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갱 : 원시를 갈망한 파리의 부르주아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 9
피오렐라 니코시아 지음, 유치정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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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미술교과서에 실린 타히티섬을 주제로 한 그림 몇 점, 십대 후반 어느 밤중에 읽었던 소설 '달과 6펜스'의 강렬한 인상, 고흐 관련 책들에 언급된 고흐와의 유명한 일화와  단편적인 이미지들. 더없이 얕고 추상적인 앎, 아니 무지라고 하는 편이 더 적당하겠다. 고갱에 관하여 무지한 나와 같은 독자에게 이 책은 친절하다. 스페인 태생의 정열적이고 강인한 성품의 여류 문학가였던 외조모의 피, 페루의 대저택에서 보낸 자유롭고 풍요했던 유년의 기억은 그의 핏속을 흐르는 원시와 야생적 삶에 대한 추구 욕망을 이해할 수 있는 결정적 요소라고 제시하면서, '위대한 예술가 고갱의 생애'속으로 안내한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제게는 잉카 인디언의 핏줄이 흐르고 있고, 제가 창작한 모든 작품에서 그것이 느껴집니다. 그것은 바로 제 인격의 바탕을 이루고 있고, 제가 줄곧 반대해온 타락한 문명과 달리 야생적인 것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작품의 변천 과정을 따라 그의 생애를 크게 네 시기로 나누고, 그 시기에 그려진 주목할 만한 작품들에 담긴 고갱의 이상과 동경, 사상, 회화적 표현 양식을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고갱이 교류하며 영향을 받았던 화가들의 작품 경향을 곁들이면서 인상주의와 상징주의에 관한 폭넓은 이해를 돕는다. "1889년에 이 화가들은 '인상주의적이고 종합주의적인 그룹'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하면서 파리의 볼피니 카페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그들은 인상주의의 리얼리즘과 단절하고, 자연에 내재된 가장 은밀한 본질을 추구하는 상징주의적 개념을 옹호하면서 회화에 대한 전통적인 방식을 급진적으로 변화시키고 혁신하고자 했다. 객관적 세계의 표면을 넘어서서 인상주의를 극복하고, 자연과 오브제와 기호(선과 색)의 상징주의적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다. 이 화가들은 상상력과 생각이 자유롭게 전개되기를 원했고, 현실에 상상적 가치를 부여하려고 했다. 빨간 나무, 초록 그림자, 파란 초원 같은 것들. 이런 창조적인 열정을 바탕으로 한 운동에서 최초의 이론가는 에밀 베르나르(1868~1941)였다. 1886년 고갱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겨우 열여덟 살이어서 '어린 베르나르'라고 불렸다. 베르나르는 음영이 제거되고 진하게 그려진 윤곽선과 강렬한 색의 커다란 평면으로 자품을 뚜렷이 부각시킨 최초의 화가였고, 이런 특성으로 인해 그의 작품은 단순하면서도 비합리적 느낌이 강했다."


무엇보다도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 작품을 감상하는 일이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매끄러운 질감의 종이로 된 각 페이지에는 글이 채워진 나머지 공간마다 그림들이 실려 있어 글의 내용을 참고하며 감상할 수 있다. 

 
  


예술가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간 존재로서의 사적인 삶의 부분 또한 책의 흐름을 잇고 있는데, 표면적인 삶에 대한 간략한 언급에 그치고 있어 딱딱한 연대기의 느낌을 준다. 고갱의 글을 인용한 구절이 곳곳에서 발견되지만 작품에 관한 설명이 주를 이루고 있어 인간 고갱의 내면적 깊이까지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를 책 한 권에 오롯이 담아내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이 책은 예술가 고갱, 인간 고갱보다는 그의 작품 이야기에 비중을 두고 있다. 예술가의 생애는 그의 작품에 반영된다. 그러므로 예술가의 생애를 이해하려면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가 근간根幹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 이해의 첫걸음으로 삼기에 좋은 책이라 하겠다. 

 

 

 

책 한 권에 예술가의 생애를 고스란히 담아낼 수는 없지만, 예술가는 자신의 전 생애를 작품에 담기도 한다. 고갱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작품에 생애에 걸쳐 형성된 세계관을 철학적으로 집약하여 담아냈다. 고갱에게 있어 <우리는 어디에서...>는 정신적이고 예술적인 유언과 같은 야심작이었다 한다. 여기, 빛과 색으로 이루어진 그의 아름다운 생애를 소개하며 부족한 글을 마치겠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는 3미터도 넘는 그림인데 여전히 많은 논란의 대상이다. 고갱은 자살로 이 시기를 끝내려고 했을까? 이 질문도 논쟁의 여지를 남긴다. 마찬가지로 작품에 대해서도 비판적 해석이 숱하게 있다. 화가 자신은 이 작품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다. 사실 이 작품은 그가 그려온 주제를 미학적으로 종합하면서 그의 세계관을 철학적으로 집약한 것으로, 정신적이고 예술적인 유언과 같은 야심적인 작품이다. 1898년 2월에 몽프레에게 쓴 편지를 보면 고갱은 이 작품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고 있다. “위쪽에 노란색으로 칠해진 양 구석을 보면 왼쪽에는 경구가 있고 오른쪽에는 내 서명이 있는데, 그것은 가장자리가 상한 채 황금 벽 위에 칠해진 벽화와 같습니다. 자줏빛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하고, 원근법과 관계없이 일부러 크게 그린 여자는 웅크리고 앉아 허공에 팔을 들어올린 채 감히 자신들의 운명을 생각해보는 두 사람을 놀라워하며 바라보고 있지요. 가운데는 과일을 따는 여인이 있습니다. 아이 곁에는 두 마리 고양이가 있고요. 염소 한 마리. 신비롭고 속도감이 느껴지게 두 팔을 들어올린 우상의 모습은 저 너머를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상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여인. 그리고 자신의 예감과 전설의 끝을 체념한 채 받아들이고 있는 늙은 여인이 죽음 가까이에 있지요. 그 발치에는 도마뱀을 발로 누른 이상한 하얀 새가 헛된 말의 무용함을 보여주고 있고요.” (중략)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 작품은 유년기에서 노년기까지 인생의 각 단계별로 달라지는 인간성과 존재의 의미에 대한 하나의 알레고리이다. 고갱에게 인간성이란 본능과 종교적인 열망을 넘어서는 것으로, 서양인(주홍빛 옷을 입은 두 사람으로 표현) 특유의 논증과 추론의 경향과 우주 질서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근심 없이 살려는 경향으로 나뉘어져 있다. 기법 면에서는 원근법의 불완전한 사용, 평면적이고 단조로운 인물 배치, 자의적인 색의 사용이 특징이다. 고갱은 이 작품을 ‘해결하기 아주 힘든 문제’처럼 여겼고, “작품의 표면은 심하게 거칠지만, (...) 나는 이 작품이 전의 어떤 작품보다도 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이보다 나은 작품, 아니 이와 비슷한 작품조차 그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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