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과 풍경 펭귄클래식 40
페데리코 가르시아로르카 지음, 엄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시(詩)는 이 세상의 모든 것, 즉 추한 것, 아름다운 것, 그리고 심지어는 혐오스러운 것에서도 존재한다. 문제는 우리 영혼의 깊은 늪에 잠들어 있는 그것을 찾아서 깨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정신이 지닌 가장 놀라운 면은 마음속에 떠오르는 어떤 감정도 다양한 방법으로 ㅡ 저마다 다 다르게, 또 때로는 아주 모순된 방식으로 ㅡ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뜨거운 태양, 붉은 천조각을 든 투우사와 성난 황소, 관능적인 미녀들의 정열적인 춤사위. 피카소의 색채, 달리의 구부러진 수염, 안달루시아의 개, 페넬로페 크루즈의 매혹적인 옆얼굴. . . 스페인에 대한 인상 (象)들. 열정, 관능 생기. 어쩐지 스페인의 태양 아래 서면 뜨거운 피가 끓어오를 것만 같았다. 반짝거리고 팔딱거리는 생(生). 그것이 스페인에 대한 인상이었다.


     스페인의 천재 시인이었던 로르카. 그의 마음속에 새겨진 스페인에 대한 '인상과 풍경'은 어떠했을까. "온 세상이 아련히 잠들어 있"고, "정적이 흐르는 쓸쓸한 골목마다 옛 유령들이 흐느끼며 지나간다", "한밤중, 안개에 덮여 푸르스름한 호수처럼 변한 들판에서 개들이 짖어댄다".  황혼, 안개, 밤의 정적, 새벽하늘의 창백한 빛. 아련한 인상들. 생기 없고 무겁다. "밤새 울어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백양나무, 바람에 부드럽게 살랑거리는 검은 사이프러스 나무", "도시 끝자락" "소나무가 고개를 숙인 채 힘없이 서 있다". 흐릿하고 검푸른 빛, 축축하고 무거운 공기, 밤의 검은 눈에 생기를 주는 것은 시(詩), 음악이다. 로르카의 문장에는 리듬이 있다. 문학보다도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는 로르카의 감성이 고스란히 엿보인다. 폐허가 된 성터, 무성하게 자란 잡초.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로르카의 정원에는 음악이 있다. 로르카의 음악에 마음을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한 줄기 부드러운 빛", "보석처럼 화사하게 빛나는" "장밋빛 열정", "편안히 휴식을 취하는 들판", "밤하늘에 빛나는 별", "덜그럭거리는 달구지 소리"를 보고 들을 수 있다.


     대학 재학 시절, 은사와 함께 카스티야, 안달루시아, 갈리시아 등 스페인 일대를 여행한 로르카의 여행의 기록 ㅡ  『인상과 풍경』 . 시적 감성, 리듬감 있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스페인 곳곳에 대한 인상과 풍경은 로르카의 내밀한 세계와 잇닿아 있다. 거기에서 나는 로르카의 스페인, 로르카의 세상과 만날 수 있었다. 이글거리는 뜨거운 태양, 붉은색 천에 휘둘리는 황소, 관능적인 여인들. 스페인에 대한 보편적 인상과 풍경은 어쩌면 스페인의 다채로운 풍경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을 방해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영혼의 깊은 늪에 잠들어 있는 그것 - 시(詩)를 찾아서 깨울 줄" 알았던 스페인의 시인 로르카. 그의 '인상과 풍경' 속에서 나는 시(詩)를, 음악을 만났다. 이 세상의 모든 것, 추한 것, 아름다운 것, 심지어는 혐오스러운 것에서도 존재하는 그것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