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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음, 조동섭 옮김 / 그책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짝을 잃은 아픔 - 상실감
나는 급히 끝날까 두려워.
모든 것에는 짝이 있다. 짚신도 짝이 있고 짐승도 짝이 있다. 쉰여덟의 남성 조지는 짝을 잃었다. 싱글맨이 되었다. 살아 있는 누구라도 상실의 아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조지의 아침은 죽음의 예감과 함께 깨어난다. 거울 속에 들어있는 '화석처럼 죽어 있는' 얼굴, 얼굴, 얼굴들.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화석화 되어버린 시간 속 잠들어 있던 그 얼굴은 이미 자기답지 않다. 떠나간 자가 누구든 그와 함께 나의 일부도 잃었음을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그때 우리는 미친 듯이 흔적을 찾아 헤맨다. 그가 있었다는 증거, 그리고 그와 함께 내가 있었다는 증거를. 조지의 짝이었던 짐은 도리스라는 여성과 동행 중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살아남은 도리스에게서 조지는 짐의 흔적을 찾아보지만, 마네킹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린 육체에는 죽음만이 깃들어 있다. 죽음 앞에서 조지는
"짐, 어때? 지금 이 여자를 보면 두 배로 역겹지 않을까? 네가 희롱질하고 열렬히 입을 맞추고 발기한 네 몸을 넣었던 이 여자의 몸이 그때에도 이미 이렇게 썩을 징후를 품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공포가 스멀스멀하지 않을까?"
발악한다.
2. 수많은 싱글맨들 - 소수집단
그렇다면 왜 소수집단 사람들이 착해져야 할까요? 착하게 변해도 돌아올 것은 증오밖에 없지 않나요?
나는 애완동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애완동물 키우는 사람들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강아지를 키우기 때문에 개고기는 절대 안 먹는다는 사람에게 그럼 돼지고기나 닭고기도 먹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분노를 터뜨렸던 적도 있다. 그렇다. '분노'였다. 나는 왜 성을 내었을까. 내가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그것이었다.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 때문에 분노하고 경계한다.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으며 너그럽지 못하다. 타인의 취향이 나에게 직접적인 해를 주는 것이 아님에도 공격한다. 두려워한다. 나와 다른 타인의 취향이 지극히 소수의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자, 이제 똑바로 봅시다. 소수집단은 우리와는 다르게 보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사람이며, 우리에게 없는 결함을 가진 사람일 겁니다. 우리는 소수집단이 보고 행동하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고, 소수집단의 결함을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소수집단을 좋아하지 않거나 미워한다고 인정하는 것이 가짜 자유주의 감상주의로 우리 감정을 속이는 것보다 낫습니다."
조지는 동성애자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우월감, 오해, 경멸 같은 것들을 발견하지만 묵인할 수밖에 없다. 대학 강의를 통해 세상에 토해내는 조지의 목소리는 그래서 더욱 절박하다.
3. 세계와의 불화 - 괴리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을까?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막 벗어난 미국은 그러나 여전히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다. 바로 이 시기가 <싱글맨>의 시대적 배경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만연해 있는 배경과 조지 개인의 현실에는 상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물웅덩이 이야기가 나온다. 밀물과 썰물이 지나가는 물웅덩이를 하나의 대우주, 소우주에 빗댄다. 각자 떨어져 있는 작은 물웅덩이들에 바닷물이 밀려들어오면 그 물웅덩이들에는 경계가 없어진다. 하나의 바다, 커다란 우주가 되는 것이다.
"요즘 세상은 정말 형편없어. 우리는 이 끔찍한 범주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혼란 속에 살고 있어. 말 그대로 모든 면에서 혼란이야.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을까? 미술관에 간 관광객처럼 카탈로그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면서 인생을 보내야 하나? 아니면 너무 늦기 전에 아무리 왜곡된 것이라도 신호를 주고받으려고 애써야 하나?"'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불화 - 시대적 불안과 소수집단에 대한 사람들의 차별 - 에 분노하고 절망하면서도 한편 희망을 찾으려는 안간힘. 물웅덩이의 비유와 조지의 목소리에서 나는 그것을 발견한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을까?
4. 싱글맨
이 소설은 재미가 없다. 짝 잃은 동성애자의 하루는 경직되어 있고, 불안하고, 불만에 가득 차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어나가는 것이 힘에 겨울 정도다. 은유가 아니라 실제로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200쪽을 약간 넘는 분량의 소설이 이렇게 길 수도 있구나, 놀라웠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지루함과 실망감에 빠져 있었다. 조지의 상태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문장은 마찬가지로 경직되어 있었다. 네가 읽든 말든 나는 하던 대로 계속하겠소. 아! 고집스러운 조지.
"조지는 이렇게 눈에 띄지 않는다는 느낌과 함께 몸에 엄습하는 피로를 느낀다. 활력이 빠르게 빠져나가지만, 조지는 만족한다. 이것이 휴식이다. 갑자기 조지는 몹시 늙는다. 주차장으로 가는 조지의 걸음걸이는 아까와 다르다. 탄력이 없고, 팔과 어깨의 움직임도 딱딱하다. 걸음도 느리다. 가끔 정말 발을 질질 끌며 걷기도 한다. 고개는 처진다. 입술은 늘어지고, 뺨의 근육도 힘이 없다. 멍하게 꿈꾸는 심심한 얼굴. 혼자서 기묘한 콧노래를 부른다. 벌집을 맴도는 벌 소리 같은 콧노래. 걸으면서 가끔 꽤 소리가 큰 방귀를 길게 뀐다."
책을 다 읽은 직후 당분간 나는 아무 생각도 않기로 했다. 그대로 <싱글맨>은 책상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다시 '싱글맨'을 생각했다. 자, 이제부터 싱글맨을 생각해보자 마음 먹은 것이 아니라 싱글맨이 내 마음을 두드렸다. 흔적을 남겨두었던 부분들을 되읽으면서 나는 감동했다. 싱글맨을 읽으면서 갑갑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까. "갑자기 몹시 늙"어버린 것 같다. 울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이런 기분이 나도 놀랍다. 20대의 독자를 향해 옮긴이는 10년 뒤에 다시 이 책을 읽어보라고 했다. 그러면 새로운 감동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10년이 지나서 다시 이 책을 펼친다면 나는 또 어떤 감상에 젖을 것인가. 그보다, 10년 뒤에 나는 살아 있을 것인가? 갑자기 피로가 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