니다.
* 블루의 페이스북: facebook.com/littleboybluedog
- 심장 꼬챙이는 말 그대로 개의 심장에 직접 찌르는 주사를 말한다. 국립수의학 지침에는 그 주사를 사용하기 전에 진정제를 투여해야 하며 더불어 개의 심장에 주사를 바로 찌를 수 있는 훈련을 받은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도록 명시되어 있다. 구조대 회원들 및 퍼슨카운티 동물 보호소 관리자 론 쇼는 진정제를 투여하지 않거나 훈련받지 않은 사람이 심장 꼬챙이를 사용했을 경우 개는 아주 고통스럽게 죽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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