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귀나무에 분홍 꽃 피면 - 비구니 스님 행장기
김영옥 지음, 허경민 사진 / 오래된미래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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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유구한 불교전통의 나라에서 반평생을 지나는 동안 불교를 전혀 모른 채 살아왔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기이하다. 이토록 훌륭한 가르침을 삼십대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만났으니 어찌 회한인들 없겠는가마는, 달리 생각해 보면 평생동안 불교를 모른 채 인생을 마칠 수도 있었던지라 이렇듯 늦깎이로나마 배우게 된 것이 천행으로 생각된다.

불교를 몰랐던 시절에는 불가의 수행자들에 대하여 아무런 지식도 아무런 느낌도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그들의 살림살이에 대해서 한오라기의 앎도 없었다. 차츰차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나가면서 수행자의 세계를 엿보니, 그 세계가 참으로 탁 트인 넓은 세계임을 비로소 알겠다. 물론 승단이라는 조직체에 들어가면 바깥에서 흠모하던 바와는 달리 옥석이 뒤섞여 있겠지만, 그와 같은 사정은 부처님 재세시의 초기불교 승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요컨대, 역사적으로 어느 문중이든 옥석이 뒤섞여 있지 않았던 때는 없었으며, 위대한 스승들과 그분들의 가르침은 흠결 있는 조직체라는 실망을 금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도 피어난 영광들이었다. 그러므로, 스승들을 따라 수행자는 외부를 향하지 않고 결정코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 언론을 통해 전파되는 승단의 실망스런 모습과는 달리 지금도 바람을 가르며 홀로 가는 수행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세계는 세간의 흐름과 달라서 언론이나 매스컴을 통해 전달되기란 구조적으로 무망한 일이며, 그들의 세계를 부러 찾아가지 않는 이상 접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김영옥의 «자귀나무에 분홍꽃 피면»(오래된미래 2007)은 아홉 비구니 스님의 행장기이다. 낱낱 비구니의 행장을 통해 수행자의 높고 넓은 세계를 그려냈다.

“이런 세상이 있었고나!” — 아홉 비구니의 행장을 기록한 «자귀나무에 분홍꽃 피면»(오래된미래, 2007)의 저자 김영옥이 수행자들의 세계를 접하고서 뱉은 외마디 탄성이다. 그의 탄성에는 우리 곁에 있으되 전혀 접하지 못했던 세계를 이제 비로소 발견했다는 놀라움이 묻어 있다. 수행자들의 세계는 세간의 흐름과는 경이로울 정도로 달라서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유산으로 기념해도 될 정도이다. 그는 그 세계를 접하고 “세계 불교사에서 한국 비구니 승단의 존재는 문화 유산적 의미로 뜻매김될 만한 귀한 것임을 통감”(12)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행장을 기록하기로 작정하면서 이렇게 머릿속에 그려본다:

대승의 뜻을 받들어 하화중생하는 방편은 여러 가지일 터였다. 간경, 역경, 복지, 유아·청소년 대상 포교, 삼직 등 소임살이, 가사 불사, 병원 법당 소임자, 선농불이의 삶, 좌복도 없이 당신이 살고 있는 집을 드나드나 세상 사람들을 화두로 삼아 두타행하고 있는 수좌, 기도 중인 스님 등. 그뿐일까. 강원, 율원, 행자 교육, 노전 스님 등. 때로는 한 분 스님을 만나되 한 개인의 입을 빌려 그 현장 전체를 기록하고 싶기도 했다. 불문에 들기로 작심은 하였으나, 아직 체발을 하지 않은 행자를 만나 승과 속의 경계에 서 있는 처지에 관한 ‘흔들리는’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었다. 범패, 수승한 불교 문화 유산의 지킴이로써 고단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분의 이야기도 적어보고 싶었다.(13)

김영옥은 낱낱 비구니의 행장을 빌려 문화유산으로 기념될 만한 수행자의 세계를 기록하고자 했다. 수행자의 생활은 예불, 발우공양, 운력, 살림살이, 농사, 간경, 전강, 기도, 포교, 불사, 복지, 참선, 안거, 가행정진 등등 먼지 자욱한 재가생활에서는 구현이 불가능한 세계이며, 그리하여 하나의 문화이다. 그 문화를 어찌 필설로 다할 수 있으랴마는, 유구한 수행자의 세계가 황금처럼 토해놓은 언구들과 함께라면 짐짓 그 문화가 독자들의 눈앞에 생생하게 살아오지는 않을까?

“별빛이 아직 아침이 되기 전에 먹는 정미한 음식”(25)

“공부란 세 철 안에 가닥이 잡혀야 한다”(50)

“쌀 한 톨의 시은施恩을 달면 그 무게가 일곱 근”(68)

“내가 너를 위해 노를 저으마”(87)

“아난아, 비파는 어떻게 소리를 얻게 되었느냐?”(173)

“처마 끝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니/ 섬돌 앞의 땅이 젖네”(175)

“발붙일 수 없는 곳, 힘줄이 끊어지고 뼈가 으스러지는 때의 경계에 이르러, 별안간 바람과 물살의 방향이 바뀌는 그곳”(188)

위의 인용문들과 같이, 저자가 불문에서 내려오는 경책이나 경전, 선어록 등에서 푸른 안목으로 뽑아올린 언구들은 빛이 난다. 이 금언들이 곤고한 세월을 거친 수행자들의 행장에 스며들면서, 서로가 서로를 승화시킨다. 금언이 수행자들의 내면을 밝히 비추고, 수행자들이 금언에 황금의 무게를 더한다. 수행자들에게 한없는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는 것도, 경전과 문헌 속의 빛나는 언구들이 그들에 의하여 비로소 피와 살을 얻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바로 그들의 삶에 있는 것이 아니겠으며, 그들이 곧 불교가 아니겠는가? “개골개골개골개골/ 별들이 무수히 연못에 떨어진다”(58, 서림스님).
 

김영옥의 첫번째 저작은 «봐라, 꽃이다!»(호미, 2001)인데, 그 책을 읽을 때만 해도 나는 저자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아직 글이 덜 여문 인상이었으며, 수행자들을 탐방하고 쓴 여타 저자의 글과 그다지 다를 바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 «자귀나무에 분홍꽃 피면»과 함께 저자는 그 누구와도 다른 독보적인 영역을 확보한 듯하다. 주관적인 나의 독서경험상, 정찬주의 글은 허전한 기운이 감돌며, 이지누의 글은 인문학적 질병의 구조에 빠져든 느낌이 들며, 한겨레신문 조현 기자의 글은 감상적 질병의 냄새가 풍기며, 불교신문 기자들의 글은 메마르고 거친 느낌이 든다. 김영옥의 글은 이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이다. 그의 독서 범위도 놀랍거니와 언구를 뽑아내는 솜씨 또한 찬탄할 만하며, 사물을 관찰하는 시선도 정결하며, 수행자들로부터 전달받은 일상다반사의 말을 빛나게 포착할 줄도 안다.

