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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되기 - Becoming Human
장 바니에 지음, 제병영 옮김 / 다른우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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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믿음을 품고 살아간다고 한다. 자칭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인간에게 '인간되기'라는 표제는 그래서 다소 거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자기 확신이 뒤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지은이 장 바니에는 이 오만과 아집의 껍데기를 향해 뜨겁고 단단한 돌을 던진다. 철학과 신학을 가르치던 바니에는 프랑스의 트로슬리 브뢰이유에서 집 한 채를 마련해 발달 장애인 두 사람과 함께 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작은 공동체를 '라르슈'라고 부른다. 현재 34개국에 134곳이 넘는 라르슈 공동체의 시작이었다. '장'은 장애인들과 생활하면서 모든 인간은 똑같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 모두는 강함과 약함,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 대립되는 본성과 욕망으로 빚어진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파리의 어느 거리에서 정신이 온전치 못한 여자와 마주친 장 바니에는 자기 안의 두려움과 불안에 직면하게 된다. 이 여자를 도와주는 건 어렵지 않지만, 만약 이 여자가 지속적으로 도움을 요청한다면? 집으로 찾아온다면? 더럽고 못 생기고 추한 것을 두려워하는 인간 본성을 자기 안에서도 발견하면서 스스로의 나약함을 인정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온전한 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장'은 인간적 나약함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하는 일이 좋은 일이라고 인정하지만, 그 이상 관계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파리의 거리에서 '장'이 직면했던 그 '두려움'과 '불안' 때문이다. 밝은 곳에 있기를 원하는 것 또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사회적으로 불행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안도하는 동시에 불안을 느낀다. 그럴수록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애쓴다. '더 나은 존재'라는 건 무엇일까. 사회적인 지위, 풍족한 재산, 안정적인 미래일까? 장 바니에는 고개를 젓는다. 그가 말하는 인간되기, 즉,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길은 자기 안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강해 '보이기'를 원한다. 자기 안의 나약함, 이기심, 비뚤어진 욕망을 들키는 것을 두려워한다. 두려움 때문에 자기 자신조차 속이게 된다. 나는 이미 충분히 좋은 사람이고 누구의 도움도 필요없다,라면서. 사회적 약자 앞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들이 자신 안에 감춰진 나약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너도 나와 마찬가지로 추하고 더럽고 나약해. 두려움 때문에 그들을 포용할 수도 없다. 장 바니에는 이 페쇄성에서 공포와 증오와 편견, 배척하는 마음이 싹튼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우리의 과거와 함께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타인의 모습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두려움 없이 자신을 더 개방하고 더 많이 이해하고 타인을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현실에 부딪쳐 나약해지거나 그 실체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현실에 억지로 모양을 짜 맞추는 것 또한 아니다.오히려 우리가 하나의 개인으로, 또 하나의 종(種)으로서 모든 이의 선(善)을 위해 진화해야 하는 것이다. -- (p.29)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즉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배척에서 포용으로, 공포에서 신뢰로, 폐쇄에서 개방으로, 판단과 편견에서 용서와 이해로 '마음의 움직임'을 이루어야 한다고. 그때 비로소 서로에 대한 존엄성과 진정한 공동체 의식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인간되기>는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우리의 불완전함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훌륭한 존재가 아니다. 인정해야 한다. 훌륭한 존재가 아니면 어떤가. 나약하면 어떤가.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면 좀 어떤가. 평생 두려움과 불안을 혼자 떠안고 반쪽의 얼굴로 사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내가 불완전하고 미숙하다면 그것을 채워나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인간이 가진 훌륭함일 것이다. <인간되기>는 이 귀한 사실을 깨우쳐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