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
이황 지음, 이장우.전일주 옮김 / 연암서가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군사부일체 .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한 몸과 같다는 말이다. 우리 가장 가까이 계신 스승, 바로 아버지이다. 그런데 오늘날 아버지들의 권위가 그야말로 바닥을 치는 것이 현실. 아버지의 자리는 점점 흐릿해져 간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어떤 사람인가'를 묻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술 취해 늦게 들어오는 사람', '거짓말하고 숨어서 담배 피우는 사람', '돈 버는 사람' ...... 이런 대답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들의 대답을 들은 프로그램 진행자가 자신의 일화 하나를 이야기했다. 바빠서 아이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지내다 어느 날 집에 들어가 자고 있는데, 아직 말을 배우고 있던 아이가 제 엄마에게 하는 말, "엄마, 얜 뭐야?"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기뻤다고 한다. 우리 아이가 벌써 이런 말도 배웠네. 아버지는 아이가 말을 깨쳤다는 사실이 더 기뻤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인가 하였다. 아버지의 마음이야 어떠하든 아이들이 느끼고 바라보는 아버지는 '술 취해 늦게 들어오는 사람', '돈 버는 사람'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아버지들의 현실이다. 이제 아버지들은 가정의 중심에 있지 않다. 배경으로 존재한다.


   조선 시대 유학자 퇴계 이황. 이황에게는 준과 채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 채는 장가를 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식도 없이 죽었다. 이 책, 이황의 편지글은 몇 편을 빼고는 모두 장남 준에게 쓴 것들이다. '독서에 뜻을 세우라'는 당부로 시작되는 이 편지 묶음에서 그는 학문뿐 아니라 생활 전반, 살아가는 일 전반에 대해 독려와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조선 시대 아버지라 하여 권위만 내세우진 않을까 예단하면 안 된다. 자신의 병든 몸, 벼슬살이의 고초, 자잘한 집안일까지 아들에게 조목조목 전하는 이황에게서 인간적이고 온화한 아버지상을 볼 수 있다.


   굉장히 상세하게 쓰인 편지글이다. 수많은 이름들이 나오는데, 친가와 처가를 포함한 친척 이름과 집에서 부리던 남녀 종들의 이름이 자주 언급된다. 이 점을 주목할 때, 그가 얼마나 집안일에 세심한 사람이었는가 알 수 있다. 그 내용을 보더라도 농사일에서부터 겨울을 대비할 소금과 미역을 마련하는 일까지 낱낱이 아들에게 전하고 있다.  과거시험, 벼슬살이, 문병, 문상, 목화 따는 일, 집을 증축하는 일 등 세상살이 전반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유익하다. 아들이 공부를 게을리할 때에는 엄격하게 꾸짖기도 하지만, 주로 비춰지는 모습은 온화하고 애정 많은 아버지이다. 아들이 병이 났을 때, 며느리가 병이 났을 때 고기와 약을 보내고, 손자 글씨 공부를 위해 붓을 사 보내는 등 이황은 자상한 아버지, 할아버지의 면모를 보인다. 부모 마음, 아버지의 마음이란 예나 지금이나 다름 없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아버지와 자식 간의 사이는 어떤가. 그 옛날 아버지의 권위, 자식의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은 어디로 갔나. 아버지와 자식 간의 거리가 너무 멀다. 가족 간에 대화가 없다. 아버지는 회사일로 바쁘고, 아이들은 학원 다니느라 바쁘다. 서로 얼굴 보기도 힘들다. 가족의 의미, 부모 자식 간의 애정을 느낄 수 없다.


   가정은 사회의 최소단위, 가장 기본적인 집단이다. 우리의 뿌리이다. 그래서 예부터 가정교육을 중요시했다. 부모는 우리가 태어나 처음으로 만나는 고마운 스승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가정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앞서 말했듯 부모 자식 간의 거리가 너무 멀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부모에 대한 존경심이 없고, 부모는 아이의 인성교육보다는 학업에 열을 올린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사회에 나오면 어떻게 되겠는가. 요즘 나라 안팎이 어지럽다. 나라가 왜 이 모양이냐고 원성만 터뜨릴 것이 아니다. 우리의 가정교육,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내가, 우리집에서 제대로 사랑을 주고 인성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 같다. 그것이 곧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이 될 것이다. 이황의 편지 묶음은 우리에게 가정교육(무엇보다 인성교육), 참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잠들어 있는 아빠를 본 아이가, "엄마, 얜 뭐야?" 했다는 일화가 자꾸 생각난다. 웃을 일이 아니다. 아버지의 권위, 부모의 권위를 내세우자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자리, 부모의 자리를 찾자는 것이다. 참스승이 될 여건을 갖추자는 것이다. 그리고 자식은 부모의 위치를 존중해 주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대화를 많이 나누어야 할 것 같다. 얼굴 맞대고 얘기하기 어렵다면 편지를 써 보자. 그 전에 이 책을 펼쳐보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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