예컨대, “자귀나무에 분홍꽃 피면”이라는 서명만 놓고 보면 뭔가 감상적 서정이 느껴진다. 그러나 본문을 읽어보면, 김영옥의 본래 문장은 “자귀나무에 분홍 꽃이 달릴 무렵에는 팥씨를 뿌린다”(71)이다. 그의 문장은 단아하고 문체는 유려하지만, 동글동글한 감정을 예쁘장하게 굴려서 글을 쓰지 않는다. 그는 수행자의 세계가 그런 감성, 그런 서정과는 거리가 있음을 알고 있다:

누워서 잠을 청하는 법이 없는 장좌불와 9년, 내원사에서 삼 년 결사를 세 번 해마쳤더니 십 년 세월이 흘러 있었다. 일주문 밖을 나오는 일도 없이 천성산만 오르내리며 몰두했던 때였다. 묵언 정진, 야채식 따위,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방편이라면 안 써본 것이 없었다. 누가 시킨다고 그랬으랴. 스스로 좌복 위에 붙박아버린 삶, 한 생각 뒤집어진 뒤에 누린 삶, 그러나 그것은 강제된 삶이 아니라, 어떤 시인이 읊은 것처럼 ‘소풍’이라도 온 듯 법락으로 가득했던 즐겁고 신바람 나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해인사 약수암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던 세 그루 노송 아래를 지나갈 때였다. 깃쳐 오르던 새 한 마리가 떨구고 간 것, 갈지자로 한가하게 떨어져 내리는 하얀 깃털을 보는 그 순간에 온갖 망상이 일시에 녹아버리더라 했다. 그것이 그저 부질없는 한 경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인가. 아니, 그저 한 경계에 지나지 않은 것이더라도 그는 이제 일없다.(51)

한줄기 단향이 곧게 피어오르는 법당 안, 두 발끝 모두어 좌복 딛고 선 몸, 직립해 있던 몸을 아주 굽히니 이마가 땅에 가 닿는다. 정례 또는 오체투지, 땅과 함께함이라, 더 이상 낮출 몸이란 제게 없나이다. 그러고는 두 손바닥을 하늘을 향해 뒤집는다. 땅을 짚은 두 손마저 온전히 펼쳐 보임이라, 더 이상 가리고 숨길 것이 없나이다. 굴신은 거듭되되 그 태는 원활하여 흐르는 물과도 같다. 아침 아홉시에 시작하면 사시나 되어야 끝나는 절, 하루도 거르는 법이 없이 그이가 올리고 있는 오백 배 절이다. 일 배, 이 배, 삼 배, …, 삼십 배, 사백 배, … 그러나 이마로 짜게 배어 나오는 땀 한 방울도 없다. 해를 넘기며 이어진 절 끝에 장삼 위에 덧입는 가사는 누더기가 되었다. 양 무릎과 두 손을 거두는 데는 아주 거덜이 나버렸고, 황토빛 좌복, 무릎과 이마가 가 닿는 곳도 하얗게 색이 바랬다. 오후 불식과 함께 일상의 행이 된 그이의 기도이자, 대중들에게 들려주는 말없는 가르침이다.(104)

수행자의 한 태, 한 세월을 그려내는 저자의 안목과 솜씨가 고맙다. 그 스스로 수행자의 세계를 감당하기에는 “무딘 손끝”(13)이라고 고백하며 겸허하게 접근했으니, 그 겸허한 자세가 이토록 아름다운 책을 만들었는가 보다. 하기야 그 세계의 진면목을 안다면 어찌 겸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가득했으며, 유구한 문화 유산 앞에서 감동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꽃 지니 그 깊이가 한 척”이라는 싯구 하나를 던져놓고, 그것이 근대기의 천재적인 시인 소만수(蘇曼殊)의 오언절구 <난법인(蘭法忍)>에서 따온 싯구임을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의 솜씨였던가, 수행자의 일면모만을 척 던져놓고 독자들의 깜냥에 따라 그 깊이를 파헤치기 바란 것이?

금경로에 취하여 연지로 모란을 그리노라
꽃 지니 그 깊이가 한 척, 좌복에 앉을 일 없어라
來醉金莖露 臙脂畵牡丹
落花深一尺 不用帶蒲團

금경로라는 누룩으로 빚은 술을 마시고 취한다. 취한 김에 분홍빛 연지로 모란을 그려본다. 실제로 그림을 그린 것인지 언뜻 심상에 붉게 비친 그림인지 알 길 없으나, 그 커다란 꽃이 찬란한 슬픔처럼 떨어진다. 그 꽃을 바라본다. 떨어지는 찰나찰나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바라본다. 그것은 영원한 순간이며, 그것은 영원한 떨어짐, 영원한 순환이다. 그것은 모란이 현시해 주는 법인, 이른바 “난법인(蘭法忍)”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꽃 지니 깊이가 한 척”이라는 싯구가 탄생한다.

이 한 척의 깊이는 모든 슬픔, 모든 기쁨, 모든 괴로움, 모든 아름다움을 능히 능가한다. 여기에는 오로지 한 척의 깊이만이 있고, 생노병사가 빚어내는 행복이라는 괴로움, 불행이라는 괴로움, 기쁨이라는 괴로움, 슬픔이라는 괴로움이 없다. 행복은 언젠가 불행으로 바뀌기 때문에 괴로움이 아니라 행복 그 자체로 괴로움이다. 기쁨도 기쁨 그 자체로 괴로움이다. 그 행복과 그 기쁨은 윤회의 수레바퀴가 빚어내는 행복과 기쁨이기 때문에 괴로움이다. 그러므로 생사의 구조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기쁨과 모든 행복은 괴로움이다.

그러나 꽃이 지는 찰나, 시인은 단 한 흐름도 놓치지 않고 속속들이 물아일체가 된다. 그리하여 모든 기쁨, 모든 행복이 말끔히 씻겨나가고 오직 “한 척의 깊이”만이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선정이다. 그러므로 따로 입정을 위해 좌복 위에 앉을 일이 없다.

“꽃 지니 그 깊이가 한 척!”, 이 싯구도 아름답고, “자귀나무에 분홍 꽃이 달릴 무렵이면 팥씨를 뿌린다”, 저 싯구도 아름답다. 돌아보니, 모두가 난법인 아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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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4월에 미국에서 영어로 강연하고 그해 7월에 취리히에서 독일어로 강연하고, 이듬해 독일에서 «우리의 경험으로 비추어 본 니체 철학»(Nietzsches Philosophie im Lichte unserer Erfahrung, Suhrkamp 1948)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토마스 만의 짧은 니체 에세이가 «쇼펜하우어·니체·프로이트»(원당희 역, 세창미디어 2009)의 일부 내용으로 실려 번역되었다. 책을 펼치자마자 1889년 니체의 정신적 붕괴를 상기하며 “아, 여기 한 고귀한 정신적 인간이 파괴되었도다!” 하는 오필리아의 비탄의 소리를 입히는 토마스 만의 안목에 사뭇 기대가 되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스럽다.


