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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 후 - 10년간 1,300명의 죽음체험자를 연구한 최초의 死後生 보고서
제프리 롱 지음, 한상석 옮김 / 에이미팩토리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열 살 때 나는 처음 죽음을 목격했다. 암에 걸린 엄마는 빠른 속도로 말라갔고 마지막에 가서는 정말로 살아 있는 미라(mirra)처럼 뼈와 약간의 살가죽만 남았다.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지자 엄마는 가까운 곳에 요강을 두었다. 요강 위에 간신히 걸쳐진 엉덩이는 뼈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요강 위에서 바들바들 떨리던 각진 엉덩이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햇빛 쏟아지는 창가에 앉아 보름달 빵을 조금씩 뜯어먹는 엄마는 병든 새끼고양이 같았다. 어린 동생은 그 옆에서 엄마의 빵을 뺏어먹었다. 그런 동생이 나는 징그러웠다. 빵이 아니라 엄마의 마지막 남은 살점을 뜯어먹는 것처럼 느껴져서였다. 마지막 남은 살점을 뜯어먹힌 엄마는 오래 지나지 않아 죽었다. 엄마는 소리없이 혼자 죽었다. 다음 날 아빠가 엄마를 불렀을 때 대답이 없었다. 아빠는 다시 불렀고 여전히 대답이 없자 엄마를 살짝 흔들었다. 그 잠깐의 순간에 아빠는 온몸으로 죽음의 감각을 느낀 것처럼 고요했다. 그 순간이 지나고 아빠는 말했다. 죽었네. 나는 죽음을 그토록 예사롭게 취급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더욱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행동했다. 엄마가 죽었을 때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지 엄마가 죽었는데 눈물 한 방울 떨구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수군거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 엄마는 어떻게 되는 걸까 궁금했다. 엄마를 땅에 묻은 날 밤 군에서 휴가를 받고 나온 사촌오빠 손을 잡고 걷다 담과 담 사이를 휘돌아 날아오르는 불빛을 보았다. 나는 그 불빛을 가리키면서 저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사촌오빠는 도깨비불이라 했다. - 지금 생각하면 그 불빛은 반딧불이였는지도 모른다 - 죽은 영혼이 마지막으로 춤을 추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그러니까 너도 엄마한테 인사해. 나는 수줍게 웃어보이기만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엄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안녕.
엄마의 죽음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니 아빠와 작은아빠가 등을 보이고 앉아 계셨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작은 아빠가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할머니 돌아가셨다. 밤늦게까지 함께 주말의 명화를 보고 나에게 아리랑 춤을 가르쳐주고 가끔 장판 아래 숨겨둔 천 원짜리 지폐를 꺼내주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돌아가셨다고? 그때 나는 처음으로 '돌아가셨다'라는 말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말이 참 이상하게 들렸다. 돌아가다. 돌아간다는 말은 원래 있던 자리로 다시 간다는 뜻인데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할머니의 원래 있던 자리가 있다면 나의 원래 있던 자리도 있을까? 있다면 거긴 어딜까?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시멘트 담벼락을 다섯 손가락 끝으로 훑으면서 걸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 무렵 나는 어린이 여름 성격학교에 참석했고 거기서 천국에 대해 배웠다. 지옥과 천국 얘기는 무서웠다. 지옥불 얘기도 무서웠지만 사람이 죽지 않고 끝없이 행복을 누리며 산다는 천국이 더 무서웠다. 삶이 있는 곳에 그림자처럼 죽음이 있다는 것을 그때 나는 본능적으로 깨우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 삶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죽음이 있다. 그리고 나 또한 언젠가는 죽을 것임을 안다. 그 생각을 하면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두려울 때도 있다. 그런 공포와 맞닥뜨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내가 아직 덜 살았다고. 사실 나는 병적으로 죽음을 생각한다. 너무 힘들면 습관처럼 죽고 싶다고 읊조리기도 하지만 내 진심은 죽음이 무섭다. 삶에 대한 미련도 맞지만, 죽으면 내 자신이 어떻게 되는 건가 알 수 없어 겁이 나는 것이다. 사람들과 웃음고 눈물을 주고받던 '마음'을 가진 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죽음은 인정하지만 내 존재가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은 믿기 힘들다. 어쨌든 나는 죽음 관련 책이나 영화, TV프로그램 따위를 즐겨 본다. 뭐가 뭔지도 모른 채 공포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보다는 조금 고상하게 죽고 싶은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진실은 죽어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서론이 굉,장히 길었다. 이제는 책 얘기를 하겠다.『죽음 그 후』는 실제로 죽음을 체험한 사람들을 연구한 보고서이다. 실제로 죽음을 체험했다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장난하냐고 웃어넘길 수도 있겠다. 미안하지만 장난이 아니다. 실제로 죽음을 체험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간신히 살아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임사체험자'라고 한다. '임사'란 특정인이 육체적으로 위태로운 상태가 되어 여건이 나아지지 않아 죽음에 이르게 되는 순간을 가리킨다. 곧 의학적으로 죽음을 맞은 상태이다. 사후세계를 체험하고 살아 돌아온 이들을 전세계적으로 연구한 제프리 롱은 과학자이다. 대대로 과학을 신봉하는 집안에서 자라난 그의 죽음체험 연구 역시 과학자, 의사로서의 관심에서 출발했다. 1300명이 넘는 죽음 체험자들을 설문조사하면서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그들 얘기가 얼마나 일관성이 있는가였다. 그리고 그들 이야기에서 다른 체험자들과의 공통점을 찾는 일도 중요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죽음체험의 12단계를 도출해낸다. 이는 다음과 같다.
