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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온 편지
김용규 지음 / 그책 / 2012년 4월
평점 :
오늘도 아, 자연이 스승입니다.
- 본문에서

곁에 두고 느릿느릿 읽기에 좋은 책이 있습니다. 단 한 줄의 문장에 붙들려 오래 포옹하면서, 숨처럼 허밍이 터지기도 하는 안일한 읽기. 가까이에서 숨쉬는 짐승의 정다운 체온과도 같이, 아무 때고 펼치고 덮기에 만만한 책은 일상의 호흡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지난 사월의 여러 날을 나는 이 책과 비비며 지냈습니다. 숲과 바람과 '산'과 '바다'와 '바람소리'는 적당히 쓸쓸하고, 그래서 더 믿음직하고 정답게 느껴졌니다.

《숲에게 길을 묻다》에 이은 김용규의 두 번째 산문집은 그윽하고 청량한 허밍이 행간을 흐르고 있습니다. 충북 괴산의 여우숲에서 다섯 해를 보내면서 그는 "스스로 노래하는 삶"을 배우고 있습니다. 단단한 눈(雪)을 뚫고 제 잎을 피워올리는 산마늘에게서, 스스로 새끼를 거두는 개들에게서, 처음 타는 자전거 위에서 아이가 제 힘으로 중심을 잡고 나아가는 모습에서 그 잔잔한 허밍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노래하자 나무야, 네 스스로를 노래하자." (본문에서)
꽃과 나무와 벌과 새와 바람과 안개와 흙 속에서 김용규는 "누군가를 속여서 살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는 건강한 농부입니다. "자연의 흐름과 나란히 걸어가는" 농사를 짓지요. "느리더라도 척박함을 이기고 스스로 땅과 화해하여 만들어내는 깊이 있는 결실"의 보람을 아는 김용규는 참 아름다운 농부입니다. 한때 서울에서 벤처기업의 CEO였던 그는 자연과 섞여 살면서 기다림의 자세를 배웁니다. 꽃이 그냥 피고 지는 것이 아니고 꿀들도 때를 기다려 집을 옮깁니다. 손수 기른 콩나물의 아삭함을 맛보기 위해서는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인내가 필요하지요. 어쩌면 우리의 모든 불행은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마음에서 싹트는 것 아닐까요. 모든 것에는 제때가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이 책은 조용히 일깨웁니다. 이 간단한 자연의 법칙을 품고 사는 김용규의 목소리는 나직하고 온화하지만 힘이 느껴집니다. 그리움을 품고 외로움을 어르며 추운 겨울을 지나온 저 숲의 온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