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 세계적인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가장 속물적인 돈 이야기
석영중 지음 / 예담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지상의 빵.

돈. 너무 많아도 탈, 없어도 탈이다. 살아가는 데 있어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도 없다. 경제적 부유함이 반드시 행복의 척도는 아니지만, 행복과 돈과의 관계를 아주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 돈은 자유와 시간, 권력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19세기 러시아의 대문호, 『죄와 벌』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라스콜리니코프와 소냐, 마카르와 바르바라 등 가난하고 소외 받은 인물들을 통해 선과 악, 타락과 구원 같은 심오한 주제를 다룬 작품들을 되새겨 본다. 창백한 얼굴, 고뇌에 차 있는 듯한 작가의 모습이 중첩된다. 러시아의 미래, 인류의 구원 따위를 고민하고 있을 것 같은 심각한 얼굴이다. 그런데 그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지상의 빵, 돈이었다고 한다. 다시 그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당신도 지상의 빵에 굶주렸군요.

 

생존을 위한 글쓰기


근검절약하는 아버지와 정반대로 도스토예프스키의 허영심과 낭비벽은 고질병 수준이었다. 아버지의 유산은 말할 것도 없고, 돈이 생기면 순식간에 다 써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빚까지 졌다. 정신분석학자들은 그의 낭비벽을 일종의 강박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사랑하는 모친을 여읜 상실감, 독재적인 아버지의 지배욕에서 비롯된 강박증이 합쳐져 일종의 보상심리가 생겼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의 낭비벽은 병적이었다.

그의 궁핍은 어느 정도 무절제한 베풂에 기인한다. 그가 남에게 너무 베풀어서 가난해진 건지, 아니면 가난했기 때문에 남에게 자꾸 주려고 했던 건지, 그것은 알 수가 없다. (p.45) 

쓸데없는 겉치레와 자존심, 낭비하는 습관 때문에 그는 언제나 ‘가난한 사람’이었다. 이에 더해 도덕적으로 고결한 성품 때문에 형의 유가족과 의붓아들, 알코올 중독자인 동생까지 떠맡았으니 그의 생활이 얼마나 곤궁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는 언제나 돈이 필요했다.


사실 도스토예프스키야말로 그럴싸한 소설을 한 권 써서 집 한 채를 장만하는 꿈에 사로잡혀 있었다. 두 권이면 집이 두 채, 세 권이면 집이 세 채...... 이런 식으로 계산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원고지 여백에 써놓은 자그마한 숫자들은 모두 돈의 액수였다고 한다. (p.61)


그에게 글쓰기, 문학은 돈벌이 수단이었다.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작품에 대한 선불을 받고 글을 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언제나 시간에 쫓겨야 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대개 거칠다. 그 스스로도 시간에 쫓겨 글을 쓰는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했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은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의 잘 다듬어진 글보다 호소력을 가진다. 무엇 때문일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인물들은 악인과 선인의 뚜렷한 구별이 없다. 가난하고 소외 받은 자들이 반드시 착하고 아름답게 그려진 것은 아니며, 추악한 인물에게서도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가장 인간적인 등장인물들이 작품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작품에 빛을 더해주는 것은 작가의 사상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상은 작가 개인의 인생 경험에서 빚어진 것. 앞서 말했듯 도스토예프스키는 평생 돈에 쪼들리며 살아야 했다. 그야말로 돈, 돈이 원수였던 인생이었다. 돈과 바꾸기 위해 써댄 그의 작품들. 그래서 그 안에는 반드시 돈 이야기가 나온다. 돈에 울고 웃고, 돈 때문에 만나고 헤어지고, 돈 때문에 죽이고 죽는 사람들. 돈으로 얽히고설킨 사람들이 나온다.


돈, 여자, 살인. 도스토예프스키가 ‘갱생(구원)’을 위해 이용한 삼중 모티브이다. 그 얼마나 통속적인 소재인가. 그 통속성은 독자의 심리를 꿰뚫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기작가였다. 언제나 돈이 절실히 필요했던 그는 출판사의 불리한 조건도 받아들여야 했지만 벌어들이는 수입이 결코 적은 편은 아니었다. “나는 프롤레타리아 문학가입니다. 그래서 내 작품을 원하는 사람은 먼저 나를 먹여 살려야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편지 중 일부다. 문학으로 구걸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써댔는데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것은 그가 프롤레타리아여서가 아니라 버는 족족 다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위대한 작가의 이면에 가장 인간적인(불완전성) 면모가 있었다는 것. 그럼에도 가장 통속적인 소재로 심오한 사상을 이끌어 낸 도스토예프스키의 천재성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

[가난한 사람들/미성년/도박꾼/죄와 벌/백치/악령/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가르치는 석영중 교수가 읽어주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은 참 재미있다. 천재적 작가의 위대한 작품, 심오한 사상이 담긴 고전. 지레 압박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우선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삶과 작품을 토대로 한 돈 이야기, 나아가 돈과 인간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돈 = 자유  /  돈 vs. 자유

러시아 속담에 “돈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냄새가 나는 것은 돈이 아니라 그것을 거머쥔 인간의 손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돈으로 자유를 얻기도 하지만 그것에 예속되기도 한다는 사실. 필요와 욕구는 다르다는 것. 잊지 말아야겠다. 그런데 자꾸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속 ‘불타지 않은 돈’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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