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개 1
김별아 지음 / 문이당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김별아 작가의 소설은 <논개>가 처음이다. 그리고 <논개> 서평은 두 번째다. 소설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는 주관적인 감상 위주로 채워진 것 같아서 다시 쓰기로 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김별아 작가를 주목하는 독자들이 많고, 그만큼 그의 작품 <논개>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 혹은 비난의 말들도 많은 모양이니 그렇다. <논개>를 아직 읽지 못한 사람들의 <논개> 선택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이 글을 쓴다.


<논개> 책 소개글을 본 순간부터 나는 기대에 부풀었다. 논개는 역사적 인물이지만 우리가 위인전이나 역사책에서 만나는 위엄 있는 위인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녀가 기생인 줄로 알았다. 기생은 나라 위해 몸 바치지 말란 법이 있는 것은 아니나, 그 특수한 신분과 그보다 더 특수한 죽음에 매혹된 것이 사실이다. 

 

 

소설은 ‘논개’의 죽음의 순간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날아올라, 가마아득한 허공에 몸을 부렸다. (중략) 죽음이 두려운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이 더 두려운가. (중략) 물속은 지옥의 밑바닥같이 추웠다. (중략) 공포, 싸늘하고 후끈한 두려움, 그 두려움에 사로잡힌 자신조차 곧 사라지고 말리라는 생생한 깨달음. 멈추었던 호흡의 벽이 무너지며 멱통으로 담수가 밀려들었다. 갑자기 팽창된 핏줄은 불똥을 맞은 뱀처럼 요동쳤다. (중략) 죽기 싫다. 살고 싶다. (중략) 들이치는 핏물과 솟구치는 토혈이 한데 뒤엉켜 그녀의 입을 막는다. 향기로운 입이 끈끈한 피로 가득 찬다. 역한 비린내에도 불구하고 내치는 힘보다 들이치는 힘이 강하니 핏물은 좁은 목구멍을 찢을 기세로 꿀꺽꿀꺽 밀려든다. 온몸의 통점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눈을 홉뜬다. 어딘가가 산산이 부서져 가는 모양이다. 갈가리 찢기는 모양이다. (중략) 그와 함께 흐르고 흘러 끝끝내 영원의 바다에 닿으리라. 그녀는 춥고 어둡고 강압한 심연을 향해 희미하게 웃었다.

 


나는 이 첫 장을 읽으면서,‘춥고 어둡고 강압한 심연’속에 떠 있는 듯 숨이 차올랐다. 산산이 부서지고 갈가리 찢겨가는 논개와 함께 나도 죽어갔다. 이처럼 실감적인 묘사에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가히 충격적이었다. 죽음의 묘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죽음의 묘사는 논개의 인간적인 면모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작가가 논개의 죽음의 순간으로 소설의 문을 연 것은 어쩌면 철저하게 의도된 것이 아니었을까. 역사가 규정한‘순국열사, 논개’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음을 말하고자 했던 게 아니었을까. 죽음 앞에서 본능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생에 대한 미련에 몸부림하였던 나약한 인간존재. 그렇다. 소설, <논개>에서 나는‘위인, 논개’가 아니라 ‘인간, 논개’혹은‘여성, 논개’를 만났다. 김별아 작가의 손끝에서 태어난 논개는‘꽃과 나무를 사랑하여 아끼고, 매어놓은 개의 배를 걷어질러 분풀이로 삼지 않고, 주인 없는 고양이와 밥찌끼를 나누는’고운 마음 씀씀이를 지녔다. 억울하게, 혼인 빙자에 연루되어 노예 신세로 전락하지만, 어린 나이에도 고달픈 운명을 원망하지 않는다. 여린 몸으로 감당하기 괴로운 힘든 일도 꿋꿋하게 해낸다.‘신세가 곤고해서 입을 열면 쏟아지는 말이 시비하거나 남을 헐뜯는’사람들 사이에서도 논개는 마음의 우물을 더럽히지 않는다. 모두가 피하고 싫어하는‘업이’에게도 진심을 준다. 이처럼, 작가가 묘사하는 논개는 흠 없는 완벽한 인간성의 소유자다. 이러한 평면적 인물 묘사는 전형적인 위인전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작가는‘위인, 논개’를‘인간, 논개’로 그리고자 시도했지만, 결국 작가 자신도‘위인, 논개’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보인다. 논개가 사랑한‘최경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들뿐 아니라 다른 등장인물들도 대개 이처럼 평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작가는 서문에서, <논개>의 테마는‘사랑과 죽음’이라 하였다. 여기서,‘사랑’이라 함은 최경회와의 사랑을 가리키는 것인데, 최경회와 논개의 사랑에 개연성이 부족하다. 사랑하는 자의 복수를 위해 죽음을 택할 정도라면 그 사랑의 과정에 분명 뭔가 특별하고 절절한 사연이나 마음이 흘러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이 부분이 무척 빈약하게 처리되어 있다.

