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물학과 윤리 - 출간 30주년 기념판
피터 싱어 지음, 김성한 옮김 / 연암서가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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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단순히 동물과 닮은 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바로 동물이다.

 

         - 메리 미즐리Mary Midgley, 《야수와 인간Beast and Man》 에서

 

 

 

  

 

     인간 윤리와 도덕의 기원을 사회생물학적 견지에서 탐구하는 이 책은 동물해방론자로 잘 알려진 피터 싱어의 1981년 저작물입니다. '사회생물학'이라는 용어는 1975년 에드워드 O. 윌슨Edward O. wilson1이 그 자신의 책 《사회생물학: 새로운 종합Sociobiology: The New syntbesis》2에서 최초로 사용한 것입니다. 윌슨은 이 책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진화론적 접근을 시도하는데요. 싱어는 윌슨의 접근 방식에서 과학자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를 지적하고 그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일종의 반박문으로서 이 책을 씁니다. 그럼에도 윤리에 대한 윌슨의 사회생물학적 접근 방식이 윤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을 주는 점 또한 인정하고 있습니다. 

 

    책의 1장에서 싱어는 사회생물학에 대한 윌슨의 정의 ㅡ "모든 사회적 행동의 생물학적 토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ㅡ에 대해 반박하고 있습니다. 사회생물학이 윤리에 시사하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영향은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간접적이라는 것입니다. 그 간접적인 시사점을 싱어는 다윈의 진화론에서 찾고 있습니다.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거나(혈연 이타성kin altruism),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생존 확률과 이익을 증가시키려는(호혜적 이타성recirocal aaltruism), 같은 종에 속하는 생물로서 긴밀히 상호작용을 하려는(집단 이타성group altruism) 본능적 성향이 윤리의 근원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오늘날의 윤리 체계가 초기 인류와 인류 이전 조상들의 이타성에서 출발했다는 것이죠.

 

     혈연 이타성이 존속되는 원인은 그것이 혈연의 생존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직 친족만을 돕는 행동만이 이타적 행동은 아니다. 원숭이들은 서로 털을 다듬어 주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데, 이때 그들은 스스로의 손이 닿지 않는 애매한 위치에 있는 기생충을 잡아준다. 서로 털 다듬기를 해주는 원숭이들이 항상 혈연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털 다듬어 주기가 나타나는 것은 "네가 나의 등을 긁어준다면 나도 너의 등을 긁어주겠다"는 호혜적 이타성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본문 중에서)

 

     2장에서 싱어는 이타성에 대한 사회생물학적 입장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한 '이타성'이 '이기성'이 아닌가 라는 일반적인 의문을 풀어나가는데요. 행위의 결과가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해서 그 동기가 반드시 이기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참된 이타성에 대한 사회생물학적 주장을 살피고 있는데요. 이타적인 동기를 갖는 죄수들이 출감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죄수의 딜레마'를 통해 이타적인 성향이 먼 옛날 인류의 생존에 도움을 주었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이익을 동등하게 고려하는 원리3의 스펙트럼 대극에는 이기주의4가 위치해 있다. 이기주의는 내 스스로의 이익을 증진시킬 것을 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타인을 돕는 일이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들의 이익에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를 취한다. 이기주의자가 집단 윤리의 토대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단순히 나의 이익을 겨냥한 원리가 아님이 분명해야 한다.(나, 피터 싱어에게 이기주의의 이상적 형태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행동해야 한다는 입장5을 견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나 외의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일 것 같지 않은 입장이다.) (본문 중에서)

 

