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동 테리에
엔드레 룬드 에릭센 지음, 손화수 옮김 / 예담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나는 어둠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를 감싸고 있는 것은 어둠뿐이었으니까." (p.189)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를 감싸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맨 처음 떠오르는 이름, '가족'이다. 엄마의 자궁을 뚫고 나와 맨 처음으로 마주하는 세상. 그 세상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를 감싼다. 때때로 그것은 빛이 되기도, 어둠이 되기도 한다. 사춘기 소년 짐에게 '가족'은 '짐'이다. 불안감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엄마가 가족의 전부이다. "매일 여러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세상으로부터 짐을 위무해주는 것, 보호막이 되어주는 것은 잊혀진 낡은 벙커, 잠수함 기지이다. 그곳에서 짐은 레고 블록을 쌓으며 '짐'을 하나씩 내려놓는다. 쿠르트와 로게르, 두 친구가 있지만 그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한다. 어느 날 '테리에'라는 소년이 전학을 온다. 덩치가 크고 뚱뚱한 테리에는 싸움개를 연상시키는 악동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싸움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저돌적인 악동은 테리에의 옆자리에 앉게 되고, 악동 테리에의 무게에 짐의 조용한 일상이 기우뚱거리기 시작한다. 

     악동 테리에는 짐의 옆자리에 앉기 시작하면서부터 짐과 친구가 되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짐은 어림도 없다. 왜냐하면 테리에는 악동이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에서 금지된 싸움개까지 가지고 있다 하니 대단한 위험인물이 아닐 수 없다. 그에 아랑곳없이 테리에는 짐에게 접근한다. 급기야는 짐의, 짐만의 잠수함 기지까지 침범한다. 잠수함 기지는 짐의 유일한 안식처이다. 세상의 무게를 하나씩 내려놓는 곳이다. 거기, 테리에, 그것도 악동 테리에가 들어온 것. 큰일이었다. 짐은 잠수함 기지를 찾기 위해 사투(라고 하여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를 벌인다. 이 책 『악동 테리에』는 '짐의 잠수함 찾기'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벙커,  잠수함 기지는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잊혀진 잠수함 기지에서 짐은 세상과의 조용한 전쟁을 잊는다. 불안하고 우울한 엄마의 무거운 한숨, 그런 엄마로 인해 빚어지는 친구들과의 괴리, 외로움을 잊는다. 잠수함은 짐을 감싸주는 동시에 숨겨준다. 자신의 내부로 가라앉는 것. 그 안에서 헤엄치는 것. 잠수함의 상징인가 한다. 한편, 잠수함은 외부와의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잠수함은 테리에와의 우정을 맺어준다. 이것은 세상과의 소통, 화해의 시점으로 읽힌다. 그래서 마냥 어둡지 않다. 

     편모, 편부 가정에서 자라난다고 하여 모두 다 불행하고 어둡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소설 속 짐과 테리에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는 병적인 엄마와 알코올중독자 아빠와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 짐과 테리에에게 '집'은 '짐'이다. 오래 전 보았던 두 편의 영화가 떠오른다. 라쎄 할스트롬 감독의 '길버트 그레이프'와 '개 같은 내 인생'이라는 영화다. 두 편 모두 때때로 '집', '가정'은 우리에게 '짐'이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족'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가족'이다. 언제나 우리를 감싸고 있다. 나에게도 가족은 짐스러울 때가 많았다. 특히 사춘기 시절에는 그 존재감이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에게도 벙커, 잠수함 기지 하나쯤은 있었을 것이다. 그 잠수함 기지를 거쳐 나는 여기까지 흘러왔다. 짐과 테리에가 탄 잠수함 기지는 과연 어디로 흘러갈까. 그들의 앞날이 궁금하다. "어쨌거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칠흑 같은 어둠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나는 이제 나의 잊혀진 잠수함 기지를 둘러본다. "회색빛의 밝은 어둠"이 나를 감싼다. 저기 멀리서 또 다른 테리에(들)이 나의 잠수함 기지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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