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 - 내 안의 아이 치유하기
틱낫한 지음, 진우기 옮김 / 불광출판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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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는 너만 남겨 두고 나 혼자 도망갔었어.
정말 미안해. 이젠 도망가지 않고 너를 안아줄게."
 
 
 
 
    마음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불쑥 솟구치는 감정에 휩쓸려 일을 그르치거나 혐오하는 부모의 언행을 답습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좌절감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금방 수긍할 것이다. 다음부턴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해도 매번 똑같은 구렁에 빠진다. 그럴 때 사람들은 말한다. 이건 내가 바라던 게 아니었다고. 물론 그럴 것이다. 자신을 구렁텅이로 몰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우리는 왜 눈앞에 구렁이 있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은 무엇일까. 심리학에서는 이 '보이지 않는 힘'을 가리켜 '내면아이Inner Child'라 한다. 내면아이는 해결되지 않은 어린시절의 상처가 이어져 현재에까지 미치는 영향력을 뜻한다. 오랫동안 저 심연에 묻혀 있던 내면아이는 우리의 보살핌과 사랑이 절실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정체조차 모르거나 알더라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상담과 각종 심리치료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만, 누구나 쉽게 문을 두드리는 데는 한계가 있는 실정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기와의 불화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고통의 원인도 해결책도 모르는 이들에게 나는 이 책을 소개하고 싶다.
 
 
   틱낫한 스님의 이번 책 <화해>는 내면아이 치유를 위한 지혜와 수행법을 담고 있다. 이 책 전반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수행(치유)의 목적이다. 수행의 참목적은 단지 고통에서 달아나기 위함이 아니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함의를 포함하고 있다. 늙고 병들고 죽고 이별하는 삶의 근본부터가 고통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인정하고 깊이 바라보는 일이 책에서 말하는 수행의 기본자세다.
 
 
   내 손 위에 잎사귀가 한 장 있다고 하자. 당신의 눈에 무엇이 보이는가? 잎은 그저 잎일 뿐이다. 그것은 꽃이 아니다. 하지만 잎을 깊이 바라볼 때 우리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식물이 보이고, 햇빛이 보이고, 구름이 보이고, 흙이 보인다. '잎'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잎은 잎이 아닌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한다. 잎에서 햇빛, 구름, 흙 같은 잎이 아닌 요소들을 제거하고 나면 잎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본문에서)
 
 
   깊이보기를 통해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서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책에서 강조하는 또 하나가 이것이다. 우리 모두는 과거와 미래의 연속체라는 것. 이것을 아는 것에서 치유의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내면아이는 무엇인가. 과거의 상처다. 우리가 생명 흐름의 연속체라는 이해는 우리의 '과거'가 어린시절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우친다.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그림자라는 것을 말이다. 부모와 조상의 해결되지 않은 상처가 이어져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듯이 우리의 상처와 고통은 후손에게 전해진다. 책에서 말하는 수행의 중요한 목적이 여기 있다.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곧 나의 조상과 후손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독립된 자아'라는 개념에 사로잡혀 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무지하다. '나인 것'과 '내가 아닌 것' 사이의 밀접한 관련성을 이해할 때, 무지는 치유되고 고통, 화, 질투, 두려움도 사라진다. (본문에서)
 
 
   책에는 일곱 가지 수행법이 소개된다. 끝없는 생각을 멈추고 현재에 집중하는 물건 치우기('물건'은 비유다) 명상이나 16가지 호흡 수행법, 평화의 편지 쓰기와 같은 실천법 등은 깊이 보기와 바로 보기를 그 목적으로 한다. 우리가 하나의 독립된 존재라는 인식은 치유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된다고 책에서는 역설한다. 우리 안에 깃든 바람과 햇빛과 구름과 흙 같은 것을 인정할 때 깊이 보고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와 '너'의 구별은 다른 사람에 대한 용서와 이해의 길을 막는다. 우리의 상처와 치유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싹트고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서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항상 의식하라는 것이다.
 
 
   고통과 함께 살아갈 준비를 하라. 고통을 받아들이고 고통받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고통은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않는다. (본문에서)
  
  
   치유는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어루만지는 일이다. 책에서는 의식과 무의식을 거실과 지하실로 비유한다. 두려움, 분노, 슬픔과 같은 감정의 씨앗들은 지하실에 잠들어 있다. 지하실 문을 개방하고 그것들을 깨워 하나 하나 만나는 일이 수행이고 치유의 길이다. 지하실에는 부정적인 감정뿐 아니라 이해나 배려의 마음과 같은 긍정적인 씨앗들도 함께 있는데, 이것들을 거실로 끌어내는 것도 수행의 중요한 과정이다. 이러한 수행을 통해 우리는 과거의 상처와 화해하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우리 안의 아이가 울고 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상처와 고통을 볼 수 없다.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상처와 고통을 포용할 수 있는 지혜를 얻는다는 말도 된다. 치유는 모든 변화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틱낫한 스님의 책은 어렵지 않다. 알기 쉬운 비유와 일화로 풀어내는 이 책 역시 부담 없이 읽어낼 수 있다. 책에 소개된 수행법도 실생활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어려운 숙제는 책을 덮고부터다. 우리 안의 바람과 구름과 햇빛을 불러내 그것들을 어루만지는 일은 온전히 우리 몫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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