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 - A Life - 고요한 밤의 빛이 된 여인
도로시 허먼 지음, 이수영 옮김 / 미다스북스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지금도 그 장면을 선명히 떠올릴 수 있다. 예닐곱 살이거나 그보다 한두 살 더 먹었을 것이다. 사촌동생과 나란히 엎드려 그림책을 넘기고 있었다. 어린이 위인전집 가운데 한 권이었다. 그 위인이 누구였는가는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날카로운 단도 끝 찢어진 팔목에 듣는 시뻘건 핏방울. 시름시름 앓는 어머니를 위해 자신의 팔목을 찢어 그 핏방울을 입술에 떨어뜨리는 장면이었다. 그 위인은 여느 위인답게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던 것이다. 착하고 영리하고 효성까지 지극했으니까. 반찬투정을 하거나 동생과 싸우다 혼나는 것이 일상인 보통의 어린이들이 그 찢어진 팔목과 핏방울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을까. 어린 나는 충격을 받았다. 혐오와 공포와 존경심이 뒤섞인 그것은 어린이가 감당하기 벅찬 감동이었다. 지금까지도 내가 전기(傳記)를 즐겨 읽지 않는 것에는 그때 받은 충격도 한 몫을 할 것이다. 대부분의 전기가 보통의 사람들을 훨씬 뛰어넘는 인격과 재능을 가진 위인들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인내심이 뛰어나고 매우 용감하다. 사사로운 일에 흔들리지 않고 큰 슬픔도 금방 떨치고 일어난다. 감정이입이 불가능하다. 거의 초인적으로 느껴지는 그들의 인격과 업적은 경외감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우리와는 뿌리부터가 다르다. 가까이 할 수 없는 당신들. 한 점 흠이 없는 그들, 위인들은 외롭다.  

   

     헬렌 켈러. 가까이 할 수 없는 당신들 가운데 한 사람. 귀 멀고 눈 먼 헬렌의 놀라운 생애는 전기라기보다 신화에 가깝게 느껴졌다. 인간이기보다 성녀(聖女)로 기억했다. 아니, 기억에조차 담을 수 없이 헬렌은 헤아리기 어려운 먼 곳에 있는 존재였다. 결코 닿을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이 책을 펼치기 전까지는 그랬다. 도로시 허먼이 4년 간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씌여진 이 책에서 헬렌은 성녀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보통의 욕망을 가진 여성으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와 똑같은 욕망과 감정을 가진 헬렌의 모습은 참으로 인간적이어서 그동안의 성녀 이미지에 속았다는 기분이 들 정도이다. 모두가 잠든 한밤중 사랑하는 남자와의 달콤한 미래를 그리며, 끝내 오지 않은 남자를 기다리며 서 있던 헬렌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릿하다. 헬렌은 보통 여성들의 삶을 꿈꾸었던 소박한 여성이었다. 심각한 장애를 가진 헬렌은 성녀가 되기를 강요당했다. 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과 두려움 그리고 일부 사람들의 명예와 탐욕 때문에 헬렌은 평생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억누르고 살아야 했다. 그렇게 헬렌은 '위인'이 되었다.

 

 

헬렌 주변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매우 객관적이고 인간적이다. 특히 앤 설리번의 복잡하고 민감한 성격이 매우 입체적이고 생동감 넘치게 묘사된다. 어린 시절과 보육원 시절의 아픈 경험은 종잡을 수 없이 변덕스러운 성격과 헬렌에 대한 병적일 정도의 집착을 잘 설명해 준다. 그 불안정한 사람이 마찬가지로 불안정한 사람과 함께 더듬거리고 넘어지면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매우 감동적이다. 기적과도 같은 헬렌의 생애를 말할 때, 헬렌의 천재성이냐 앤 설리번의 특출한 교육방식이냐를 두고 가르는 일은 무의미해 보인다. 헬렌과 앤 설리번, 그 둘이었기에 가능한 기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 동안 눈이 먼 사람, 더구나 귀까지 먹은 사람은 괴물로 여겨져 더 크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눈이 먼 아이들을 산꼭대기로 끌고 가서 굶겨 죽이거나 산짐승들에게 잡아먹히게 내버려두었다. 로마에서는 부모가 시장에서 작은 바구니를 사다가 앞을 못 보는 자기 자식을 담아서 티베르 강에 던졌다. (...) 눈 멀고 귀까지 먼 아이들에 대해서 그들의 부모조차도 원죄의 대가를 치르느라 그렇게 천하게 태어난 거라고 생각했다. (본문 중에서)

 

     헬렌의 삶을 함께 했던 수많은 사람의 면면에서 느껴지는 공통의 표정은 경외감이다. 헬렌을 지켜보거나 손잡고 대화하던 사람들은 노골적이거나 은밀하게 헬렌에게 성녀를 강요했다. 그를 간파한 헬렌은 세상의 요구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헬렌이 세상의 요구대로 성녀를 연기하며 남몰래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눈 뜨고도 자신을 못 보고 말짱한 귀로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엾어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이 천재도, 괴물도, 바보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에게는 교육받을 수 있는 머리와 재주를 익힐 수 있는 손이 있다. 또한 그들에게는 야망을 이룰 권리가 있다. 그들이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여 사회의 일꾼이 되도록 돕는 것이 사람들의 의무이다. (헬렌 켈러, 1907년/ 본문 중에서)

 

    티비에서 점자를 더듬으며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를 보았을 때 처음 느꼈던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이 크게 떠졌다. 한눈에 시각장애인임을 알아볼 수 있는 감겨진 두 눈과 점자를 더듬는 신비한 손짓. 연민과 혐오와 경이가 뒤섞인 감정이 나를 덮칠 때 당황스럽고 불쾌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불편한 상황(장애인에 대한 본능적인 감정과 그에 따르는 죄책감)을 못 견뎌하고 그래서 장애인과 섞이기를 회피한다. 본능적인 감정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감정이라는 것은 도덕과도 의지와도 무관한 것이니까. 앞으로도 나는 장애인을 볼 때 연민과 혐오와 경이의 감정에 휩싸일 것이다. 그때 나는 나의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거기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장애인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태도라고 생각한다.  

 

    신체적으로 부자유한 사람들, 장애인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그 두려움이 어디서 시작되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었던 헬렌 켈러. 그 어두움과 끝없는 고요가 우리는 두렵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그 어둠과 고요를 알고 있다. 그것은 우리 안에도 있다. 이 두려움과 나약함이 편견을 낳는 것 아닐까.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자신과의 간극을 극복해야 하는 것 아닐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는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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