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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눈 프리키는 알고 있다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54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부희령 옮김 / 비룡소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저기 그 애가 있어.
누구? 저 빨강 머리?
저애가 프랭키야.
프랭키 누구?
제발 그렇게 빤히 보지 마! 알잖아, 프랭키 피어슨. 리드 피어슨의 딸.
오, 이런. 저 애 말이야?
응, 저 애.
이 작품은 열네 살 프랭키의 분열된 자아가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는 성장소설입니다. 제목의 '초록눈 프리키'는 프랭키의 또 다른 자아입니다. 열네 번째 생일이 몇 주쯤 지난 어느 밤 파티에서 프리키는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소름끼치는 것! 네가 네 눈을 봐야만 해! 소름끼치는 초록눈을!" 그날 밤 파티에서 프랭키를 강간하려던 소년이 프랭키의 무서운 '저항'에 무너지면서 한 말입니다. 프리키는 그렇게 프랭키의 삶에 등장합니다. 프랭키는 특별히 눈에 띄는 아이는 아닙니다. 부스스한 빨강머리와 창백한 얼굴의 프랭키는 학교 수영팀에 소속되어 있지만, 실력은 들쭉날쭉한 평범한 학생입니다. 프랭키의 특별함은 다른 데서 부여됩니다. 유명한 운동선수이자 방송인인 아버지의 존재입니다. 프랭키 피어슨은 언제나 리드 피어슨의 딸로서 사람들에게 비춰집니다. 집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프랭키는 리드 피어슨의 딸로서만 존재합니다. 자기 본성이나 욕망이 아닌 아버지의 신념과 욕망 안에서 생활합니다. 아버지 리드 피어슨은 자기중심적이고 명예욕이 강한 인물입니다. 타인들에게 보여주는 삶에 익숙한 그는 아내와 자식들을 자기 삶의 부속물 정도로 취급합니다. 프랭키와 그의 여동생, 이복형제인 오빠는 그런 삶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프랭키의 어머니 크리스타만이 그런 삶의 방식에 불만을 품습니다. 화려하지만 공허한 남편과의 삶에 자기 자신은 부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프랭키가 그러하듯 그녀 역시 크리스타가 아닌 리드 피어슨의 아내 그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었으니까요. 크리스타는 자신의 본성과 욕망에 충실한 삶을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 소박한 바람은 리드 피어슨의 가정을 무서운 파멸로 몰아가는 시작이 됩니다.
아빠는 그런 식이었다. 불같이 화를 내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그리고 멀리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면, 잘못된 일은 사라졌다. 우리를 용서한다고 말하거나 화내지 않겠다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빠는 그냥 웃으면서 잊었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잊기를 바랐다. (책에서)
프랭키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가족들과 함께 TV 속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저 사람이 정말 우리 아버지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감탄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가정에서는 좋은 남편도 아버지도 아닙니다. 가족은 자신의 명예욕을 충족시켜 줄 수단에 불과합니다. 자신의 명예가 곧 가족 구성원 모두의 목표이자 희망이라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지요. 부부 동반 모임을 거절하거나 자기만의 공간을 요구하는 아내의 태도는 그에게 용납할 수 없는 배신 행위로 간주됩니다. 부부는 자주 충돌하고 삐걱거리면서 마침내는 별거 상태에 들어갑니다. 프랭키는 순종적이지 못한 엄마가 가정불화의 싹이라며 원망합니다. 엄마의 실종도 프랭키의 미움을 사그라들게 하지는 못합니다. 엄마를 향한 미움에는 아빠의 폭력 아래 자신과 여동생만이 남았다는 두려움이 크게 작용합니다. 자신을 지켜줄 아빠마저 잃고 싶은 않은 프랭키는 가정을 둘러싼 중요한 진실을 외면합니다.
요즘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많아요. 저는 잠을 잘 자지 못해요. 그래서 낮 동안 머리가 맑지 못해요. 특히 크리스타 코너에 대해서, 저는 잊어버리기 시작했어요. 엄마가 저를 잊었으니까, 그게 이유죠. 8월 26일 전에도 엄마는 저를 잊어가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엄마를 용서할 수 없어요. 아무도 제가 기억하게 할 수는 없어요. 잊는 것은 제 권리예요. (책에서)
그러나 프랭키의 또 다른 자아 프리키는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진실을 폭로할 용기도 있었습니다. 진실을 감당할 지혜도, 있어 보입니다. 아니, 이것은 독자로서의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가슴에 맺힌 슬픔과 상처, 그리고 무서운 진실을 프랭키와 프리키가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부모의 충돌과 헤어짐의 과정을 지켜보는 열네 살 소녀의 분열된 자아와 복잡한 갈등심리를 이 작품은 속도감 있게 그려냅니다. 엄마의 실종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후반부에는 추리소설의 긴장감도 흐릅니다. 독자는 불길한 예감 속에서 책장을 넘기다 무서운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인간은 저마다의 욕망과 신념 안에서 살아갑니다. 리드 피어슨 가족의 몰락상은 욕망과 신념의 충돌에서 야기됩니다. <초록눈의 프리키>는 그 혼돈과 충돌의 폭풍 속에서 자기의 참모습을 지켜내려는 소녀의 몸부림으로 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