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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 해냄 / 2008년 2월
평점 :
주제 씨는 오십 대 초반의 독신. 등기소에서 사무보조원으로 일한다.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에서 유일하게 고유한 이름을 가진 주제 씨는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존재감이 없는 인물이다. 존재감 없는 주제 씨는 신문이나 잡지에서 유명인의 신상 정보를 수집하는 일에 몰두한다. 그러다 우연히 한 여자의 기록부를 손에 넣게 되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여자의 삶을 상상하고 추적한다. 우리가 주제 씨에 대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여기까지다. 주제 씨가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하필 등기소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지, 왜 다 늙도록 홀로 초라하고 쓸쓸한 생활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주제 씨가 주제 씨라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소설 속 인물 주제 씨와 작가의 이름이 같다. 곰곰 생각해 본다. 주제 씨(작가)와 주제 씨(등장인물)의 암시적 관계에 대해서.
오로지 문자에 의존해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자의 삶을 상상하고 추적하는 주제 씨의 모습은 상상을 잉크 삼아 펜 끝을 놀리는 작가의 창조력을 연상케 한다. 급기야 여자의 죽음을 삶으로 뒤바꿔 놓을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삶이란 불가항력의 존재에 의해 쓰이는 이야기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그가 쓰는 인생이란 작품의 등장인물이고 그의 기분에 따라 지워지거나 새로 태어날 수 있다는. 삶과 죽음은 그 위대한 놀이로써 스러지고 피어나는 것. 이 위대한 놀이를 통해 주제 씨(등장인물)는 '삶의 무상성'에 직면하는데, 여자의 죽음을 삶으로 뒤바꾸는 문서위조(작가의 창조력)를 통해 그 의미를 되찾는다(혹은 되찾으려는 몸부림). 주제 씨(등장인물)의 손끝에서 한 여자의 삶이 재창조되듯, 주제 씨(작가 - 주제 사라마구)의 손끝에서 주제 씨(작가들)의 주제主題가 재창조되고 있는 것을 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이름(기록)을 보관하는 등기소. 하지만 주제 씨는 그곳에서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이름’이 있지만, 그 이름들은 존재의 본질을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 수많은 사람들의 탄생과 죽음의 과정을 숫자와 문자로 기록해 놓은 문서들은 오히려 익명성을 자아낸다. 결국 등기소는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인 셈.
주제 씨(작가, 등장인물)는 왜 그따위 무의미해 ‘보이는’ 일에 매달렸던 건가. 의미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보이는 이면의 ‘그 무엇’을 찾고 싶어서.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찾기 위해서. 익명성에 파묻힌 한 여자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 그것은 결국 자신의 본질 찾기였던 것. 주제 씨(작가)는 주제 씨(등장인물)의 존재론적 방황을 통해 자신의 본질 탐구를 시도하는 한편 우리의 이름을 묻고 있다. 당신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은 무엇인가. 죽어도 죽지 않는 그 이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