 

 

최경회의 표정과 말은 예사로웠다. 하지만 논개는 단박에 그의 의중을 파악했다. 정작 그가 하려는 말은 그가 하지 않은 말들 중에 있다. 논개가 하고픈 말 역시 언제나 자신이 하지 못한 말들 중에 있었다. 넘치는 마음을 담기에 말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했다.

 

 

사랑에 빠진 이들의 감정 묘사는 작가의 목소리 대신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야 했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들의 넘치는 마음을 독자에게 전하기에는 등장인물들의 말이 턱없이 부족하기만 했다. 또한 논개와 최경회의 만남의 순간들은 토막토막 짧게 묘사되어 있을 뿐이어서 독자의 감정이입에 어려움을 준다. 반면, 임진왜란의 상황 묘사는 활발하게 되어 있다.


긴장을 푼 채 낄낄거리며 음탕한 농을 지껄이던 일본군은 조선군의 갑작스런 공격에 썩은 볏단처럼 나가쓰러졌다. 황진의 서슬 푸른 칼날이 빛날 때마다 일본 병사의 목이 두부마냥 섬벅섬벅 베어졌다. 순식간에 몸이 떨어진 머리통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흙바닥에 굴렀다. 창에 맞아 삐져나온 내장을 끌며 달아나다가 자기 내장에 발이 걸려 자빠져 죽는 자도 있었다.


논개는 지아비 최경회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 일본의 장수를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졌다. ‘그는 은인이면서 정인이면서 세상을 향해 트인 창문이었고, 그를 사랑하는 그녀 자신이기도 하였으므로.’분명 어떤 사람들은 그럴 것이다. 한낱 사랑에 목 맨 여인, 그래, 논개를 고작 이렇게 그려냈느냐고. 그렇게 말하는 자들이 대단한 애국자이거나 사랑과 죽음을 경멸해서 그렇기보다는, 앞서 내가 말한 논개와 최경회의 사랑의 묘사에 대한 부족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소설 <논개>는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 소설을 완성하기까지 김별아 작가는 많은 애를 썼을 것 같다. 많은 참고 문헌들을 읽은 것은 차치하고 - ‘논개’는 이미 하나의 이미지로 우리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역사적 인물이다. 본래의 이미지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새로운 이미지를 잘 완성시켰더라도, 원래의 이미지를 품고 있던 사람들을 얼마나 설득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많은 고민을 하여 썼을 것이다. 이런 설득력 없는 말은 거두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이 소설을 읽어볼 만한 것으로 가치를 높이는 요소는 그녀의 뛰어난 어휘력에 있다. 글쓰기 실력이 뛰어난 작가다. 지나친 수식어의 사용은 문장의 단박한 맛을 해치는 면이 없지 않지만, 느슨한 마음으로 읽으면 오히려 읽는 즐거움을 더해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글쓰기 실력만으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논개>에는 빛나는 글솜씨는 있지만, 정작 작가가 테마로 삼았던‘사랑’은 결핍되어 있다. 이러한 결핍과 과잉의 요소들로 인해 <논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지만, 아쉬움만큼 애정이 많이 가는 것은 작품 곳곳에 녹아 있는 감동적인 문장들 때문일까.


<논개>에 대한 평이 좋지 않다는 말이 들려 이렇게 서평을 쓰는 것인데, 별로 설득력이 없는 글이 된 것 같다. 오히려 논개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키우는 작용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나처럼 <논개>의 소소한 가치들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소설 속,‘논개’의 말로 이 부족한 글을 마친다. 

 

 

나는, 나를 모르면서 하는 사람들의 말 따위는 상관없다. 

 
                                                                              . H070829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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