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훈의 향연 - 끝나면 수평선을 향해 새로운 비행이 시작될 것이다
한창훈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몇 년 전 낯선 작가의 소설집을 읽었던 적이 있다. 무심코 펼쳤던 그 책에서 나는 예상치 못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전라도 여수 땅, 거기서도 더 들어간 작은 섬 거문도에서 태어났다는 작가의 입담에서 비릿하고 신선한 생명력이 출렁거리다 못해 거센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갓 잡아올린 싱싱한 물고기의 그것처럼 힘차게 펄떡이는 삶을 움켜쥔 듯하면 놓치고, 또 움켜쥔 듯하면 놓치면서 허기진 독서를 했었다. 다시 한 번 확인한 낯선 이름 석 자. 한 창 훈. 그였다. 지난했던 2009년이 끝나가는 이즈음에 그의 이름 석 자를 다시 만나게 되어 참으로 반가웠다. '한창훈의 향연', 그의 첫 산문집을 들고 마음이 설레었다.

 

 

    나에게 바다는 실제적 장소이기보다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관념이었다. 바다에서 먼 뭍에서 자랐기 때문일까. 모르겠다. 중학교 소풍 때 처음으로 바다를 본 이후 몇 번인가 심심찮게 바다엘 갔었다. 여기가 거긴가.  그 바다는 그러나 내 마음에 알 수 없는 향수를 심어주었던 거기가 아니었다. 갈 때마다 실망스러웠다. 내 마음속 '바다'는 배 타고 고기 잡고 헤엄치는 거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소개한 이들은 한창훈, 그를 가리켜 '바닷사나이'라 했다. 예사로운 그 단어를 두고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바닷사나이란 어떤 사나이를 두고 하는 말일까. 단지 남도 사내다운 면모를 지니고 있어서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일까. 그의 작품에 바다와 바닷사람이 주로 등장하기 때문일까. 공연한 생각의 꼬리를 물고 이 책을 읽었다. 역시 바다와 바닷사람이 등장했다. 한창훈이 알고 있는 바다와 바닷사람 얘기였다. 그보다 나는 그의 주변인물들 이야기에 마음이 갔다. 소설가 이문구와 시인 박영근 등 문학을  모르는 이라도 귓결에 그 이름 한 번쯤 들었을 법한 인물들에 얽힌 일화는 감동적이었다. 닭집에 약속 잡아놓고 횟집엘 갔는데 그만 닭집 주인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어서 기가 막혔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시인 박영근이 새벽 세 시에 자꾸 전화를 해대는 부분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굉장히 고독하게 살다 짧은 생을 마친 시인의 이야기인데도 웃음이 터졌다. 할 수만 있다면 책 속으로 들어가 그 전화 내가 받아주고 싶었다. 웃음을 이끌어낸 것은 '공감'이었다. 내가 찾던 '바다'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내가 찾던 '바다'는 바로 인간이 있는 곳. 거기가 뭍이든 물이든 사막이든 상관없다. 삶이 있고 죽음이 있는 곳. 거기 발 담그고 있는 누구든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곳. 내 마음에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던 바다는 바로 여기, 내가 살아 숨쉬고 있는 곳이었다. 어느 시인이 말했던가, 인간은 저마다 하나의 섬이라고. 그렇기에 더욱 바다여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알았다. 내 마음속 '바다'가 왜 그토록 아련한 그리움을 품고 있었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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