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멜랑콜리아 - 상상 동물이 전하는 열여섯 가지 사랑의 코드
권혁웅 지음 / 민음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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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 예술작품부터 노랫말에 이르기까지 사랑에 대한 담론은 끝이 없다. 우리 인간은 어떤 형식으로든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을 멈추지 않기 때문에(그럴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사랑은 인간의 영원한 테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권혁웅은 이 책에서 조금 기괴한 사랑의 담론을 펼친다.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중심에는 괴물(상상동물)들이 있다. 저자는 시인의 감성과 평론가의 날카로운 논리로 세계의 신화와 문학작품 속 괴물들에서 사랑의 속성을 파헤친다.

 

 

   우리 인간 안에는 인간보다 더 인간인 동물이 산다. (...) 우리보다 더 우리 자신을 닮은, 나아가 우리의 시대를 증거하는 괴물들 말이다.(14쪽)

 

 

   사랑과 괴물이라니. 조금 생뚱맞다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우선 다양한 괴물들의 모양새에 놀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친숙한 괴물들(이를 테면 퀴클롭스나 세이렌, 늑대인간이나 좀비 따위) 이외의 기괴한 괴물들의 이야기가 몹시 흥미롭게 읽힌다. 몸이 한데 붙어서 두 개의 머리에 네 개의 팔이 달린 몽쌍씨(蒙雙氏)나 몸이 반쪽이어서 둘이 합쳐야 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일비민(一臂民), 가슴에 구멍이 뚫린 관흉국(貫胸國)의 사람들은 그 기괴한 형상으로써 사랑을 구현한다. 사랑해서 한 몸이 되고, 사랑하는 이를 잃고 '반쪽'이 되고, 가슴에 구멍이 뚫린다는 사랑의 비유를 그들은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책은 열여섯 가지 사랑의 코드(이름, 약속, 망각, 짝사랑, 유혹, 질투, 우연/필연, 자기애, 첫사랑, 고백, 기다림, 무관심, 소문, 외설, 외로움, 비밀)로 묶여 있다. 이 코드들은 사랑의 필연적 단계와 거기서 빚어지는 복잡한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랑을 단순히 행복과 비애의 이분법적 틀에서 느끼고 받아들였던 사람이라면 자신이 몰랐거나 혹은 간과했던 사랑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자기애나 외로움 역시 사랑의 범주에 들 수 있다는 논리에 큰 공감을 느낀다.

 

 

   감정은 관계의 소산이기 때문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외롭다는 감정을 즉각적으로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나는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게 아니라 혼자가 '되어서' 외롭다. 외로움은 대상을 경유한 후에야 떠오르는 감정이다. 그것은 있어야 할 사람이 없어서 생기는 감정이므로 없음(부재)의 형식으로 수행되는 있음(현존)이다. (233쪽)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인간의 사랑은 어떤 식으로든 계속된다는 깨달음을 준다. 몽쌍씨와 같이 대상과의 융합만이 사랑은 아니라는 것, 대상과의 간격을 의식하게 해주는 가혹함 역시 사랑의 속성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직 메아리로써만 응답할 수 있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에코나 조각난 자아를 이끌고 세계로부터 추방당하는 프랑켄슈타인 등 적지 않은 괴물들이 끔찍한 형상과 운명으로 이러한 사랑의 비애를 구현하고 있다.

 

 

   우알레펜은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을 가졌다. 이괴물이 가진 양가성이 실제로는 무관심한 자의 행동과 유관하다는 뜻이다. 그는 다르게 행동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정상적인 양태를 벗어난 존재가 되고 말았다. 성격과 운명을 제 모습에 구현하는 것, 이것이 상상 동물들의 운명이다. (195쪽)

 

 

   책에는 난생 처음 듣는 해괴한 괴물들의 이야기도 많지만, 카프카의 <변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문학작품이나 구미호와 강시, 좀비, 골룸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괴물들도 다수 등장한다. 낯설거나 익숙한 그들의 운명과 성격, 형체에서 사랑의 속성을 발견하는 일은 흥미롭고 또한 뜻깊다. 인간의 보편적 감정 중 하나인 사랑이 보편적이지 않은, 비정상적인 존재들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사랑의 보편성을 증거하는 이 책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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