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버돗의 선물 - 한정판 스페셜 기프트 세트 (스태들러 색연필 세트 + 그림엽서 + 케이스)
테드 겁 지음, 공경희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망하기 전에 제게 편지를 보내세요.


 


 

 

 


 

 

                                    -   Mr. 버돗












사랑하는 민나,

목표를 이룰 때까지

묻지 말고 살면서 일해라.

연약한 이웃들을 돕고

아무한테도 도움을 구하지 마라.

인생은 거품에 불과해서

굳건한 것은 두 가지,

타인의 고통에의 친절

나의 고통에의 용기.

 

ㅡ 너의 헌신적인 엄마가.

 

 

 


 

 


   "왜, 구걸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왜 그렇게 많지. 나는 그 사람들 만날 때마다 그냥 지나치질 못하거든. 동전이 있어도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죠." 이십대 초반, 어느 술자리에서 나는 평소 고민해왔던 문제를 꺼냈다. "거기까진 괜찮은데, 그러고 돌아서면 심각한 갈등상태에 빠지거든." 노란 불빛 아래 취기로 불콰한 얼굴들이 일순간 나에게로 쏠렸다. "나는 나의 오만이 역겨워요. 수치스러워. 그들에 대한 나의 연민이 부끄러워요. 나한테는 없어도 그만인 몇 푼 가지고 흡족해하는 나 자신이 재수없어. 근데 그 순간엔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거든요. 그 마음을 주고 싶었거든." 술 한 잔. "내 오만함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 같아서 나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나요. 나쁜 짓을 한 것은 아닌데,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도 안 들어. 찝찝하죠. 그리고 언제부턴가 나는 그 사람들 피해요. 그들이 보이면 죄지은 사람처럼 시선을 피하면서 서둘러 걷죠." 나는 노랗고 붉은 얼굴들을 하나씩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노랑머리만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응수해 주었다. "음. 근데 진짜 진짜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 우리한테는 몇 푼 아닌 것이 그들에겐 하루 밥값이 될 수 있지. 그러니까 자의식 문제로 고민하는 것 자체가 더 큰 오만일 수 있다고. 내 생각은 그래." 노랑머리는 뭔가 다르구나. 그의 말에 나는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던 것 같다. 그리고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귀한 대화였다. 이후 십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이번 겨울 나는 다시 그 질문과 맞이하게 되었다.

 

 

   Mr. 버돗의 선물. 선물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주는 것. 여기까지 쓰고 한참을 생각했다. 무언가 주는 것. 주는 것. 쉬운 일 같지만 한편 어려운 일 같기도 하다. 누구에게 선물을 줘 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일까. 잘 모르겠다.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우선 <Mr. 버돗의 선물> 을 소개하겠다. 제목과 마찬가지로 '선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1933년 대공황기를 겪고 있던 미국의 작은 주 캔턴의 지역신문에 트럼프 카드 크기만한 작은 광고가 실린다.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이었다.

 

 



만약 당신이 내일 먹을 빵을 걱정한다면
복지단체에서 도움을 받아야 할지 고민할 것입니다.
제가 이런 상황에 놓인 75가구에게
즐겁고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기회를 드릴 수 있다면
매우 기쁘겠습니다.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분과 가족의 신원은 절대 밝히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편지로 사정을 알려주시면 곧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_ B. 버돗.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은 광고의 힘은 놀라웠다. 미스터 버돗의 우체국 사서함으로 수많은 편지들이 도착했다. 저마다의 진실하고 절박한 사연들에 마음이 동한 버돗은 애초의 계획을 바꿔 150가구에게 5달러씩을 선물했다. 이 책은 미스터 버돗에게 날아든 수많은 사연들을 묶고 있다. 현재 처한 어려움을 알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정직하고 간절하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고마움'이 담겨 있다. 자신이 5달러를 받지 못하게 되더라도 Mr. 버돗의 온정은 어려운 시기를 겪는 모두에게 귀한 선물이 될 거라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자신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들은 5달러가 절실했다.

 

 


   직업이 뾰족탑 수리공이지만 도랑 파는 일을 거절하지 못합니다. 아이 몇은 신발이 필요하고 다른 애들은 옷이 필요하지만, 어느 착한 분이 저녁밥을 보내주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난 3주간 여러 끼니를 빵과 커피로만 때웠답니다. 민간사업청 관리자에게 말해 보았으나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_  119쪽, '당신의 두 발을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다면' 중에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5달러짜리 수표를 받은 사람들은 감사의 편지도 잊지 않았다. 5달러는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산타클로스, 아니 버돗의 선물로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운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었다. 버돗의 5달러는 빵과 옷, 신발이 되어 그들의 허기를 채우고 몸과 발을 감싸준 것이다. 허기는 다시 찾아들 것이고, 옷과 신발은 낡아가겠지만 버돗이 퍼뜨린 '희망'만은 사람들 마음 속에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 '희망'이 어려움을 극복할 힘을 주었을 것이다. 버돗의 5달러는 대공황에 빠진 미국을 살려낸 작은 힘이었다. <Mr. 버돗의 선물>이 담고 있는 '희망'이다.

 

 

   선물. 누군가에게 무엇을 준다는 것. 어떤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쉬워 보이기도 한다. '장차 성공하면 기부도 하고 어려운 이웃도 돌아봐야지', '나도 어려운데 누굴 도와?' '나눔' 앞에서 사람들이 흔히 보이는 반응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를 도울 만큼 넉넉하다고 생각지 않는 것이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눈멀어 다른 사람의 한숨을 들을 수 없다. 눈물을 볼 수 없고, 허기를 느낄 수 없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나누는 일이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매년 겨울 특정 장소에 금일봉을 두고 가는 익명의 사람을 추적하는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추적60분 같은 분위기는 아니고. 올해도 어김없이 그는 지정 장소에 금일봉을 놓고 갔는데, 나중에 보니 속이 꽉 찬 돼지저금통들이 수십 개였다. 그 장면을 보면서 마음이 뜨거웠다. 고마움과 부끄러움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한평생 어렵게 모은 돈을 기부한 할머니도 있다. 일반적인 사람들('나도 어려운데 누굴 도와?' 하는)의 기준에서 본다면 그들은 결코 풍족한 편에 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도 어려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그들은 기꺼이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다. 앞서 얘기한 두 부류 사람들의 차이는 결코 물질적 풍요의 정도가 아닌 것 같다. 나눔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눔으로써 얻는 '그 무엇'을 알지 못한다. 반면, 나눔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은 나눔에서 오는 긍정적인 힘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또 한 번 진심으로 부끄러워진다. 나는 선물을 주는 법도 받는 법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다. 알았으면 조금씩 조금씩 선물을 준비해야지. 'Mr. 버돗'은 나에게도 이토록 귀한 선물을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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