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 KBS 사이언스 대기획 인간탐구
김윤환.기억 제작팀 지음 / 예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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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자 마틴 부버Martin Buber는 기억한다는 것은 곧 산다는 것To remember is to live이라고 했다. 소설이나 영화 작품에 등장하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의 삶을 생각해 보면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잃어버린 사람의 삶은 공허하다. 이처럼 기억은 우리의 과거이고 현재를 발동하는 힘이며 미래를 향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러니까 기억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과도 같다. 거시적으로 볼 것도 없이 일상에서도 우리는 기억의 소중함을 의식할 수 있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헤매거나 흔하고 쉬운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곤혹스러웠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치매는 노인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과거와 달리 조기 치매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도 흘려들을 수 없다. 치매가 단지 노화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일면 희망적이다. 젊어서는 물론 늙어서도 건강한 기억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도가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이러한 다각적인 의문들로부터 출발한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는 기억과 망각의 생물학적 작용원리와 구조를 들여다본다. 다양한 연구결과와 사례들, 실험을 통해 전면적인 해부를 하고 있다.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각 기관들에 대한 사진이나 그림, 방송 당시의 영상들은 독자의 이해도를 높여준다. 1부에서는 기억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다룬다. 기억은 곧 생존과 맞닿아 있다는 것, 개인적 경험이나 지식, 가치관에 따라 기억은 조작된다는 사실을 흥미로운 실험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2부에서는 기억상실과 기억력 회복 방법을 다룬다. 인간의 뇌는 노화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노력을 통해 얼마든지 기억력은 향상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끝으로 3부에서는 망각을 다룬다. 잘 기억하는 것만큼 중요한 망각은 때때로 '고통의 탈출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잊고 싶은 나쁜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나쁜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경험 당시 느낀 '감정'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전문용어로는 '감정기억'이라고 부른다. 이는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경우에 따라 전혀 불필요한 고통만 안겨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나쁜 기억도 최면술이나 긍정적인 기억 훈련을 통해 지우는 것(극복)이 가능하다고 한다. 팔다리가 없이 태어난 호주 청년 닉 부이치치, 나와 나이가 같은 그의 말이 가슴에 크게 남는다.

 

 

    "어떤 기억은 바꿀 수 없어요. 바꿀 수 없고,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지요.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세요. 아픈 기억이 있고, 평생 남는 기억도 있겠지만 나쁜 기억 때문에 장애가 되지 말고 좋은 기억에 집중하며, 나빴던 시간에서 교훈을 얻어 앞으로 나가세요."  (본문 중에서)

 

 

    훌륭한 다큐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나는 종종 아쉬움을 경험한다. 과학 다큐와 같이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일수록 그렇다. 시청하는 내내 끄덕이며 열중했던 내용도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면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이는 우뇌와 좌뇌 사이 대뇌변연계의 중추인 해마에서 기억이 지워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해마는 모든 기억을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임시저장공간인 것이다. 해마의 자체 삭제 기능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기 위한 공간 확보라고 보면 된다. 반복적 경험이나 학습, 감각적 자극을 통해 대뇌피질로 옮겨진 기억은 장기기억이 된다. 기억의 연장이다. 기억을 연장시키기 위한 방법으로는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메모나 두뇌활동, 이를 테면 퍼즐이나 독서 따위가 있다. 스트레스와 알코올을 피하고, 적절한 수면과 운동도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책에서는 제시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단 한 번 시청한 내용을 온전히 기억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KBS 사이언스 대기획 <기억> 제작팀에서 펴낸 이 책은 나와 같은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에게 반가움을 선사한다. 방송 분량 때문에 편집된 내용이 보태져서 더욱 풍성하다. 기억에 관한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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