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안도현 엮음, 김기찬 사진 / 이가서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새떼를 베끼다

           위선환


   새떼가 오가는 철이라고 쓴다 새떼 하나는 날아오고 새떼
하나는 날아간다고, 거기가 공중이다, 라고 쓴다

   두 새떼가 마주 보고 날아서, 곧장 맞부닥뜨려서, 부리를,
이마를, 가슴뼈를, 죽지를 부딪친다고 쓴다

   맞부딪친 새들끼리 관통해서, 새가 새에게 뚫린다고 쓴다


   새떼는 새떼끼리 관통한다고 쓴다 이미 뚫고 나갔다고, 날
아가는 새떼끼리는 서로 돌아본다고 쓴다

   새도 새떼도 고스란하다고, 구멍 난 새 한 마리 없고, 살점
하나, 잔뼈 한 조각, 날개깃 한 개, 떨어지지 않았다고 쓴다

   공중에서는 새의 몸이 빈다고, 새떼도 큰 몸이 빈다고, 빈
몸들끼리 뚫렸다고, 그러므로 공중空中이다, 라고 쓴다
 

 


  새떼가 오가는 철이라고 쓴다 새떼 하나는 날아오고 새떼
하나는 날아간다고, 거기가 공중이다, 라고 쓴다

빗소리 들린다. 비는 계속하여 내리고 있었는데, 이제야 빗소리 들린다. 내 마음 닫혀 있으면, 갇혀 있으면 그 무엇에 가 닿지도, 그 무엇이 와 닿지도 못한다는 것을 새삼 생각한다. 시를 적어본 적 없어 시인들이 어떻게 시를 써내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시를 읽은 적은 있으니, 제대로 읽었는지 어떤지는 모르나, 시를 대하는 마음 역시 이와 같지 않은가 한다. 시는 ‘새떼’ 같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새떼 오가는 그곳은 공중이어서 혹은 공중과도 같은 곳이어서......

  두 새떼가 마주 보고 날아서, 곧장 맞부닥뜨려서, 부리를,
이마를, 가슴뼈를, 죽지를 부딪친다고 쓴다

조금 더 어릴 때에는 시를 좋아하지 않았다. 새떼를 들일 공중 같은 것, 그런 것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그러한 공중을 발견하지 못해서였을까. 아직도 시를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서름서름한 입장이다. 그렇지만 시를 찾아 읽기는 한다. 새떼들과 마주 날아서, 곧장 맞부닥뜨려서, 부리를, 이마를, 가슴뼈를, 죽지를 부딪치는 일. 그것은 사는 일과도 잇닿아 있음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맞부딪친 새들끼리 관통해서, 새가 새에게 뚫린다고 쓴다

시, 새떼들과 맞부딪치면서 내 안에 있는 갇힌 새들을 풀어준다, 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 그러면 고쳐 쓰겠다. 짤막한 시 몇 줄에서 나는 공중을 발견하노라고.

  새떼는 새떼끼리 관통한다고 쓴다 이미 뚫고 나갔다고, 날
아가는 새떼끼리는 서로 돌아다본다고 쓴다

안도현 시인이 날려 보내준 새떼들 - 새떼끼리 관통한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자”의 “발그라니 언 손에 얹혀” 인생을 탕진하는 사내, “바퀴 달린 널빤지 위에 뽕짝이 흘러나오는 녹음기와 집게발만 남은 몸을 얹은” 사내, “이차선 도로의 양끝을 팽팽하게 잡고 걷는” 장에 갔다 오는, 보퉁이를 든 부부, “주름치마 걷어올리고 양은 찜통에 오줌 누시는” 어머니, “조각난 거울에 얼굴을 서로 들이밀며” “클클, 연지를 새악시처럼 바르고 있는 할마시”들. “백여시처럼 클클 웃으며” “엉덩이를 까고 앉아 문밖에서 도란거리는 소리 듣는” “바람난 어여쁜, 엄마가 보고 싶은” 나.

  새도 새떼도 고스란하다고, 구멍 난 새 한 마리 없고, 살점
하나, 잔뼈 한 조각, 날개깃 한 개, 떨어지지 않았다고 쓴다

새떼들의 부딪침을 바라보면서, 나도 거기 부딪치면서 행간의 여백, 그 공중을 날다 보면 모퉁이에서 빛바랜 흑백 사진들과도 마주친다. 김기찬 씨의 사진들이다. 복덕방 간판 앞에 나앉은 늙은 여자처럼 “얘들아, 이게 시냐, 막걸리냐!” 늘어지게 하품 한번 하고 싶어질 때에 가만히 바라보면 푸드덕 날갯짓 소리 들린다.

 

  공중에서는 새의 몸이 빈다고, 새떼도 큰 몸이 빈다고, 빈
몸들끼리 뚫렸다고, 그러므로 공중空中이다, 라고 쓴다

안도현 시인의 해설은 읽어도, 아니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새도, 새떼도 빈 몸이므로 굳이 그것을 채우려 하지 않아도 좋겠다는 말. 위선환 시인의 「새떼를 베끼다」 - 시를 대하는, 혹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공중空中을 보여주고 있는 시라 생각되어 인용해 보았다. 이제 다시 공중空中이다. 새도 새떼도 고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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