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피면 - 10대의 선택에 관한 여덟 편의 이야기 창비청소년문학 4
최인석 외 지음, 원종찬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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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청년과 소년, 그 언저리를 표류하는 존재. 청년과 소년 사이, 누구나 그 터널을 홀로 지나야만 하고, 지나왔다. 어떤 이에게 그 터널은‘삼백오십팔’년쯤은 걸리는 듯 길게 느껴질 수도 있고,‘구약의 신의 무시무시한 분노와 징계 아래’놓여있는 듯 무섭고 아플 수도 있다. 한편 어떤 이에게 그 터널은‘사막여우 한 마리가 모래언덕을 뛰어오르는’일순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터널의 풍경은 각기 다르지만, 그 터널을 지나는 존재, 청소년은 그 존재 고유의 불안정한 성격 때문에 불안하고 쓸쓸하고 혼란에 차 있다. 이러한 흐릿한 존재감 때문인지 청소년들이 읽을 만한 문학작품이란 것도 뚜렷하게 존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누구보다도 이들에게는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빛, 거울이 필요한데도 말이다. 이러한 현실을 보완하기 위해 창작과비평(이하 창비)에서‘창비청소년문학’시리즈를 선보인다. 그 작품집 중 하나가『라일락 피면』이다.

고민은 어른만 하냐? 까놓고 말해서 우리 때가 가장 고민 많을 때 아니냐?

80년 5월, 광주를 피로 물들인 광주항쟁. 공선옥의 「라일락 피면」은 그 참혹한 시절을 만나 꽃이 지듯 스러진 푸른 존재들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이다. 언제나 집안에 분란만 일으키는 말썽쟁이 큰형과, 시험을 앞두고 데모하러 다니는 친구 우식, 석진의 마음에 봄바람을 일렁이게 하는 문간방 소녀 윤희. 광주 거리가 초토화되고 무고한 사람들이 이유를 모르고 죽어가던 그때, 석진은 다락의 어둠 속에 은신하지만, 큰형과 우식과 윤희는 피바람 몰아치는 거리로 나가 푸른 목숨을 내던진다. 그들의 죽음 앞에서 석진은 자신이 있어야 곳은 집도 아니고 그 어디도 아닌 바로 눈앞의 현실, 피의 거리라는 것을 절감하고 그 속으로 뛰어든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은 영화‘몽상가들’을 떠올리게 하였다. 

영희는 도대체 무슨 놈의 혈액형이냐고? 아직도 그걸 묻고 싶니? 

방미진의 「영희가 O형을 선택한 이유」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혈액형 이야기이다.‘B형 남자친구’라는 영화가 만들어질 정도로 우리나라는 혈액형별 성격유형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다. 혈액형 하나로 사람을 구분 짓는다는 것은 얼마나 그릇된 일인가.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재미 삼아 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방미진이 그린 일군의 중학생들은 장난이 아니다. 영희의 혈액형이 O형이 아닐 것이라는 근거 없는 전제하에, 그야말로 혈액형에 관한 수다를 떨고 있다. 그리고 이 수다는 잡담에 지나지 않는다.

내 모든 색깔의 원형은, 이상은 그날 그 하얀 시멘트 길과 그 위의 흰 햇빛이야.

“그때 말해야 했을까?”로 시작되는 성석제의「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은 어린시절 사생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현재 유명화가의 자리까지 오른 백선규와, 그 대상수상작의 진짜 주인인 또 다른 화자의 진술이 교차 시점을 통해 이어진다. 이미 사생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적이 있는 백선규는 자만 섞인 기쁨의 눈물을 흘리지만, 강당에 전시된 대상수상작을 보는 순간 그 그림이 자신의 그림이 아님을 알게 된다. 백선규와 마찬가지로 사생대회에 나간 자줏빛 원피스의 소녀가 실수로 백선규의 번호를 적어 넣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실수로 얻어진 행운, 그 우연한 상황 속에서 백선규는 침묵을 선택하고, 최고의 화가라는 절찬 속에서도 그의 죄의식과 열등감은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닌다. 그리고 그 죄의식과 열등감이 그를 최고의 화가로 만들었다는 고백 속에서,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우연의 의미와 그 결과에 대해 곱씹어볼 수 있다. 깊이 있는 작품이다.

어쩌면 마지막에 마지막밖에 없는 마지막 날들로, 가자. 

