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를 누를 때
야마다 유우스케 지음, 박현미 옮김 / 루비박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국가번영유지법'이라는 법률에 따라 일본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예방접종을 한다. 그런데 이때 1000명 중 1명에게는 죽음의 나노캡슐이 주입된다. 모든 국민은 '국가번영유지법'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죽음을 부르는 캡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캡슐의 효과가 나타나는 시기는 18세에서 24세까지이다. 이 나이가 지나기 전까지는 누구도 죽음에 대해 안심할 수 없게 된다. 바이러스처럼 일본 전역을 떠도는 이 위기감이 생명의 귀중함을 인식시켜 자살률과 범죄율이 낮아지는 효과를 낳는다고 국가는 주장한다. '생명의 귀중함'을 인식시키기 위해 생명을 희생시킨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 '이키가미(イキガミ)'를 보고 심한 분노를 느꼈던 적이 있다. 아무리 가상의 이야기라지만 말도 안 되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가 잊혀지기도 전에 나는 또 다시 충격과 분노에 휩싸이게 되었다.

  



 

    『스위치를 누를 때 』는 '자살억제프로젝트'라는 가상의 법률을 소재로 하고 있다. 자살억제프로젝트라고 하니 뭔지는 몰라도 참 바람직한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이키가미(イキガミ)'의 오류가 재현되고 있었다. 젊은 연령층의 자살자들이 날로 급증하자 일본 정부는 자살억제프로젝트를 실행한다. 정부가 무작위로 선별한 아이들은 다섯 살이 되면 심장수술을 받는다. 이때 심장에 부착한 특수 전자기기는 외부의 빨간 스위치와 연결되어 있다. 이 빨간 스위치는 일명 죽음의 스위치이다. 스위치를 누르면 곧장 심장이 멎게 된다. 국가로부터 영장이 발부되고 5 년이 지나면 아이들은 가족과 떨어져 각각 지정된 센터에 감금된다. 감금된 아이들에게 그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해준 뒤 빨간 스위치를 건넨다. 아이들은 제한된 장소 안에서 제한된 생활만을 하며 지내게 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권태와 절망감을 이기지 못해 스위치를 눌러 생을 마감하고 만다. 이 잔혹한 실험을 통해 아이들이 어떤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살을 선택하는지 심층 분석을 한다. 정부는 자살억제프로젝트라는 명분 아래 자살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실험 데이터 덕분에 젊은이들의 자살률은 낮아졌지만, 실험용 쥐가 되어 사회와 분리된 아이들은 스위치를 누르며 죽어간다.

 


   이런 쓸쓸한 곳에서 매일매일. 우린 나쁜 짓 같은 거 하지도 않았는데말이야. 앞으로도 쭉 똑같은 생활. 계속 살아간다는 것이 당연히 괴롭지. 뭐가 자살억제프로젝트야. 아무런 의미도 없잖아. 우리들은 국가의 장난감일 뿐이야.



                                                         - (책에서)




  

   그런데 이 혹독한 상황에서도 7 년간이나 살아남은 아이들이 있다. 다카미야 마사미, 신조 료타, 코구레 기미아키, 이케다 료. 일기장에 기록된 그들의 불안과 혼란, 두려움, 그리고 절망의 외침은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이 네 명의 아이들이 생을 저버리지 않았던 것은 '살아야 할 희망' 때문이었다. 침착하게, 혹은 무료하게 살아남아 있던 아이들을 자극할 요소는 별로 없어보였다. 감시원 요헤이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감시원 요헤이의 등장으로 아이들은 심장 깊숙한 곳에 숨겨진 자신들의 희망을 꺼내놓기 시작한다. 그러나 영원히 갇힌 신세가 되어버린 그들에게 그 희망은 '죽은 희망', 결국 절망에 다름 아니다. 국가의 비인간적인 법률에 반감을 품고 있던 요헤이는 아이들의 희망을 풀어줄 결심을 한다. 아이들과 탈출을 감행한 것이다. 그러나 심장에 스위치가 심어진 아이들은 국가의 끈질긴 추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새하얀 옷을 입은 한 소년이 태양빛을 받으면서 하늘을 향해 한가득 팔을 벌려 날고 있는 그림이었다. 산보다도 구름보다도 높이, 몇 마리의 새와 함께 자유롭게 날고 있다. "이것이. . . . . . <꿈>." 

 

                                                                 - (책에서)


 

   잠시 새장을 탈출한 어린 새들처럼 그들의 자유는 시한부(時限附)였다. 요헤이가 아니었다면 결코 삶에서 허용될 수 없었던 그 잠깐의 순간을 누리고 아이들은 스위치를 누르며 죽어간다. 삶이 커다란 감옥이었던 아이들은 코구레의 아버지가 보여준 그림처럼 "산보다도 구름보다도 높이" 하늘을 향해 날아간 것이다. 혹독한 상황을 7 년간이나 버텨내었던 아이들이 한 순간 스위치를 누르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것은 새장을 탈출해 잠깐 본 "태양빛"과 "하늘", 그리고 "자유롭게 날고 있는 새들"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아이들을 7 년간 살아있게 한 것이 '희망'이었다면, 아이들을 죽게 만든 것도 '희망'이 아니었나 말이다. 요헤이와 함께 도망다니며 아이들은 정말 자유를 누릴 수 있었을까. 아이들은 7 년간 품어왔던 자신들의 '희망'이 정말로 "꿈" 같은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아무리 가상의 이야기라고 해도 이건 너무하다 싶다. 어쩌다 이런 소설까지 씌인 것인지 가슴이 답답하다. 날로 치솟는 자살률 문제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현실 또한 비통하다. 야마다 유스케는 이 끔찍한 이야기를 통해 무슨 뜻을 전달하고 싶었을까. 어쩌면 이 소설은 경고등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의 스위치를 누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지켜보고만 있을 때는 지났다는 것. 그리고 그 스위치는 우리 손에도 쥐어져 있다는 것을 작가는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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