토마스의 만의 니체 에세이. 니체 철학을 심미주의의 과장으로 보고 있다.

“나는 니체가 파시즘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파시즘이 니체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122) 그는 니체 철학에 대한 파시즘적 해석에 대하여 분명한 반대를 표명하지만(당시에는 이것 하나만으로도 니체 오독에서 벗어난 뛰어난 안목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지는 모르겠으나), 근본적으로 니체 철학을 독일 낭만주의의 연장선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토마스 만이 니체를 이해하는 주요 반경은 니체의 초기작들인 «비극의 탄생»이나 «반시대적 고찰»에서 펼친 사상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니체의 혈통과 뿌리를 같이하는 낭만주의 시인 노발리스”(120)라는 확언도 거기에서 비롯한다. 심지어는 “노발리스가 미적 위대성의 이상, 최고도의 야만성, 동물적 정신이라고 칭한 것, 바로 그것이 니체가 내세우는 초인”(121)이라고 보고 있는데,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다.

바그너와 니체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은 작가이니만큼 니체 이해가 매우 남다를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탁월한 내용이 없는 단순한 이해 수준으로 평가하고 싶다. 하긴 하이데거나 들뢰즈 같은 천재적인 해석자들에 의하여 니체가 재발견되기 전까지 누군들 토마스 만 수준의 이해력을 넘어설 수 있었겠는가마는,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적어도 그는 20세기 최고의 독일작가로 손꼽히지 않던가? 작가라면 철학자들의 이론적 형해화에서 탈피하여 예민한 감각으로 남다르게 포착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토마스 만은 적어도 니체에 관해서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작가마저도 철학적·이론적 선이해로 오염되는 것이 독일적 근성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토마스 만의 소설을 읽으려고 몇번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만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사실 이 니체 에세이조차도 잘 안 읽힌다.)


물론 유미주의와 야만성의 근친성이라는가, 심미적 태도와 도덕적 태도의 대립, 악의 낭만화 등등을 거론하며 니체 철학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토마스 만의 입장은 그의 개인사를 빼놓고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일 그가 파시즘의 위험을 몸소 경험한 작가가 아니었다면 그토록 휴머니즘을 옹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토마스 만 만큼이나 도덕주의 내지 윤리적 이상을 높게 평가하는 것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세계 제2차 대전을 겪으면서 망명생활을 했던 작가나 예술가들이 “좀더 온화한 사상”, 휴머니즘, 도덕주의, 윤리적 이상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니체는 평생 동안 이른바 ‘이론적 인간’을 몹시도 저주했다. 그러나 그 자신이야말로 이 이론적 인간의 찬양자이자 순수문화에 뿌리박고 있는 인간 유형이다. 그의 사유는 절대적 천재성에 근거하여 지극히 비실용적이고, 교육적 책임감이라고는 전혀 없으며, 근본적으로 비정치성을 띠고 있다.(133)

위의 인용문에 토마스 만의 니체 이해 수준이 잘 드러나 있다. 니체의 사유가 비실용적이고 무책임하다는 평가는 그의 개인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비정치성을 띠고 있다는 평가는 파시즘적 해석에 대한 반대를 의미한다. 그리고 니체는 이론적 인간을 저주했으나 그 자신이야말로 이론적 인간의 찬양자라는 평가에서 토마스 만의 니체 이해가 의외로 초보적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이것은 토마스 만이 이론적 인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파시즘과 같은 어마어마한 사태를 겪은 이들은 낭만주의에 대한 공포, 이론적 인간에 대한 변호가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적인 경로가 아닐까? “우리의 경험으로 비추어 본 니체 철학”은 곧 “토마스 만의 경험으로 비추어 본 니체 철학”이기도 하다.

토마스 만은 니체 철학을 심미주의의 과장으로 보았으나, 니체 철학은 낭만주의도 아니며 심미주의도 아니다. 그러나 토마스 만은 그의 경험상 낭만주의·심미주의·야생성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었고, 이론적 인간·도덕주의·계몽주의를 통해 위안을 얻었던 것같다. 이것이, 다름아닌 그의 삶이, 니체 철학을 이해하는 시선을 방해했을 것이다. 토마스 만은 “그는[니체는] 자신의 고독을 심미적 태도로 과장했다”(134)고 평가했으나, 이를 그대로 뒤집으면, 토마스 만은 자신의 두려움을 이론적 태도로 과장했다. 그러나 니체는 자신의 고독을 과장하지 않았으며, 토마스 만도 자신의 두려움을 과장하지 않았다. 그의 고독과 그의 두려움이 바로 그들 각자의 생을 전체적으로 규정했으므로. 따라서 정직한 작가나 철학자들이 내놓은 작품과 사상은 자기 생을 지키기 위한 방어책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니체의 말대로, 심지어는 취향조차도 자기 방어의 본능이다. 그러므로 누굴 함부로 비난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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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가 새끼를 안고 푸른 산봉우리 뒤로 돌아가니/ 새가 꽃을 물고 와 푸른 바위 앞에 떨어뜨리네(猿抱子歸青嶂後。鳥銜華落碧巖前).” — <벽암록>이라는 서명의 유래가 되는 이 문장에서 보듯, 선어록은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 독자에게도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내가 불교를 전혀 모르던 시절에 불교서적으로 맨 처음 손에 잡은 것이 <벽암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 권의 번역서를 모두 읽은 것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는 없으되 그때까지 접한 부류의 책들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벽암록>을 두고 “의미를 이해한다”는 말 자체가 얼마나 빈곤한 정신으로부터 비롯한 말인가를 아는 정도의 수준은 되고 보니, <벽암록>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비추는 거울 앞에 서는 기분이 든다. 내 안의 티끌 하나 먼지 하나 놓치지 않고 낱낱이 비추는 거울.