오수연의「너와 함께」에서‘너’는 분열된 또 하나의‘나’이다. 엄마와의 불화로 가출한 소년의‘갈등상태’ 내지는‘자기성찰’의 묘사가 독특하게 전개되어 있는 작품으로, 불안과 혼돈에 사로잡힌‘집 밖의 소년’의 눈에 비친 세상은 기묘하다. 가히 환상적이다. 이 환상은 파랗고 빨간 불빛으로 깜박거리는 신호등처럼 불안하다. 추운 길바닥에 나와 있는 연약한 토끼들,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한 발짝 거리에 검은 밀물이 쑥쑥 올라오는 방파제, 서로의 발을 잡고 원이 되어 굴렁쇠처럼 굴러가는 아주머니들, 숨 막히도록 뒤엉킨 막차 안의 사람들, 공사 중인 지하도. 소설 후반부까지 함께하던‘너’는“녀석은 내게로, 나는 녀석에게로 스르르 미끄러졌다. 우리는 두 손을 맞잡았다. 녀석은 내게로 들어오고 나는 녀석에게로 들어갔다. 우리는 딱 겹쳐졌다.”라는 문장을 끝으로 사라지고,‘아파트 단지마저 지나 별도 없는 캄캄한 하늘로 이어진’길 위에 소년은 홀로 남는다. 아마도 소년은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혼자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 그럼 조금은 쉽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내가 원한 건 쉬운 삶이 아니었어. 당신들과 함께하는 삶이었어. 

동성애자들, 성적소수자들의 커밍아웃은 더이상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그들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커져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의 삶은 슬프고 외롭다.「굿바이, 메리 개리스마스」는 동성커플의 자식으로 살아가는 보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속옷 디자이너로 일하는 보린의 아빠는 외국어학원 강사로 일하는 남자 폴과 동거 중이다. 이들은‘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나기 위해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인정해주는 네덜란드 이민을 꿈꾸지만, 폴의 배신으로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그들의 크리스마스는 그래서‘개리스마스’가 되지만, 보린은 아빠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다시 한번 깨닫고, 울음을 삼킨다. 씩씩한 보린이와 아빠는 부조리한 세상을 잘 헤쳐나가리라 믿어본다.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나비가 아니었을까.

조은이의「헤바HEBA」는 청춘의 여신이란 뜻이다. 중학생 소년 성호에게 이종사촌 윤이 누나가 선물한 지구본의 이름이기도 한‘헤바’는 작품의 의미를 잘 드러내주는 제목이다. 학교를 자퇴하고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온 윤이 누나는 뚜렷한 주관과 자유로운 사고방식의 소유자로, 중학생인 성호에게 또 다른 세상을 펼쳐 보여준다. 성호는 윤이 누나의 세계에 점점 빠져들고, 누나와 단둘이 사막의 불타는 별들 아래 있는 꿈을 꾼다. 하지만 누나가 사막에 단둘이 가길 원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 성호는 아릿한 성장통을 치러낸다. 그리고 자신의 안에 숨겨진 날개를 발견한다.

나는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거울 속에서 나 자신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넘겨다보았다. 나는 그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 내 이빨 좀 세어봐요. 

최인석의「쉰아홉 개의 이빨」. 쉰아홉 개의 이빨을 가진 아버지를 괴물이라 여겼던 어린시절의‘나’는 어느 날 엄마로부터 돌아가신 아버지의 젊은 시절 위대한 활약상을 듣고 아버지의 정의로운 삶을 자신의 모델로 삼는다. 쉰아홉 개의 이빨을 가졌던 위대한 아버지와는 달리, 교회 목사인 새아버지는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권위를 휘둘러 자식들을 제멋대로 좌지우지하는 위선자이다.‘나’는 이 불합리한 상황에 저항하고 싶지만 엄마의 평온한 삶을 위해 이를 악물고 참는다. 그때마다 하나씩 늘어가는 이빨의 수효를 헤아리면서 아버지의 정의로운 삶에 한걸음 가까워졌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러던 어느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밤, 휘갈겨 쓴 상형문자처럼 나무들이 몸부림치는 풍경을 바라보며‘나’는 가출을 결심한다.

 

기다려 앨리스, 너를 만나러 갈게.
우리, 섬진강 꽃길을 함께 달리는 거야. 

세상과의 불화로 각자의 세계에 웅크리고 있는 앨리스와 빔벤더는 사회공포증 동호회 사이트 대화방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이다. 저마다의 아픔과 절망으로 세상과 멀어진 두 남녀는 솔직한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나아가 서로에게 세상의 창이 되어준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은 세상 속으로 나아간다. 표명희의「널 위해 준비했어」는 어둠의 터널 속을 지나는 앨리스와 빔벤더의 시간을 발랄한 터치로 그려내고 있다.

본격적 청소년문학은 처음으로 접한다. 나는 이제 청소년이 아니지만,‘청소년문학’시리즈 출간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분명 청소년들에게도 문학계에게도 하나의 빛과 같은 소식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기대가 컸던 것일까. 청소년문학이란 꼬리표를 달고 있는 이 소설집은 청소년들의 선택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접근방식이 과연 오늘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쉽게 공감할 만한 것인지는 의문이 들었다. 소설의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성인소설과 별다를 것이 없다. 청소년문학이란 경계를 확실히 구분 지어줄 만한 그 무엇이 아쉬웠다. 이 작품집은 기존의 동화작가와 소설가들이 썼다. 앞으로 청소년문학가,라는 새로운 작가군의 발굴을 기대해본다. 청소년문학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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