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바리의 남자 오셀로의 여자 - 소설에서 찾은 연애, 질투, 간통의 생물학
데이비드 바래시.나넬 바래시 지음, 박종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성적 질투에 눈멀어 데스데모나를 죽인 오셀로, 남편 이외의 남자와 정을 통하는 마담 보바리를 보며 사람들은 경악한다.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진화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대답하자면, ‘인간이기에 그럴 수 있다’. 이들(오셀로와 마담 보바리)의 인간적 나약함과 부도덕을 비난하는 우리 또한 인간이며, 우리 안에도 질투와 간통의 매커니즘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오셀로와 마담 보바리는 결국 우리 자신의 반영인 것.


인간에 의해, 인간에 관해, 인간을 위해 존재해 온 문학은 인간 본성의 결정체이다. “생명의 기록”인 것이다. 사회적으로 학습된 도덕관념과 이성적 행동양식은 인간을 동물(짐승)과 차별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엄연한 생명체이며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적 역사를 통해 선별된 생물학적 존재임을 부인할 수 없다.


나의 정체는 가족의 얼굴.
살은 썩지만 나는 계속 산다.
지난날에서 앞날에 이르기까지
특징과 흔적을 투영하고
망각을 넘어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뛴다.

생존의 시한을 경멸하는
목소리와 눈과 얼굴의 선,
연년세세 물려받는 생김새,
그것이 바로 나.
죽음의 지상명령에 개의치 않는
인간이 가진 영원한 구석이다.


토마스 하디의 「유전」이라는 시는 ‘유전자의 영속성’을 예견하고 있다. 인간은 유전자를 통해 시간의 유한성에 대항해 왔다. 유전자를 통해 인간은 자기 자신을 진화, 보전한다. 리처드 도킨스는『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은 유전자가 스스로의 이기적 이익을 위해 만들어 낸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인간을 움직이는 유전자의 힘은 그만큼 강력하다는 것이다. 생명을 지속하려는 욕망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혹은 수컷과 암컷)은 유전적으로는 물론이고 번식의 전략 전술에 있어서도 무척이나 다르지만, ‘유전자의 영속성’이라는 욕망 안에서 움직이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유전자의 영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면 오셀로의 성적 질투와 마담 보바리의 간통, 신데렐라를 구박한 계모, 허클베리 핀의 반항, 삼총사의 우정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다.


오셀로의 치명적인 성적 질투는 수컷의 번식욕에서, 마담 보바리의 간통은 보다 우월한 유전자를 찾으려는 진화적 성공 욕망에서 야기된 결과이다. 계모가 신데렐라를 구박한 것은 신데렐라를 양육함으로 전수되는 유전자는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974년, 진화 이론가 로버트 트리버스가 발표한 논문에서 우리는 허클베리 핀과 아버지의 불화를 이해할 수 있다. 부모에게 있던 유전자가 자녀에게도 이어질 확률이 단지 50퍼센트에 불과하다는 것이 진화 이론가 로버트 트리버스의 통찰이었다. 부모의 유전자 가운데 50퍼센트는 결코 부모와 자식 간에 공유되지 않기 때문에 불화가 빚어질 수 있다는 것. 한편 삼총사의 우정에서 우리는 호혜주의, 즉 “누군가가 내 등을 긁어주면 나도 그 사람 등을 긁어주는” 이기적인 책략의 위장된 모습을 볼 수 있다. 호혜주의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를 진화, 보전하는 데 이득을 취한다는 진화생물학적 입장은 가슴을 선득하게 한다.


아홉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 『보바리의 남자 오셀로의 여자』는 오셀로와 마담 보바리, 신데렐라와 허클베리 핀 이하 수많은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진화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다. 수많은 작품 소개와 인용문들 때문에 다소 난삽한 감이 없지 않지만, 생물학적 지식과 문학적 재미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앞서 밝힌 것처럼 책의 큰 줄기는 ‘유전자의 영속성’이다. 태초에 유전자가 있었다. 그것들은 줄곧 이어지고 있으며 영속될 것이다. 여기에 인간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 있다. 그리고 수많은 문학 작품들은 그 힘을 통찰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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