선가에서 “종문의 제일서”로 꼽는 어록인 만큼, <벽암록>은 독자들의 접근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눈 푸른 선지식들이 자르는가 하면 봉합하고 거스르는가 하면 따르고 주는가 하면 빼앗기를 자유자재로 하면서 독자들의 뭇 생각과 감각을 종횡무진 베어버리는 까닭에, 이성적인 접근으로든 감성적인 접근으로든 단 한 걸음도 따라갈 수 없다. 접근하려고 하면 번뜩이는 칼날에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고 만다. 일반적인 사고와 감수성이 죄다 끊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고와 감수성이 끊어진 세계이기 때문에, 그 세계에 등장하는 대나무, 종소리, 칼, 꽃, 떡, 원숭이, 새, 눈송이, 부처, 거울, 산, 강, 우물, 철벽, 바위, 채찍, 그림자, 모기, 번개, 똥막대기, 나비, 소, 방망이, 차, 풀, 잣나무 등등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새롭고 경이롭다. 이렇듯 독자의 사고와 감수성을 일신하기 때문에, “뼈를 바꾸어놓는 신령한 처방”이 있기 때문에, 그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고금을 아울러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단 한 페이지도 이해할 수 없는 이 <벽암록>이 또한 매우 복잡한 형성사를 갖고 있는 사정을 알고 나면, <벽암록> 읽기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멈출 수는 없는 법. <벽암록>을 원문으로 읽기 위한 준비작업을 정리해 본다.
 

먼저, <벽암록>의 구성을 간략하게 살펴두어야 한다. <벽암록>은 내용으로 볼 때 크게 수시, 본칙, 송으로 나뉘며, 본칙과 송에는 각각 착어와 평창이 따라붙는다. 그러니까, “수시”, “본칙과 본칙에 대한 착어·평창”, “송과 송에 대한 착어·평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에서 본칙과 송은 설두의 작품이며, 수시와 착어와 평창은 모두 원오의 작품이다. 구성은 조금 복잡한 편이지만, 형성사를 살펴보면 구성이 좀더 명료하게 파악된다.

원오가 <설두송고백칙>을 제창한 내용이 바로 <벽암록>이라고 보면 된다. 다시 말해, <설두송고백칙>은 설두가 <조당집>·<전등록> 등 옛 어록에서 공안 백칙을 가려뽑고 각 칙마다 송을 부친 것이다. 그러니까 <설두송고백칙>은 옛 공안 백칙(“古百則”)과 송(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오는 그 백칙(본칙)과 송에 각각 착어와 평창을 부친 것이다. 그리고 수시는 머리말 격으로 각 칙의 앞에 온다. 이 모든 구성물을 합해놓은 것이 바로 <벽암록>이다:


<벽암록>의 구성도. <설두송고백칙>은 설두가 <조당집>·<전등록> 등의 옛 어록에서 공안 백칙을 뽑고 거기에 송을 부친 것이다. 원오는 <설두송고백칙>의 백칙과 송을 제창하였는 바, 그 내용이 바로 백칙(본칙)에 대한 착어와 평창, 그리고 송에 대한 착어와 평창이 된다. 이를 제자들이 기록하였다. 수시는 원오의 글로 각 칙의 머리말에 해당한다.


위 그림에서 알 수 있듯, <벽암록>의 내용을 형성사에 따라 구분하면 “본칙(고백칙)”, “송”, “수시·착어·평창”으로 나눌 수 있으며, 편집 순서에 따라 구분하면 “수시”, “본칙과 착어·평창”, “송과 착어·평창”으로 나눌 수 있다. 각 구성물의 내용을 살펴보자면, 수시, 본칙, 송의 기본내용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으며, 착어는 원오의 촌철살인의 반어와 역설이 주 내용을 이루고, 평창은 고사의 배경이나 인물 소개, 간략한 설명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벽암록>의 맨 앞에 실려 있는 보조의 서는 바로 이러한 형성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지극한 성인의 명맥, 역대 조사들의 대기, 뼈를 바꾸어놓는 신령한 처방, 정신을 기르는 오묘한 술법이여! 저 설두선사께서 종지와 격식을 뛰어넘는 뚜렷한 안목을 갖추시어 바른 법령을 이끌어내면서도 모습을 겉으로 드러내시지 않으시며, 부처를 단련하고 조사를 담금질하는 집게와 망치를 손에 들고 선승이 자기 초월에 필요한 요점을 말해주셨다. 은산 철벽이니 뉘라서 감히 이를 뚫을 수 있으리요. 몸뚱이가 쇠로 된 소를 무는 모기와 같아 입질을 할 수 없다. 대종장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깊고 미묘한 이치를 어떻게 다 할 수 있겠는가?

이에 불과 원오 스님께서 벽암에 계실 때 수행하는 이들이 잘 몰라 이 미혹을 깨우쳐주실 것을 청하니, 노장께서 이를 어여삐 여기셔서 자비를 베풀어 저 깊은 밑바닥을 파헤쳐주시고 깊은 이치를 드러내어 명백하게 딱 가르쳐주셨으니, 이것이 어찌 알음알이를 가지고 한 것이겠는가? 백 칙의 공안을 첫머리부터 하나로 꿰어 수많은 조사스님네들을 차례차례 모두 점검했다.

— <벽암록 上>(장경각 1993) 13면

이와 같은 형성과정 때문에 <벽암록>은 <조당집>·<전등록> 등의 옛 어록에서부터 설두의 송, 원오의 글, 원오의 강설에 이르기까지 여러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문체나 형식이 매우 다채로운데다 일반 독자는커녕 학자들조차 파악하기 힘든 선지(禪旨)까지 숨어 있으니, 독해와 번역이 결코 쉽지 않다. 더구나 당송대의 구어 내지 속어가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어 그것들에 정통하지 않으면 오독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그러니 <벽암록>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선지식의 안목과 학자의 실력과 시인의 감수성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말도 과언이 아닐 성싶다.

 

 



그렇다면 어떤 순서로 <벽암록> 읽기를 시작해야 할까? 가장 먼저 집어들어야 할 것은 역시 선림고경총서의 <벽암록>(장경각 1993)일 것이다. 상중하 세 권 분량이지만, 각 권 뒤에 원문을 영인하여 실어놓았으므로, 분량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 역서는 우리나라 번역서 중에서 최초로 수시, 본칙과 착어·평창, 송과 착어·평창을 모두 완역했다. 이 역서의 역자 이름이 별도로 표기되어 있지 않아 누구의 번역물인가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관련 글들을 참고해 보면, 어떤 과정을 거쳐 번역되었는지 유추해 볼 수는 있다.

30대 중반부터 경전을 번역한 송 교수는 <전심법요>, <백장록>, <동산양개 화상 어록> 등 23권의 선어록을 번역했다. 선림고경총서 가운데 3분의 2를 번역한 셈이다. 특히 그가 국내 처음으로 번역한 <벽암록>(장경각)은 백련암에서 성철 스님을 모시고 일일이 자문을 구해가며 번역한 역저이다.

— 현대불교신문 2004년 기사, <송찬우 교수, 첫 벽암록 강의 10년간 진행> 중에서

위의 기사에 따르면, 1993년 장경각에서 펴낸 <벽암록>은 송찬우가 성철스님의 자문을 받아가며 번역한 저작이다. 그러나 신규탁의 글을 보면, 사정은 사뭇 다르다.

