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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 제17호 - Summer, 2010
아시아 편집부 엮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아시아(Asia)'에서 계간지를 펴내고 있다는 소식을 나는 최근에야 알았다. 올해 들어 나의 문학적 독서 체험을 넓혀준 제3세계의 소설 몇 편. 그 안에 흐르던 수많은 이미지들이 오래된 그림처럼 떠올랐다. 그들 역사와 문화, 전쟁의 상흔 같은 것들이 문장과 문장 사이를 팽팽하게 휘감고 있었다.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때 나는 '아시아(Asia)'라는 출판사를 처음 알게 되었다. 우연히 손에 잡은 몇 권의 작품들에서 보편적인 이국적 정취와는 조금 다른 매혹적인 정서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원작을 잘 살려낸 엮은이의 역량이 클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인지 계간지 소식을 듣고 반가웠다. 몇 종류의 문학잡지를 구독하고 있지만 엮어진 내용은 국내문학 위주였다. 아시아의 작가와 문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정기간행물은 아직까지 접해보지 못했다.
계간《아시아》는 서로 다른 창조적 상상력이 모여 이루어내는 정신의 숲입니다. 단순히 공간으로서의 특정지역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미학적인 지역자치제를 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보자는 것입니다.
Asia aspires to be a forest of various creative minds. Asia does not mean a specific geographical region. We do not aim for an aesthetic self-governance. We do not propose a cultural separatist movement. We simply want to look at ourselves with our own eyes.
《아시아》는 출간 의도를 위와 같이 밝히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만난 계간 '아시아'는 17호. 2010년 여름호이다. 이번 여름호는 '팔레스타인 문학 특집'으로 꾸며졌다. 권두 에세이(우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다 - We Are Palestinians)에서 소설가 오수연 씨는 대담「팔레스타인 문학을 빛낸 별들」에 인용되었던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말 - "당신은 팔레스타인인일 수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이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을 빌려 "이런 의미에서, 나는 팔레스타인인이다. 내가 살아야 할 곳에서 배제되었다고 느끼지만 달리 갈 곳은 없다. 그리고 내 위에 쌓인 문제들이 첩첩이고 지구 끝까지 얽히고설켜, 내 문제가 해결되려면 세계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지경이라는 걸 안다. 그렇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다. 어디에 살건 나처럼 느끼는 많은 이들도 같은 의미로 팔레스타인인일 것이다."라는 감명적인 문장으로 팔레스타인 문학 특집의 첫머리를 열고 있다.《아시아》의 출간 의도와 일맥상통하는 오수연 씨의 권두 에세이를 읽으면서 내 가슴은 저릿한 감동과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올리브나무 몸통 위에
내 이야기 내 비극의 장막들을 새길 것이다,
내 한숨을 새길 것이다
내 숲과 우리 죽은 자들의 묘지 위에,
...우리 빼앗긴 땅 모든 등기권리증의 번호를
새길 것이다
우리 마을의 위치와 경계를 새길 것이다.
궤멸된 집들과 사람들을,
내 뿌리 뽑힌 나무들을,
그 모든 것을 기억하기 위해
...계속 새길 것이다
내 비극의 장면들을,
모든 참사의 국면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집
마당
올리브나무 몸통 위에.
'팔레스타인 문학 특집'이라고 하여 나는 우선 팔레스타인의 역사부터 살펴야 했다. 부끄럽지만 내가 '팔레스타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가끔 뉴스를 통해 비춰지는 참상의 이미지와 단편적인 역사적 사건들이 전부였다. 팔레스타인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스라엘과의 오랜 분열과 충돌. 그들 역사를 살피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그들 반목의 역사가 반드시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굳이 세계 곳곳을 거론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의 정치적 분쟁, 남한과 북한의 오해와 충돌의 역사, 그 안타까운 분단의 현실은 여전히 우리의 상처이고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위에 소개한 글은 팔레스타인의 시인이자 정치가인 '타우픽 자야드(Tawfiq Zayyad)'의 시 전문이다. 나는 이 시가 정말 마음에 든다. 책갈피를 해두고 생각날 때마다 반복해서 읽고는 했다. 이 시의 무엇이 나의 마음을 이렇게 붙드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어느 밤, 홀로 등을 밝히고 자리에 앉은 밤에 나는 온 가슴으로 그것을 느낄 수 있다. 바로 한(恨)이었다. 새로운 시대의 젊은 작가들의 시선이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판타지적인 상상력의 세계로 옮겨지고 있는 경향도 있지만, 그래도 문학의 역사는 한(恨)의 역사이고, 그 시대적 배경이나 관심이 달라도 역시 인간의 한(恨)은 문학을 탄생시키는 힘이며, 문학과 인간, 문학과 세계를 이어주는 끈이 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내가 국내작가들, 음, 이를테면, 박경리 선생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 아릿하고 묵직한 슬픔의 무게를 나는 먼 이국의 시인이 쓴 문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느꼈던 것이다. 이것이 문학의 힘이고, 인간을 이어주는 정(情) 아닐까.
