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 테마명작관 3
니콜라이 고골 외 지음, 강완구 엮음, 고일 외 옮김 / 에디터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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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에서 펴낸 <테마명작관> 시리즈는 세계의 고전 문학을 주제별로 분류해 엮고 있다. 이 책은 그 중 3권이다. '사랑', '가족'에 이어 이번 책에서는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중요 테마인 '사회적 약자'를 조명한다. 총 다섯 편의 중,단편을 싣고 있는 이번 작품집의 주인공들은 신분이 낮고 궁핍한, 이른바 '쥐새끼(<가난한 사람들>에서)' 같은 미약한 존재들이다. 사회적으로 그들은 작용을 하기보다는 작용을 받는 입장이다. 고골의 <외투>와 체호프의 <관리의 죽음>에서는 두 하급관리의 허망한 죽음을 통해 무심코 던진 돌에 죽어나갈 수도 있는 무력한 이들을 극단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외투> 속 주인공 바슈마치킨은 전 재산과도 같은 새 외투를 강탈당하고 이를 되찾기 위해 관청에 청원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대와 조롱 뿐이다. <관리의 죽음> 에서는 오페라를 관람하다 다른 부서의 수장에게 침을 튀게 한 사소한 실수를 사죄하러 다니는 체르뱌코프와 그의 존재 자체에 무관심한 고위층 관리의 모습이 대비된다. 두 하급관리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절망이다.

 

 

   작품에서 그려지는 사회적 약자들의 사랑과 욕망은 모두 좌절된다. 내가 볼 때 그것은 어느 정도 예정된 것이다. 그들의 좌절은 반드시 외부의 압력이나 작용 때문만은 아니다. 귀족 연인에게서 버림 받고 죽음을 선택하는 시골처녀 리자(카람진, <가엾은 리자>) 경기병 대위를 따라간 딸에 대한 걱정으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삼손(푸슈킨의 <역참지기>)은 자기 스스로 약자의 틀에 갇혀있다는 데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가엾은 리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자기에 대한 체념의 습관 때문이다. 배운 것 없고 가난한 리자는 자신의 무력함을 받아들이고 거기 갇힌다. 무엇을 기다리지만 스스로 찾아나서지는 않는다. 고상하고 친절한 귀족 에라스트와의 사랑 역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받은 것이다. 자기를 선택해 준 대상이 떠난 자리에 이미 자기는 없다. 그것이 선택당한 자들의 비극이다. <가엾은 리자>의 비극이 맹목과 체념의 태도에서 초래했다면 <역참지기>의 주인공 삼손의 불행 원인은 불신과 적대감에서 찾을 수 있다. 스스로 약자의 틀에 갇혀 있다는 것에는 리자와 다름없지만 수동적인 리자와 달리 삼손은 적대적이다. 사회권력에 대한 불신과 피해의식이 그 적대감의 뿌리로서 작용한다. 삼손과 같은 인물의 사고는 '다 그렇고 그렇다'로 귀결된다. 자신의 딸을 데려간 경기병 대위가 언젠가는 딸을 버릴 것이라는 확신이 절망이 되어 삼손의 삶은 파국을 맞게 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종합판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그 스스로가 사회적 약자이기도 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평생 작품을 통해 그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쏟아냈다. <가난한 사람들> 역시 그들, 약자에 대한 따뜻한 비판의식이 깔려 있는 작품이다. 가난한 하급관리 마카르 제부쉬킨과 그의 먼 친척 바르바라가 주고받는 편지글에는 문학과 삶에 대한 통렬한 풍자가 가득하다. 고골의 <외투>와 푸슈킨의 <역참지기>에 대한 언급도 흥미롭게 읽힌다. 앞선 작품들에서 보이는 수동적이고 체념적인 주인공들에 비해 마카르와 바르바라는 자의식이 강하다. 자기와 자기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투철한 통찰력도 엿보인다. 그러나 마카르나 바르바라 역시 사회적 약자를 자처하고 마는 한계를 보인다.

 

 

   부끄럽습니다, 내 사랑.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 정말 부끄럽습니다. 한편으로는 그게 뭐 어떻다는 겁니까, 내 사랑! 왜 저는 그런 즐거움을 가지면 안 된다는 말입니까? 술을 마시면 제 구두 밑창에 대한 생각을 잊을 수 있잖아요. 왜냐하면구두 밑창을 영원히 평범하고 더러운 밑창으로 남아 있을 테니까요. 구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의 현인들은 신발 없이 맨발로 다녔잖아요. 그러니 우리 같은 하찮은 사람들이 이런 하찮은 물건에 대해서 투정을 부려서야 되겠습니까?

 

                              ㅡ  도스토옙스키,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

 

 

   모든 작품들에서 보여지는 사회적 약자들은 대개 감상적이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다.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의 삶에 무관심한 강자에 반해 그들은 사회중심적이다. 철저하게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말이다. 사회적으로도 내면적으로도 무력한 그들은 언제나 선택받는 자들의 위치에 있다. 그런 수동적인 삶은 그들 자신의 성격이 되고 운명이 된다. 그리고 "영원히 평범하고 더러운 밑창으로 남아 있"게 된다.

 

 

   책에 실린 작품들을 이미 읽었던 독자도 꽤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카람진의 작품을 제외한 모든 작품들을 오래 전 읽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읽었다. 이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한 감동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색다른 감동은 개인적 세월의 영향도 있겠으나, 현 시대에 어울리는 번역과 편집도 큰 몫을 했다. 이전에 읽었던 독자들이나 그렇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이 작품집은 분명 뜻깊은 것을 남겨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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