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상페
장 자크 상뻬 지음, 허지은 옮김 / 미메시스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에게 《뉴요커》는 학교와도 같아요. 나의 삶이지요.

 

                                                   - 장 자끄 상뻬

 

 

 

 

       상뻬는 열일곱 살 때 우연하게 본 《뉴요커》를 보고 한순간에 매료됩니다. 이후 30년 동안 그의 마음속에는 늘 《뉴요커》가 있었습니다. 열띤 동경이었지요.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까운 꿈이었고요. 《뉴요커》는 뭐랄까,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을 갖추고 있는 독창적인 세계였습니다. 1925년 이래 그 위엄이나 독창성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고요. 자신의 그림이 '감히' 《뉴요커》에 실린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던 겸손한 풍자화가에게 어느 날 꿈 같은 행운이 찾아옵니다. 《뉴요커》의 사장에게서 직접 그림 요청을 받은 것이지요. 1978년, 그렇게 상뻬는 《뉴요커》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가족의 일원"이 된 것이지요. 지금 소개하는 책 《뉴욕의 상뻬》는 1978년부터 30년 이상 《뉴요커》의 표지를 장식했던 상뻬의 그림 150여 점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상뻬와 《뉴요커》의 30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화집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동안 그림으로밖에 만날 수 없었던 상뻬의 육성 인터뷰가 책의 특별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약간의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이 인터뷰에는 《뉴요커》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존경이 깃들어 있습니다. 한편, 상뻬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데요. 인터뷰 전반에서 보여지는 자기 그림에 대한 완고함과 겸손함이 인상적입니다. 《뉴요커》의 사장 윌리엄 숀의 까다로운, 이를 테면 똑같은 팔을 여덟 번이나 수정하게 하거나 그림의 한 부분을 지우라는 등의 요구를 수용하고 배우면서 상뻬는 그제야 자신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잡지의 덧없는 성격과 풍자화가라는 애매한 위치에서 흔들리는 잉여 인간에게 《뉴요커》는 또렷한 존재감을 부여한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뭔가를 찾지만, 끝내 그게 뭔지 찾아내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내면적 자각이지요. 그런데 정말 뭔가를 찾아낸다면, 상황이 심각해지는 거예요. 혹시 이런 의문을 품어 본 적 있습니까? 누가 생명의 불씨를 주었는지, 왜 우리의 심장은 뛰기 시작한 것인지...... 대체 왜일까? 아무도 몰라요. 답은 없고, 그냥 흘러가는 거예요. (본문 중에서)

 

 

       상뻬의 그림을 처음 만난 것은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를 통해서였습니다. 상뻬는 그 책의 삽화를 그렸지요. 그때 나는 그림보다 이야기에 심취했습니다. 상뻬의 그림을 눈여겨보지는 못했다는 말입니다. 물결치듯 흐르는 선과 꿈결 같은 색감이 근사하다는 느낌이 전부였죠. 상뻬의 그림 역시 하나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지금에 와서야 깨닫습니다. 책에 실린 그림을 가만 들여다 보고 있자니 풍경과 인물과 색채와 여백이 음악처럼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틀이 없고 유리도 없는 창문과 같다는 인상도 받습니다. 미국적인 것, 뉴요커의 생활을 넘어선 보편성이야말로 상뻬 그림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가 아닌가 싶어요. 
    

  재즈는 곧 생략이에요. 하나의 곡언법이지요. (본문 중에서) 

 

 

        상뻬의 그림에서 사람들은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철학을 발견합니다. 상뻬는 인터뷰에서 재즈에 대한 애정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에는 피아노나 트롬본 등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상뻬의 그림에 강렬함과 은근함이 혼합된 재즈 선율과 같은 호소력을 더해준 것이 재즈에 대한 동경과 애정이 아니었나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상뻬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춤추고 포옹하고 연주하고 노래하고 걷고 달리고 말하고 웃고 울고 여럿이거나 혼자, 끊임없이 무언가를 동경하고 사랑하지요. 우리처럼요.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거예요.

 
      나는 항상 끊임없이 놀라고 또 놀랍니다. 조금 아까 창으로 비행기 한 대가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늘에 수많은 사람들이 떠 있는 것이지요. 전속력으로 날아가는 그 기계 속에, 어디론가 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거예요. 나에게는 그런 생각들이 정말로 재미있고 매력적이랍니다. 정말 놀랍잖아요. (본문 중에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호소력을 갖는 상뻬의 그림은 일상적이면서 일상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일상을 넘어선 그곳에는 상뻬의 이야기가 흐르고 있어요. 상뻬의 이야기는 생에 대한 경이와 경탄에서 태어나고요. 뜨겁고 팔딱이는 생의 속삭임은 누추한 일상에 젖어 있는 우리를 각성시키는 동시에 위로합니다.

 

 

L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타인들이 더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S(상뻬) 포도주 따개를 발명한 사람이나, 의자를 발명한 사람이나, 망치를 발명한 사람이나, 못을 발명한 사람이나, 다들 자신도 모르게 타인들이 더 잘 살 수 있게 기여를 한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L 맞습니다. 그렇지만 풍자화에는 그런 것들과 비슷한 실용적인 기능은 없지요.
S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풍자화를 사치품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치품 없이 살 수 없어요. 산다고 해도 아주 재미없게 살게 되지요. 사치품은 무지개입니다. 항상 비가 내리는 브르타뉴 지방에서 산다고 해봅시다. 살기야 살죠. 하지만 하늘에 뜬 작은 무지개를 보면 기분이 한결 좋아지겠지요. (본문 중에서)

     

 

       슥슥 쉽게 그려진 것 같은 그림이지만 매우 고심해서 그려진 그림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겠습니다. 인터뷰에서 상뻬는 좋은 그림은 일 년에 한 점 나올까 말까 하다고 전합니다. 그 말은 자기 작품에 대한 상뻬의 엄격함을 보여주는 한편 삶이라는 것, "무지개"라는 것은 결코 쉽게 그려질 수 없고 그려지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그래서 자꾸, 자꾸자꾸 상뻬의 그림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반짝 나타났다 사라질 무지개를 바라보는 심정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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