그러니까 1990년 여름이었다. 백련선서간행회로부터 <벽암록>을 윤문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컴퓨터에 입력을 해서 내부 교정도 마치고 프린터로 뽑은 원고라기에 쉽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막상 원문을 대조하며 하나하나 살펴보니 만만치 않았다. 결국은 이 초고를 전면 개정하여 새로 컴퓨터 입력을 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이 과정에서 나의 커닝은 시작되었다. 알다시피 <벽암록>은 당나라 선승들의 이야기를 100개로 추려서 만든 공안집의 하나이다. 그 이야기에는 등장하는 인물도 많고 뒤에 얽힌 사연도 많다. 게다가 당나라 때의 구어, 속어 등이 수없이 나온다. 덤으로 판본도 십여 종이 넘고, 그에 따른 글자의 출입과 차이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번역이란 결과적으로 가능한 여러 해석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는 번역자의 의도가 들어간다. 이런 류의 책을 번역하는 데 본문만 가지고는 도저히 온전한 번역을 할 수 없다. 자연 다른 책을 참고해야 한다. 좋은 말로 하니 참고이지 역자 주를 달아서 참고한 내용을 밝히지 못했으니 결국은 슬쩍 본 것이다. 말하자면 커닝을 한 셈이다.

어느 부분을 어떻게 커닝했는지는 번역자 마음껏 자세하게 <벽암록>에 주석을 달아도 좋다는 출판사가 나오면 그 기회에 고백할 계획이다.

— 신규탁, <선사들이 가려는 세상>(장경각 1998) 249-250면

송찬우와 신규탁 모두 백련선서간행회에 깊이 관여된 이들인 만큼 위의 기록들은 사실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를 종합해서 유추하자면, 송찬우의 번역초안, 백련선서간행회 검토, 신규탁의 윤문·수정을 거쳐 간행된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로 송찬우 교수의 선어록 강의에 공개된 <벽암록> 강의 및 번역물을 살펴보면, 장경각에서 간행된 <벽암록>의 문장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웹 사이트에 공개되는 것이어서 한껏 자유롭게 번역한 결과물일 수도 있지만, 송찬우의 다른 번역서들이 대개 그렇듯, 의미가 통하도록 의역하는 경향이 강한 그의 평소 특성을 감안하면, 원문에 충실한 장경각판 <벽암록>은 신규탁의 손을 거쳐 대폭적으로 수정된 결과물로 짐작된다.

신규탁은 이리야 요시타카를 위시한 일본학자들의 당송대 속어에 대한 최근 연구 결과물들을 섭렵한 학자인 만큼 <벽암록>의 속어 내지 구어에 대하여 기초적인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임은 당연하다. 또한 그는 훈고학적 고증이라는 엄밀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학자인 만큼, <벽암록>의 공안 백칙과 관련이 있는 <조당집>, <송고승전>, <전등록>, <오등회원> 및 <선학대사전> 등의 선어록 공구서들을 참고했다고 한다. 그러한 고증을 거쳐 장경각판 <벽암록> 최종원고가 나온 것이지만, 신규탁은 선림고경총서의 편집방침상 참고한 출처를 주석을 통해 밝히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석지현은 이 번역서를 두고 “글자 번역에 치중했다. 그래서 뜻이 잘 통하지 않는 부분이 종종 있다”고 평했지만, 나는 뜻이 잘 통하지 않더라도 글자 번역에 충실한 번역이 훌륭하다고 본다. <벽암록> 같은 저작을 “뜻이 잘 통하도록” 번역하는 것 자체가 과연 옳은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장경각판 <벽암록>은 일체의 해설이나 주석이 없으며, 오직 짤막한 해제와 번역문, 그리고 원문(영인)만을 싣고 있다. 


장경각판의 <벽암록> 외에 가장 입수하기 쉬운 번역서는 안동림이 역주한 한 권짜리 <벽암록>(현암사 초판 1978, 개정판 1999)이다. 이 책이 현재 시중에서 가장 잘 팔리고 있는 번역서인 듯하다. 그러나 번역문 갈피갈피에 역자가 삽입한 내용들이 워낙 선지와는 거리가 멀어 오히려 독자의 독해를 사사건건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유감스럽다. 그 때문에 그의 주석이 제법 알찬데도 전폭적인 신뢰를 하지 못하게 된다. 개정판의 일러두기를 보면, 장경각판의 <벽암록>(1993)과 이리야 요시타카의 <벽암록>(1997) 일역본 등을 참고했음을 밝히고 있다. 완역은 아니며, 착어와 평창이 빠져 있다.





최근에 나온 역작으로는 석지현 역주의 <벽암록>(민족사 2007)을 들 수 있다. 언론에서는 최초의 <벽암록> 완역이라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최초의 우리말 완역은 장경각판 <벽암록>이다. 석지현의 <벽암록>은 8년 여에 걸친 노작의 결과물로 모두 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권에서 제4권까지는 <벽암록>의 번역이며, 제5권은 <벽암록 속어 낱말 사전>이다. 특히 제1권에는 <벽암록>을 종합적으로 안내하는 해설이 실려 있어 <벽암록>의 형성사 및 판본, 그리고 기존의 연구성과와 번역물들에 대한 평가 등을 접할 수 있다. <벽암록>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려는 이들은 이 해설을 일독할 만하다.

석지현의 <벽암록>은 원문, 번역문, 해설 순으로 짜여져 있다. 그러니까 <벽암록>의 구성물인 수시, 본칙과 착어·평창, 송과 착어·평창에 대하여 각각 순서대로 원문, 번역문, 해설이 실려 있다. 이 번역서의 가장 큰 특징은 각 구절에 대한 역자의 방대한 해설과 간략한 이본대조, 그리고 별권으로 독립된 <벽암록 속어 낱말 사전>에 있다. 이본대조 내용은 매우 소략하여 교감장치로서의 역할을 하기에는 모자르다고 할 수 있으며, 역자의 해설은 각 구절에 대한 훈고학적 주석이 아니라 역자의 안목으로 감평한 내용이다. 그 내용에 대한 호오는 온전히 독자의 몫이므로 나는 그것에 대하여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석지현의 번역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는 역시 속어사전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는 일본학자들의 연구 성과인 <禪語辭典>(1991), <禪學大辭典>(1985), <諸錄俗語解>(1999) 등을 기본사전류로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이리야 요시타카(入矢義高)의 <벽암록>(이와나미 서점 1997)과 스에키 후미히코(末木文美士)의 <벽암록>(이와나미 서점 2003)을 벽암록 속어 해설의 결정판으로 소개하고 있는 만큼 이 두 번역본도 함께 참고하여 사전을 정리했을 것이다. 석지현의 속어사전은 각 칙별로 속어를 배열하였으며, 뒤에 찾아보기를 두어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했다. 앞으로 <벽암록>을 원문으로 읽으려는 이들은 필히 이 사전을 거쳐야 할 듯하다.


