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탕달의 연애론 - 새롭게 쓰는
스탕달 지음, 권지현 옮김 / 삼성출판사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스탕달이란 이름이 아니었더라면, 이외수 씨의 추천사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이 책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계발서만큼이나 많이 쏟아지는 것이 연애론들이 아닌가 말이다. 무수히 쏟아지는 연애론들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들을 반복하거나 비현실적인 관념적 수다에 그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진지하게 독서에 몰입할 수도, 현실에 응용해 볼 수도 없는 무가치성의 한계를 드러내고야 만다. 그에 비해 스탕달의 연애론은 깊이가 있되 관념에만 치우치지는 않는다. 이것이 쓰여진 때로부터 한 세기 이상을 훌쩍 뛰어넘은 시대에 살고 있는, 다분히 까다로운 나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도 충분한 것이었다.

 

 

사랑하는 여자 앞에 서면 자연스럽게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 잘 보이는 것도 쉽지 않지만, 잘 보이려고 꾸미지 않는 것도 힘든 일이다. 그럴 때마다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며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 솔직함으로 다가서야 상대도 반사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솔직하게 응대하기 때문에 말이나 행동에 가식이 들어차면 여자는 마음을 닫아버린다. 더 이상 감동하지도, 유혹에 넘어가지도 않는다. (...) 물론 여자들 중에는 '매달리지 않으면 죽는다'는 신조를 운명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 역시 자연의 법칙 중 하나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자를 행복하게 해주려면 결정적인 한 걸음은 최대한 늦추어야 한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자제심을 잃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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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종종 사랑하는 여인의 존재를 거부함으로써 오히려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처음 사랑을 알았을 때 나는 이 미묘한 감정에 시달렸다. 나는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싫어하는 쪽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뒤늦게야 나는 깨달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비겁함 때문이었다. 전쟁터의 군인들이 두려움을 잊기 위해 오히려 이를 악물고 포화 속으로 뛰어들 듯, 사랑을 외면하는 것 역시 사랑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욕망의 반동으로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단지 말을 하기 위해 말을 하며 떠벌렸던 어리석은 말들이 생각날 때마다 나는 절망에 빠졌다.


이처럼 그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어가며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심리, 철학적 통찰과 객관, 주관적 경험의 토대 위에서 짜여져 있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안타깝게도, 연약하고 의심이 많다. 이런 현상은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일수록 더하다. 이런 작용은 무의식 속에서 나도 모르게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유라면 그저 우리의 삶 속에서 숱하게 벌어지는 기만과 배신, 실망과 상처가 그 섬세한 영혼에 여기저기 생채기를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인간이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근본적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스탕달은 연애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이 말은 여자와 남자, 인간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 건조한 사막 한가운데서 사랑은 청춘이었을 때보다 더 풍부하고 신선한 감정의 샘물을 솟아오르게 한다네. 젊었을 때는 막연하고 광적이면서도 항상 산만한 희망이 있었네. 헌신은 존재하지 않았지. 지속적이고 깊은 욕망도 없었어. 언제나 가볍기만 했던 영혼은 새로운 것에 목말라하며 어제 사랑했던 것을 오늘은 무시했다네. 사랑의 결정 작용만큼 명상적이고 신비로우며 그 대상 안에서 영원히 하나가 되는 것은 없네. 젊었을 때는 유쾌한 것들만 마음을 기쁘게 해줄 수 있었고, 그것도 단 한순간뿐이었네. 그런데 지금은 사랑하는 대상과 관계가 있는 모든 것, 아주 하찮은 것조차도 깊은 감동을 준다네.


그에 더해, 위에 소개한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소설 쓰는 자의 섬세한 감성이 고스란히 잘 담겨 있다. 이것은 읽는 감동과 재미를 배가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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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광산에서 꺼낸 소금 결정들로 뒤덮인 나뭇가지에 빗대어, 스탕달은 사랑을 콩깍지라고 말한다. 흥분과 도취 상태라 한다. 환상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환상을 강화시키고 지속시킬 수 있는 방편들을 일러준다. 나는 여기서 말하는 환상을 현실도피적인 환상, 위험한 환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환상은 사랑의 현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환상은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대상과 세계에서 우리를 지탱시켜주는 강력한 힘이 되어준다. 이 환상을 지속시킬 수 있는 것으로 그는 게임과 전쟁을 들고 있다. 사랑은 밀고 당기기,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밀고 당기기는 자연스러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연스러움. 내가 나답고 너는 너다워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스러움이 결여된 연애는 참된 것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사랑은 느낌을 따라가면 돼. 이것저것 재어가면서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야.’이런 것을 자연스러움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모든 일에는 배움이 필요한 법이다. 배움의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사랑에도 마찬가지다. 수없이 싸우고 상처 주고 저주하며 헤어지고 절망하는 과정들 속에서 사랑을 배울 수 있다. 부모를 비롯한 타인들의 사랑을 지켜보며 배울 수도 있다. 어떤 배움의 길을 택하는가는 각자의 몫이다. 그렇지만 나는 진정 아끼는 사람들에게 스탕달의 연애론을 권하고 싶다. 현재의 사랑이나 앞으로 다가올 사랑을 위해 사랑의 기술을 익히는 일이야말로 사랑의 대상을 보다 성숙하게 사랑하리라는 각오이자 실천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스러움으로 통하는 길을 우리에게 제시해 줄 것이다.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 사랑할 사람들이여, 무조건 읽어라! 강추(강력추천)한다. 

                                                                                                          H07090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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