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변화한다 - 모옌 자전에세이
모옌 지음, 문현선 옮김 / 생각연구소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모옌이에요. 중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 올해 화제의 인물 가운데 한 명이죠. 지금 소개하는 책은 모옌의 특별한 회상록이에요. 1979년부터 2008년에 이르는 삼십 년여의 세월을 관통하는 자전적 에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에세이라고 하지만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요. 2008년에 모옌은 인도의 출판 편집인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게 됩니다. 지난 삼십 년 동안의 중국의 변화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것이었죠. 처음에는 거절했대요. 그 주제가 너무 광범위해서요. 그런데 그쪽에서 끈질기게 매달리더랍니다. 나중에는 "어떻게 쓰든" "마음대로" 써달라고 해서 쓰게 된 것이 이 책이라고 하는데요. "마음대로"라는 조건에 넘어갔지만, 막상 글을 시작하고 보니 그 주제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해요. 소설적 구성을 따르는 이 글에서 모옌은 문화대혁명, 개혁개방 등 중국 역사의 격변기를 살아내는 생생한 인물들을 통해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삶의 이치를 이끌어냅니다. 

 

    그의 모습이 영화 속 스파이 영웅처럼 멋들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모두 '번개'를 맞은 듯 뒤집어졌다. 그는 등을 곧게 펴고 가슴을 내민 채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걸어갔다. 학생들과 학교의 지도자들 사이를 당당하고 자신 있게 걸어갔던 것이다. 걸어가면서 그는 손에 든 채찍으로 우리를 가리키며 묘하게 과장된 목소리와 어조로 말했다.

     "자네들은 대체 대포를 어떻게 보관하는 건가!?"

  학교의 지도자들은 넋을 잃은 듯 멍한 표정으로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허즈우가 당당하게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또 그가 자신들 앞에서 방향을 바꿔 반대로 걸어가는 모습도 멍하니 넋을 놓고 지켜보았다. 허즈우는 휘파람을 불며 운동장 옆의 샛골목으로 들어갔다. (본문 중에서)

 

   혁명 간부의 딸 루원리, 모옌만큼이나 입이 큰 류 선생(류 선생에게 두꺼비,라는 별명을 지었다는 누명을 쓰고 모옌은 학교에서 쫓겨납니다), 허풍쟁이 같으면서도 '영웅'의 이미지가 겹쳐지는 허즈우. 이들이 겪는 삶의 변화와 기막힌 인연은 소설보다도 더 소설 같아요. 특히 허즈우가 보여주는 허풍과 익살, 그리고 순정 같은 것들은 유쾌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가즈51이여, 안녕. 사실 그것은 그냥 안녕이 아니라 영원한 안녕이었다. 나는 그 차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의 유골은 지금 어느 곳에 있으려나" (본문 중에서)

 

     이야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요. 소련제 가즈51입니다. 우리의 영웅 허즈우는 가즈51과도 깊은 인연을 맺는데요. 1969년 초등학생이었던 허즈우의 꿈은 단 하나. "루원리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람처럼 때론 번개처럼" 내달리며 동네 개와 닭들을 거침없이 쳐 죽이는 가즈51을 모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십 년이 지난 어느 날 허즈우는 고물차 신세가 된 가즈51을 루원리의 아버지에게서 사들입니다. 그 길로 가즈51을 몰고 달려가 루원리에게 멋진 프로포즈를 해요. 안타깝게도 루원리를 아내로 맞아들이지는 못하지만요. 비록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로맨틱한 프로포즈용으로 사용되었던 가즈51은 뜻깊은 최후를 맞이합니다. 모옌의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붉은 수수밭》에서 말 그대로 온몸을 불사른 것이죠.

 

     그녀는 처량하게 웃더니 그러더군. '더 이상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와 입 큰 류 선생님의 결혼 소식을 들었지. 나는 좋은 술 두 병과 담배 두 보루를 챙겨서 혼자 차를 몰고 자오허 농장 앞의 그 공터로 갔어. 거기서 나는 루원리의 아버지에게 그분 딸에 대해 내가 품었던 연모의 마음을 털어놓았지. 그분도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한참 생각에 잠기더라고. 나는 그래도 나라는 놈이 상술에 정통한데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지녔다고 자부하며 살았거든. 근데 사실 소인의 마음으로는 군자의 속내를 가늠할 수 없는 거야. 내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다고 자부했던 건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소인이었기 때문에 그런 거고. 루원리, 그녀는 군자더라 이 말이야." (본문 중에서)

 

    허즈우와 류 선생, 루원리의 얽히고설킨 기묘한 인연과 삶의 굴곡은 그들이 거쳐온 시대적 변화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십 년 전, 혁명 간부의 딸이었던, 숭배의 대상이었던 루원리는 부스스한 머리를 박박 긁어대는 고무공장 공원이 되고,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허즈우는 좋은 기회를 잡아 엄청난 재산가가 됩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변화의 당사자라면 바로 모옌일 거예요. "어릴 적부터 재수가 없는 인간"이었던, 초등학교를 중퇴한 산골 촌놈이 전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게 되었으니까요.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속성은 '변화'라는 것. 모두 변화한다는 것. 누구에게는 절망, 또 다른 이에게는 희망이 되어줄 진실이겠죠.

 

     "내게는 다른 꿈이 없다. 오직 한 가지 꿈밖에 없는데 그건 바로 루원리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오직 하나의 꿈을 좇았던 허즈우는 불가능해 보였던 꿈을 멋진 방식으로 이루어냅니다. '변화'의 씨앗은 허즈우의 '불가능한 꿈'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간절함이 변화의 첫 걸음이라고요. 그러고 보면 삶은 참 단순합니다. 중국의 역사적 변화와 개인적 기억을 소설적으로 재구성한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 불가능한 꿈을 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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