 

 


그밖에 언급할 만한 번역으로는 정성본이 역해한 <벽암록>(한국선문화연구소 2006)을 들 수 있다. 이 번역서는 백칙 공안의 출처와 등장인물들의 전기자료를 일일이 제시하고 있어 훈고학적 고증을 거쳐가며 <벽암록>을 읽으려는 이들에게는 매우 유익하다. 그리고 중요한 선어의 형성과정을 언급하고 있다. 원오의 수시·착어·평창은 번역하지 않았으며, 설두의 본칙·송만 번역했다. 각 구절에 대한 해설을 싣고 있다. 설두의 송고를 중심으로 한 벽암록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벽암록>의 구어와 관련하여 부수적으로 읽어둘 만 책은 신규탁이 번역한 이리야 요시타카의 <禪과 문학>(장경각 1993)이다. 이 책의 일부 내용으로 선어록의 수사에 대한 짤막한 잡감들이 실려 있다. 저자는 선어록의 수사가 일반적인 한문과는 다른 이질적이고 파격적이고 이상한 수사라는 착각을 불식시키고 생생한 언어, 일상적인 언어라는 점을 주지시킨다. 다만 구어에 익숙하지 않은 학자들이 문어의 어법으로 번역하는 경우 터무니없는 착오가 발생한다는 점을 여러 사례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읽어보면 신규탁의 글들이 이리야 요시타카에게 많은 부분 빚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인용한 바 있는 신규탁의 <선사들이 가려는 세상>(장경각 1998)도 일독할 만한데, 저자가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엮어놓은 것이다. 그중에서 월간 <해인>에 실었던 “제3부 선어록 읽는 묘미”가 주요한 선어록들에 대한 소개 및 번역상의 문제점들을 언급한 것으로 선어록에 입문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또 하나, 별도의 글로 소개한 바 있는 아키즈키 료민(秋月龍珉)의 <무문관으로 배우는 선어록 읽는 방법>(운주사, 1996)도 선어록의 문법적 이해에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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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初心 참 불서 1
지안 지음 / 조계종출판사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처음처럼,” 이 말처럼 또 설레는 말이 있을까. 누구나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는 법이며, 또 그 순간에는 반드시 질적인 생의 변화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출가의 길은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생의 변화이자 도약이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감각의 수용방식, 사고의 틀, 감정의 표출방식을 끊고 나아겠다는 결단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너무나 당연시되어 온 구조이기 때문에, 그 구조 속에서 찬동하고 반대하는 움직임은 활발하지만, 그러면서 사람들은 성숙하지만, 차마 그 구조 자체를 아예 벗어나려는 시도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사실 인간적인 생각과 인간적인 감각은 관습적인 허구에 불과하다. 전통적인 불교용어로 말하자면, 그것은 하나의 “습”(習)이다.

단순히 어느 가치에 반대하자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생산하고 가치를 폐기하는 뭇 순환의 구조를 벗어나려는 것이기 때문에, 출가는 가장 커다란 생의 전환이다. 출가자는 모두가 당연시하는, 너무나 당연시하는 것들을 하나의 “습”으로 간주하고 그것을 결정적으로 깨뜨리고자 한다. 슬픔도 습이며, 기쁨도 습이며, 괴로움도 습이며, 생각도 습이며, 지식도 습이며, 예술도 습이다.

감각·감정이 생성되어 그 감각·감정에 몸과 마음을 의탁할 때 밀려오는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찬탄과 멸시, 환희와 좌절, 그 모든 것은 익숙한 것이 만들어놓은 가짜 세계에 불과하다. 게임의 세계에 기쁨과 슬픔이 있듯, 세간에도 기쁨과 슬픔이 있다. 두 세계의 기쁨과 슬픔은 서로 다를 바 없는 동일한 질의 감각이다. 그러므로 그 감각을 벗어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익숙한 감각의 길들을 통해 소통되는 세계 자체를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세간의 기쁨과 슬픔은 가장 익숙한 길, 가장 기발한 허구, 가장 실감나는 게임이어서 그 게임의 세계를 벗어나기란 참으로 어렵다. 아니, 그 게임의 세계를 벗어나기 전에는 그것이 게임이라는 것조차 알기 어렵다.

그러나 벗어나고 보면, 그것은 한 바탕 꿈에 불과하다. 벗어나고 보면, “웃음이 대지 위를 스치고 지나간다.”(타고르) 한 바탕 꿈, 한 바탕 게임에 놀아난 세월이 우습고, 여전히 허다한 참가자들에 의해 활기차게 진행되고 있는 거대한 유희의 세계가 우습다.
 

<계초심학인문>은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이 지은 것으로 제목 그대로 불교에 처음 입문한 초심자를 훈계하는 내용부터 사찰 내에서의 대중 생활의 규범과 선방에서의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들을 경각시키는 내용”(166)이다. 한 바탕 커다란 웃음을 터트린 큰 스승이 “수행의 첫 마음을 낸 이들”(초심학인)을 경각시키는 것이니 뭔가 유장하고 호흡이 깊은 내용을 기대할 법하지만, 의외로 수행자가 지켜야 할 기본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령, <계초심학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夫初心之人은 須遠離惡友하고 親近賢善하야 受五戒十戒等하야 善知持犯開遮니라. 但依金口聖言이언정 莫順庸流妄設이어다.

무릇 처음 불문에 들어온 사람은 모름지기 나쁜 친구를 멀리하고 어질고 착한 이를 가까이하며, 오계와 십계 등을 받아서 지키고 범하고 열고 막을 줄 알아야 하느니라. 다만 부처님의 거룩한 말씀을 의지하고 어리석은 무리의 허망한 말을 따르지 말라.(12, 16)

너무나 당연하며, 누구나 쉽게 실행할 수 있을 듯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나쁜 친구와 좋은 친구를 분별하기는 어려우며, 계를 받아 지키고 범할 줄 아는 것 또한 어려우며, 부처님의 거룩한 말씀과 어리석은 무리의 허망한 말을 구분하기도 어렵다. 깨달은 자의 안목으로야 낱낱이 매순간 분명할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 자의 안목으로는 꼬아놓은 새끼줄이 뱀으로 보일 수 있듯이, 허망한 말이 거룩한 말씀처럼 보일 수도 있으며 황금의 입이 어리석은 무리의 주둥이처럼 보일 수도 있다.