01단계 유체이탈, 즉 의식이 몸에서 분리된다.
02단계 모든 감각이 매우 예민하게 고조된다.
03단계 감정이나 느낌이 격렬하고 대체로 긍정적이다.
04단계 터널로 들어가거나 터널을 통과한다.
05단계 신비롭거나 눈부신 빛과 만난다.
06단계 신비로운 존재, 죽은 친척, 친구와 재회한다.
07단계 시공간의 개념이 달라진 느낌이 든다.
08단계 주마등처럼 삶을 회고한다.
09단계 비현실적인 영역을 접한다.
10단계 특별한 지식을 접하거나 알게 된다.
11단계 경계나 장벽을 만난다.
12단계 자의나 타의로, 몸으로 되돌아온다.
제프리 롱은 이 12단계를 하나하나 제시하면서 실제 인터뷰 내용과 자신의 연구를 토대로 한 해설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글을 진행한다.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환상이나 미신으로 여기거나 단순한 재미나 호기심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제프리 롱은 자신이 얼마나 과학적인 방식으로 사후세계에 대한 증거를 도출해냈는지 설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실제 죽음 체험을 한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그들은 하나 같이 그 순간에 대해 긍정적인 기억을 갖고 있었다. '완전하다'거나 '아름답고 평온하다', '마음 가득히 무한한 사랑을 느꼈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쩐지 나는 그동안 삶에서 받은 상처를 위로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의 기억은 굉장히 일관적이며 강렬했다. 다시 돌아가라는 목소리에 저항하고 애원하며 거기 머물게 해달라고 했다던 여자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살아있을 때에는 살려달라고 부르짖었을 그 여자의 마음을 붙들 만큼 죽음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것이라면 그곳은 우리가 '돌아갈'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나온 이야기들이 아주 낯설지만은 않았다. 앞서 얘기했듯이 나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죽음 이후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보고 들었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얼굴을 알고 지내던 사람의 임사체험도 알고 있다. 나 어릴 때 우리 동네 살던 아흔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그런데 출상을 하루 앞둔 날 못 박힌 관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놀란 사람들이 관을 뜯어내 보니 할머니께서 벌떡 일어나셨다. 빛을 따라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음성이 들려왔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제서야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미지의 목소리를 향해 단 하루의 시간을 달라고 애원했다. 자식들에게 제대로 인사를 하고 싶다 했다. 그렇게 할머니는 하루를 얻었고 다음 날 평온하게 눈을 감으셨다고 한다. 나는 이 충격적인 이야기를 아빠를 통해 들었다. 아빠는 실제로 그 자리에 있었던 목격자였다. 이상한 이야기였지만 나는 매우 흥미를 가지고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나의 엄마나 할머니, 그리고 죽음 이후 단 하루의 시간을 얻어낸 아흔의 노인이 어디로 간 것인지 나는 모른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리는 죽음을 추측해 볼 수는 있지만 직접 죽어보기 전까지 죽음은 끝끝내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죽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으니까 죽음을 아무리 연구해 본들 소용 없다고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죽음에 대해,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연구한 제프리 롱이 주목한 것은 죽음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삶의 변화였다. 그들은 죽음 체험으로 삶의 소중한 의미를 깨달았다고 한다. 우리는 아무 이유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무한한 사랑으로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온 마음으로 느꼈다고 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보다 소중하게 여기며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는 그들의 목소리는 감동적이다.『죽음 그 후』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삶의 가치와 의미를 돌아보게 만드는 놀라운 책이다. 나는 이 책이 단순한 호기심이나 흥밋거리로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후 세계를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한 번쯤 죽음이란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기를 바란다. 그것은 결국 나와 주변 삶 전체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