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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언어 씨 이야기 - 헬로우 Mr. 랭귀지 ㅣ 1881 함께 읽는 교양 5
에리카 오크런트 지음, 박인용 옮김 / 함께읽는책 / 2010년 6월
평점 :
빵상 아줌마로 알려진 황선자 씨는 자신이 외계인과 소통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인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외계인과 지구인과의 통역도 해준다. 나무를 부둥켜안고 대화도 한다. 황선자 씨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은 괴상한 언어로 이야기하는 이상한 여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면에는 외계인과의 소통 욕구가 숨어 있었을 것 같다. 여기서 '외계인'이란 반드시 지구 바깥에 사는 인간 아닌 생물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둘러싼 세계 바깥에 있는 모든 존재가 외계인이 아닌가. 서울 사는 사람과 타 지역 사람,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과 이국의 사람, 어른과 아이, 늙은이와 젊은이, 여성과 남성(등등)은 서로에게 외계의 존재이다. 우리는 매일 외계와 접촉하고 소통을 시도한다. 가장 일반적인 소통 방법이 바로 언어, 말(言)이다. 그런데 우리를 소통하게 해주는 언어는 불완전해서 종종 오해를 빚어내기도 한다. 세상 어떤 언어도 완벽한 소통을 이뤄주지는 못할 것이다. 인간은 세상 모든 사물들을 완벽하게 파악하거나 이해할 수 없고, 당연히 언어에도 그것이 반영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완벽한 언어를 꿈꿨다.
《이상한 나라의 언어 씨 이야기》는 쉽고 완벽한 언어를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과 그들이 만든 인공어들의 역사가 담겨 있다. 《스타트렉》에 나오는 '클링온'이나 세계평화를 지향하는 '에스페란토', 찰스 블리스가 만든 블리스 기호, 언어를 음악처럼 연주했던 쉬드르 등등 다양한 인공어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특히 찰스 블리스가 고안한 블리스 기호는 비록 사람들의 외면을 받았지만, 그 뜻이 참 훌륭하고 감동적이다. 일반적인 언어를 사용하기 힘든 장애 아동들을 위해 만들어진 쉽고 단순한 의미 기호들은 실제로 장애아동들의 소통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구체적인 의미 기호들이 복잡하고 그 상징성 또한 모호한 점, 소통에 매우 유용한 도구였지만, 언어가 아니라 기호였다는 점이 블리스 기호의 실패 요인이 되었다.
언어는 서로 공유하는 것이자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들의 지표이다. 언어는 우리의 문화를 그 어느 것보다 더 많이 표현하며, 우리가 불평하고 논쟁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 데 사용하는 도구이다. 우리가 우리의 언어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의 정체성이 간직된 저장소인 것이다. (134쪽)
블리스 기호처럼 대부분의 인공언어들은 그 논리성이나 합리적인 체계 따위를 떠나 사람들의 외면을 받았다. 인간에게 있어 '언어'는 단순한 소통 수단 이상의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각자의 고유한 언어에는 그들 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다. 언어는 인간에게 존재의 본질을 일깨워준다.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위협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대부분의 인공언어들이 열정으로 태어나 대중의 비웃음 섞인 외면 속으로 사라졌지만, 어떤 인공어들은 아직까지 살아남아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기도 한다. 에스페란토의 경우가 그렇다. 세계 공용어의 꿈은 좌절되었지만, 전세계 에스페란토 이용자들의 교류가 계속되고 있다.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의 모임은 다채로운 문화 교류의 장이 된다. 사람들이 인공어에 대해 걱정하는 것과 달리 에스페란토는 사용자 특유의 정체성을 없애기를 원치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문화가 에스페란토로 표현되어지기를 바란다. 에스페란토를 상징하는 녹색 스타킹이나 녹색 드레스, 녹색 버클을 착용한 사람들이 잔디밭에 모여 춤추고 노래 부르는 모습을 사람들은 비웃거나 외면한다. 보편적인 공용어가 반드시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리라는 믿음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서로를 적대시하는 국가, 혹은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는 수없이 많다. 그러면 무엇이 이들,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을 이어주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소속감이었다.
키모와 장마르크는 내 귀에 익지 않은 또 다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에스페란토 고유의 노래였다. 턱슈염이 약간 희끗한 작고 여윈 사내인 노르만도가 다가오더니 내 앞쪽의 잔디밭에 무대를 등지고 나를 보며 앉았다. 그는 부드러운 에스페란토어로 사람들에게 다정하게 나를 소개하고 가사 중 내가 모르는 특별한 어구나 어휘가 있으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는 몸을 기울여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악센트가 가미된 에스페란토로 이 노래가 <Sola>라고 했다. 무대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노르만도는 그 노래가 청년 대회에서 자주 연주되는 송가 같은 노래라고 설명해 주었다. 가사 내용은 외로움을 느끼다가 에스페란토 대회에서 우애와 세계의식을 느껴 외로움을 극복하고 고국에 있는 자신의 작은 방으로 돌아온다는 어느 젊은이의 이야기였다. 그는 내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해주었다. "이 노래는 에스페란토 사용자에게는 의미가 깊어요. 대회에서 이 노래가 연주되면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지요." (156쪽)
<Sola>라는 에스페란토 고유의 노래와 그 노래에 얽힌 사연들에 공감이 간다. 언어가 단순한 소통의 도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고 고맙다. 얼마 전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길이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금발의 외국인 청년이 우리 '하루'(강아지)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헬로우, 퍼피! 오우, 퍼피! 퍼피! 퍼피!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몸짓으로 그 외국인은 하루의 몸 이곳저곳을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한 번 안아보겠다고 했다. 하루가 몸이 안 좋은 상태였고, 병원에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나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자 외국인은 금방 이해했고, 우리는 서로 인사를 주고받으며 가던 길을 갔다. 나는 영어를 능란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아니다. 기본적인 표현 정도를 응용하는 정도이다. 그렇더라도 그 이국의 청년과 나는 '강아지'라는 공통의 관심사, 사랑스러운 매개체를 통해 어려움 없이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개인이나 국가에게 고유의 언어는 매우 중요하지만, 때때로 언어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눈짓, 몸짓, 공간, 공감만으로 소통이 가능한 때도 있다는 것. 언어 자체도 중요하지만,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자세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글, 한글의 아름다움을 폄하하고 훼손시키는 요즘의 언어 사용 실태가 걱정스럽고 부끄러울 때가 많다. 다양한 언어들의 탄생과 소멸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나는 다시 한 번 나의 언어, 우리 언어의 귀중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아울러 나와 외계를 이어줄 가장 적절한 언어는 무엇일지 열심으로 궁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