<계초심학인문>의 문장들은 이렇듯 너무나 당연한 말들로 가득한데,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말들로 가득한데, 가만가만 들여다보면, 어느새 아득한 차원이 열린다. 그러니, “항상 부드럽고 화목하고 착하고 온순할 것”, “아만을 부려 잘난 체하지 말 것”, “나쁜 말로 사람을 상하게 하지 말 것”, “동료를 업신여기거나 속여서 시비하지 말 것”, “할 일 없이 다른 사람의 방이나 집에 들어가지 말 것”, “은밀한 처소에서 구태여 남의 일을 알려 하지 말 것” 등등, 누구나 언급할 만한 말들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이 말들은 큰 스승이 정신적 절정에 오른 뒤 초심을 가진 이들에게 얼굴을 돌려 이른 말씀임을 명심하고 깊이 음미해야 한다.

따라서, <계초심학인문>에는 유장한 사유의 궤적도 보이지 않으며, 빛나는 황금의 비유들도 보이지도 않으며, 감동적인 수행담도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마음가짐과 생활자세가 있다. 만일 그것이 없다면 그 어떤 사유의 궤적도 유장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황금의 비유도 빛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수행담도 감동적이지 않을 것이다. 거꾸로 말해, 불교의 고준한 가르침들은 그것을 떠나서는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눌은 “첫 마음을 낸 이들”(初心之人)을 향하여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 즉 그 어떤 고준한 가르침보다 고준한 가르침, 가장 절실한 가르침을 고구정녕 일렀을 것이다.

공부하는 처소에 있을 때에는 사미와 함께 지내는 것을 삼가며, 인사 차리느라고 오가는 것을 삼가며, 다른 사람의 잘잘못을 참견하는 것을 삼가며, 문자만을 너무 구하는 것을 삼가며, 잠을 정도에 지나치게 자는 것을 삼가며, 속된 반연에 꺼들려 산란함을 삼갈지어다.(39)

너무나 기본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건만, 참으로 통렬한 금언들이다. 속세, 그 거대한 유희의 세계를 영단하고자 불문에 첫걸음을 내딛었던 초심자 시절을 생각하면, 지눌의 경계문이야 어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그 첫 마음이 약해지면, 조금이라도 허세에 물들면, 지눌의 경계문만큼 어려운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도스토옙스키의 말처럼, “전 인류를 사랑할 수는 있어도 곁에 있는 한 사람을 사랑하기는 어렵듯이”, 마음으로는 모든 중생을 구제할 수는 있어도 실제로는 곁에 있는 사람의 잘잘못을 참견하지 않기는 어렵다. 왜 그처럼 위대한 일들은 쉽고 사소한 일들은 어려운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허위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계초심학인문>은 바로 그 허위를 가차없이 부순다. 그래서 매우 통렬하다.
 

«초발심자경문»은 지눌의 <계초심학인문>, 원효의 <발심수행장>, 야운의 <자경문>을 합해 놓은 책이다. 그러니까 이 세 글의 제목들에서 “초”자와 “발심”, “자경문”을 각각 취하여 서명을 지은 것이다. 지눌의 <계초심학인문>이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매우 자상하고 구체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원효의 <발심수행장>은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촌음을 아껴 수행할 것을 당부하는 글이다:

喫甘愛養 此身定壞 著柔守護 命必有終
助響巖穴 爲念佛堂 哀鳴鴨鳥 爲歡心友
拜膝如氷 無戀火心 餓腸如切 無求食念
忽至百年 云何不學 一生幾何 不修放逸

좋은 음식 먹고 몸을 돌봐도 끝내 죽고 마는 몸, 비단으로 감싸줘도 이 목숨 길이 살지 못하는 것이니, 메아리 울려오는 바위 동굴로 염불하는 법당을 삼고 슬피 우는 새소리로 마음을 즐겁게 하는 벗을 삼을 것이니라. 절하는 무릎이 얼음처럼 차더라도 따뜻한 불 생각 말고 주린 창자가 끊어질 것 같더라도 밥 생각을 말 것이니, 백 년 세월 훌쩍이니 안 배우고 어이하며 한평생이 얼마기에 닦지 않고 방일할까?(66-67)

위의 인용문에서 보다시피, <발심수행장>은 제자를 거침없이 막다른 곳으로 내몬다. 더구나 사사조의 시문이어서 급박하고 절박한 울림을 준다.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이 몸은 홀연히 흩어져 버리는 것이라 오래도록 머묾이 보장되지 않는 것, 오늘이 저녁인가 했더니 어느새 아침이 오는구나.”(77) 사실 엄격히 따져보면, “홀연히 흩어지는 것,” 아무렇지도 않게 끝날 수 있는 게 바로 삶이다. 별다른 일 없이 아침이 오듯, 별다른 일 없이 죽음이 다가올 수 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아무런 준비도 못한 채, 마치 평범한 아침이 오듯 죽음이 올 수 있다. 그래서 죽음은 그토록 충격적인 것이며 그래서 죽음은 너무나 어이없는 것이다. 죽음만큼 비극적이면서도 희극적인 것은 없다. 그러므로 방일하지 말고 수행하라는 것, 더구나 세월은 얼마나 빠른가!

시간, 시간이 옮겨가 밤낮이 빨리 지나가며, 하루, 하루가 옮겨가 보름과 그믐이 빨리 지나가며, 다달이 옮겨가 홀연히 해가 가고 해가 오며, 한 해, 두 해 옮겨가서 잠깐 사이에 죽음의 문에 이른다. [...] 얼마나 살 것이기에 닦지 아니하고 헛되이 밤낮을 보내며, 헛된 몸이 얼마나 살아 있을 것이라고 일생 동안 수행 한 번 아니하는가? 몸은 반드시 죽고 마는 것이니 죽은 다음에 받는 몸을 어찌할 것인가? 급하지 아니한가, 생각할수록 급하지 아니한가?

원효는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사정없이 몰아부친다. <발심수행장>은 마치 전투의 평원을 향해 달리는 말을 더욱 화급하게 몰아치는 채찍과도 같다. 세 글 중에서 가장 짧지만 가장 강렬하다.
 