      싱어는 4장에서 인간의 이성 능력이 어떻게 오늘날의 윤리 규칙과 계율로 발전해 왔는지 추척하고 있습니다. 이 장에서 싱어는 우리가 이성적 사고를 통해 진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요. 여기서 싱어의 공리주의가 등장합니다. "결정에 의해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들의 이익을 동등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이 궁극적인 원리를 '이익 동등 고려의 원리The principle of impartial consideration of interests'라고 부릅니다. 모든 인간을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싱어의 공리주의 원리는 도덕적 고려 대상의 범위가 확대되어 인간 아닌 동물까지도 포함시키게 됩니다. '범위 확장(The Expanding Circle)'이라는 이 책의 원제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 없이 살 수 없음을 인식하는 것'과 '그러한 기준의 본질과 기원을 이해하는 것'은 별개다. (초판 서문 중에서)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수많은 인용구와 전문용어가 등장합니다. 읽기에 쉽지 않은데요. 책을 내려놓고 싶을 때마다 "검토되지 않는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익숙한 도덕관습의 테두리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 본질과 기원을 탐구하는 일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려운 독서였지만, 책 곳곳에서 역자의 섬세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약간 과장을 더해 내용의 절반을 차지하는 각주와, 각 장마다 정리해둔 요약문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1. 에드워드 O. 윌슨은 1929년 미국 앨라배마 주 버밍햄에서 태어났다. 1955년 하버드 대학교의 동물학 교수가 되었으며, 본격적인 사회생물학 논쟁의 단초를 이룬 학자로 꼽힌다. 《사회생물학: 새로운 종합》(1975)을 저술하였으며,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2. 사회생물학: 사회 현상을 생물학적 지식을 이용하여 탐구하는 학문.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사회적 행동이 자연선택을 주요인으로 하는 진화과정의 결과 형성된 것이라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여기에 행동학과 생리학 등 관련 분야의 식견을 더하여 연구하는 학문이다.

  3. 싱어의 이익 동등 고려 원리는 모든 이익들을 측정해서 영향 받는 사람들의 이익이 최대화될 것으로 보이는 행위 과정을 채택할 것을 요구한다. 이때 나는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영향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행위 과정을 선택해야만 한다. 이는 공리주의의 한 형태인데, 이때 '최선의 결과'라는 말이 단지 즐거움을 증가시키고 고통을 감소시키는 것이라기보다는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영향 받는 모든 사람들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고전적 공리주의와 구별된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벤담이나 밀과 같은 고전적 공리주의자들이 '쾌락'과 '고통'을 넓은 의미로 사용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쾌락'은 바라는 것을 달성하는 것으로, '고통'은 그 반대의 경우로 이해될 수도 있다. 만약 이와 같은 해석이 정확하다면, 이익에 기초한 공리주의와 고전적 공리주의와의 차이는 사라진다. 싱어, 《실천윤리학》(황경식, 김경동 옮김, 철학과현실사,1992), 32~33쪽

  4. 윤리적 이기주의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 모든 개인은 각자의 이익을 가장 많이 증진시키는 것을 해야 한다.(보편적universal 윤리적 이기주의)
    * 모든 개인은 나의 개인적 이익을 가장 많이 증진시키는 것을 해야 한다.(개인적individual 윤리적 이기주의)
    * 나는 오직 나의 개인적 이익을 가장 많이 증진시키는 것을 해야만 한다. (고립적personal 윤리적 이기주의)
    만약 세계가 A, B, C, D라는 네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보편적 윤리적 이기주의는 A는 A 자신의, B는 B 자신의, 그리고 C와 D는 각각 그 자신의 이익을 증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개인적 윤리적 이기주의자는 A는 A 자신의 이익을 증진시켜야 하고, B,C,D 모두 다 A의 이익을 증진시키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A가 고립적 이기주의자라면 A는 자신의 이론에 따라 자기 이익을 증진시켜야 한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B, C, D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여기서 고립적 이기주의의 문제점만을 지적한다면 그러한 이기주의는 세계 안에 있는 오직 한 사람에 대해서 그가 무엇을 해야 하고 또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말할 뿐, 다른 모든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완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에 관계하는 한 사람이 채택하는 사적인 행동의 방침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결과적으로 이 주의는 도덕 원리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다.
    폴 테일러, 《윤리학의 원리》(김영진 옮김, 서고아사, 1985), 53~54쪽과 81~82쪽 참조.

  5. 이는 개인적 윤리적 이기주의를 말한다. 이에 대한 비판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왜 당신의 이익이 다른 사람의 이익보다 더 중요시되어야 하는가?" 만약 개인적 이기주의자가 특별한 취급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없다면 그가 타인들에게 지고 있지 않는 의무를 타인들이 당신에게 지라는 법은 없다.
    폴 테일러, 《윤리학의 원리》, 88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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