내 위에 떠 있는 것 위에 떠 있기 위해
무(無)를 보고 전체를 쓰기〔書〕위해
액체 형태로 있는
대리석을 해독(解讀)하기 위해
물(水)을 쓰기〔書〕
(...)
물(水)을 쓰기(書)란 그 시원(始原)을 찾으려 하며 강(江) 상류로 가는 여행에서 피 흘릴 용의가 있는 자아 안의 우주적 꿈의 잔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이는 징조들을 기다리고, 그들에게 살며, 숨 쉴 수 있는 목소리와 이야기들을 부여하는 것이다.(...) 영혼의 심연에 가라앉는 물(水)을 열고 그 표면을 진동시키는 것, 감정의 강(江)과 미풍에도 울리는 작은 종(鐘)들만큼이나 가벼운 양쪽 기슭을 쓰기(書) 위해서 물을 책처럼 펼쳐서 읽는 것. 창조의 평형, 또는 기도 속의 방향에서 지금 여기에 태어날 예정이며, 빛이 비추지 않았고 아직 아무도 발설하지 않은 언설(言說)에서 다른 모든 방향의 이름을 찾을 의무가 있는 "가슴 위 깃털의 무게" 속에서 자신을 가늠해보는 것.
'키파 판니(Kifah Fanni)'의 에세이 '액체적 글쓰기'는 상당히 독특하고 매혹적인 방식으로 그 한(恨) - "가슴 위 깃털의 무게" -을 표현해내고 있다. 액체적 글쓰기라니. 얼마나 매혹적인 표현인가. 글쓰기를 물(水)에 빗대어 "강(江) 상류로 가는 여행에서 피 흘릴 용의가 있는 자아 안의 우주적 꿈의 잔재를 인식하는 것"이라는 '키파 판니'의 문장은 "과거가 되지 않을 시간과 폐허가 되지 않을 장소"가 '글쓰기' 곧 '문학'임을 각성시키고 있다. '우리'가 소속된 곳이 어디이건 그 '강(江)'의 상류에서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위안이 된다.
《아시아》는 이미 그 출간 의도에서도 밝혔듯이 지구상의 불특정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계간지이다. 한글과 영어로 동시에 소개되고 있는 글들이 이색적이다. 국내작가의 작품도 영역(英易)해서 소개하고 있다. 말이 나온 김에 하는 건데, 이번에《아시아》를 통해 등단한 국내작가 이호빈의 소설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젊은 작가가 선택하기엔 상당히 진부한 소재임에도 능청스러운 듯 섬세하고 리듬감 빠른 그의 문장력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도 오랜만이어서 즐거움이 컸다. 팔레스타인 작가들의 에세이나 시, 소설이 이번 여름호의 대부분을 장식하고 있지만, 앞서 언급한 우리나라의 신예작가 이호빈 씨나 중국 작가 주티엔원(Chu Tien-wen)의 단편소설 등은《아시아》의 다채로움을 더한다.
슬픔과 상처의 역사는 단연 '아시아'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 사는 곳 어디나 크고 작은 분열과 충돌, 오해와 미움이 있기 마련이다. 오래되어도 썩지 않고 고여 있는 응어리진 감정들, 달아나고 싶어도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과거와 눈앞의 답답한 현실을 얼마나 현명하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인간이 풀어야 할 숙제일 것이다. 그 숙제를 푸는 하나의 방편으로서 '문학'이 있다. '문학'이 점점 힘을 잃어가는 있는 오늘날, 그래도 나는 믿어보련다. "빛과 함께 퍼지며 어둠과 함께 움츠러드는 지평선에 대한 지도의 '열쇠'(키파 판니 Kifah Fanni - '액체적 글쓰기')"로서 문학은 우리 '피흘림의 역사' '한(恨)의 역사'를 풀어낼 것이다.《아시아》가 그 든든한 일환이 되어 기쁘기 그지없다. 앞으로도 꾸준히 응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