“말법의 시대가 되어 성인이 가신 지는 오래되고 마魔는 강해지고 법法은 약해지고, 사람들이 간사하고 사치한 이가 많아서 수행을 이루는 자는 적고 실패하는 이가 많으며, 지혜로운 이는 적고 어리석은 이가 많아서 스스로 도는 닦지 않고 남을 괴롭히나니, 무릇 도를 닦지 못하게 하는 인연을 이루 말할 수 없느니라.”(100) — 이와 같은 말법의 시대에, 흔들림없이 수행의 길을 가겠다는 각오로 쓴 것이 야운의 <자경문>이다. 그는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부르고는, “그대가 길을 잘못 들까 염려하여 내 좁은 소견으로 열 가지 문을 지어 경책”(100)한다. 그러니까 스스로를 향한 열 가지 경책이 <자경문>의 주요 내용을 이룬다. 그 중 일부 내용을 단편적으로 소개한다:

부드러운 옷과 맛있는 음식을 받아쓰지 말라.(105)

사흘 동안 닦은 마음은 천 년의 보배가 되고 백 년 동안 쌓은 물건 하루 아침 티끌이 되고 마느니라.(110)

입은 화의 문이니 반드시 엄격히 지켜야 하고, 몸은 재앙의 근본이니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 자주 나는 새는 그물에 걸릴 위험이 있고 가벼이 날뛰는 짐승은 화살 맞을 재앙이 없지 않느니라.(114-115)

새가 쉴 적에 반드시 숲을 가리고 진리를 배우는 사람은 스승과 벗을 선택한다.(119)

일생을 헛되이 보낸다면 만겁에 한이 될 것이다. 덧없는 세월은 찰나와 같으니 날마다 놀라 두려워할 것이며, 사람의 목숨은 잠깐이니 실로 늘 보존되는 것이 아니니라.(123)

밖으로 나타난 위의는 존귀한 것 같으나 수행해 얻은 바가 없으면 썩은 배와 같으니라.(129)

비록 어두운 방에 혼자 있을 때라도 큰손님을 맞이한 것처럼 하고(134)

사랑을 덜어 내고 부모를 떠난 것은 법계가 평등한 탓이니 만약 친소가 있다면 마음이 평등하지 못한 것이다.(148)

하나같이 귀한 경책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어 늘 곁에 두고 스스로를 지키는 문으로 삼을 만하다.
 

«초발심자경문»의 번역본은 여럿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번역본들을 평가할 만한 입장은 아니기에 번역에 관하여는 달리 할 말이 없지만, 지안스님이 번역하고 강설한 «처음처럼»(조계종출판사, 2009)만큼 세련된 편집본은 없을 듯하다. 단락별로 원문을 큼직하게 앞세우고, 조그만 글씨로 음과 현토를 달았다. 그리고 번역문, 강설, 주가 뒤따른다. 강설과 주는 번잡하거나 과도하지 않으며, 일목요연하다. 단정하고 깔끔한 편집이 더욱 일목요연한 인상을 주고 있을 것이다. 조계종출판사에서 참불서시리즈로 처음 간행한 것이라 하니, 이 시리즈물이 기대가 된다.

제목을 “처음처럼”이라고 한 것을 보니 역시 수행자가 수행자의 세계를 잘 아는 것인가 보다. 출가자들이 강원에 들어가 처음 배우는 것이 다름아닌 «초발심자경문»이다. 어느 스님의 회고에 따르면, 대학원에서 경전과 어록을 쉴새없이 읽어제꼈는데, 막상 출가하여 강원에 들어가니 얼마 되지도 않는 문장으로 몇 주, 몇 달을 끄는 것에 처음에는 적응하기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이것이 학자와 수행자의 차이라면 차이겠는데, 수행자에게 «초발심자경문»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하나의 숨결이요 하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어두운 방에 혼자 있을 때 큰손님을 맞이한 것처럼” 생활하지도 못한다면 그 글귀를 읽어제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빛나는 글귀, 빛나는 문장은 삶에 있는 것이지 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불문에 들어선 “초심”과 «초발심자경문»의 만남은, 그래서 더욱 신선할 것이다. 어디선가 들은 말들이지만, 언젠가 읽어본 문장들이지만, 초심지인(初心之人)에게, 발심한 자에게, 언어와 사고의 유희를 벗어난 이들에게, 그 문장들은 경이롭고 새롭다. 그리고 그 문장들은 거의 암기할 지경에 이르기까지 느리게 느리게 강설된다. 그것은 삶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발심자경문» 한 권만 똑똑히 배우면 평생 중노릇 잘할 수 있다.”(5)

그러니 우리나라 수행자들에게 «초발심자경문»은 “첫 마음” 바로 그 자체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소위 “말법의 시대”를 살아가는 동안 언제나 정신적 고향으로 회고될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을 이루는 이가 적을수록, 지혜로운 이가 적을수록, 강물 위에 썩은 배가 즐비할수록, 더욱 “처음처럼”을 되새길 일이다. 그 아름다운 말, “처음처럼”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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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기쁨 사바세계에 가득
조영숙 / 민족사 / 1998년 4월
평점 :
품절


수행자의 삶은 등잔이 없는 불꽃과 같고 뿌리가 없는 연꽃과 같고 자취가 없는 새와 같아 그 생애를 복원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형식의 평전 역시 불가능하다. 예로부터 행장과 어록의 형태로만 수행자의 전기적 삶이 희미하게 전해질 뿐 그 이상의 기록이 거의 없는 것도, 그 삶이 훨훨 타오르는 불꽃과도 같아 뭔가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말과 글을 경계하는 세계에서, 움직이는 몸뚱어리의 앞뒤를 캐묻고 따지고 기록하는 것은 무의미하기까지 하다. 역사학적 비평에 의한 평전이 큰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것은, 이렇듯 수행자의 삶이 시간에 갇혀 있지 않으며, 행위에 갇혀 있지 않으며, 말과 글에 갇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고승들의 경우에랴.

조영숙의 «법의 기쁨 사바세계에 가득»(민족사 1998)은, 부제처럼, “법희선사, 그의 생애와 禪”을 다룬 일종의 전기라고 할 수 있다. 진작부터 구입하여 읽고 싶었으나, “선사”와 “전기”라는 어울리지 않는 결합 때문에 일년은 머뭇거린 듯하다. 그전에 고승들의 생애를 다룬 책들을 접하고 실망한 기억이 있어 이번에도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심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법희라는 커다란 산의 그늘은 깊되 관련 자료는 다른 아무 것도 없어 마침내 이 책을 구입했다.

법희스님을 알거나 가까이 모시고 살았거나 한 번이라도 만났던 이들은 한결같이 스님의 깊은 눈에 빛을 내쏘는 듯한 안광(眼光)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마주선 이의 속을 투명하게 꿰뚫는 눈빛, 조용하고 정결한 움직임, 언제나 선정에 들어 있어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모습을 한 스님에게서는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귀의하게 하는 숭고함이 배어 나왔다고 한다.(47)

“마주선 이의 속을 투명하게 꿰뚫는 눈빛, 조용하고 정결한 움직임” — 책 서두에 있는 이 표현에서 나는 작가의 역량에 대한 의심을 온전히 거두었다. 도인을 누구나 알아볼 수는 없듯, 작가라고 해서 누구나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발문을 쓴 승혜스님의 글에 따르면, 1968년에 자신을 포함하여 학인들이 처음 법희스님을 뵙고 “너무나 평범한 모습 그 자체”에 다소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용납한 듯 깊고 그윽한 기품과 부단한 수행을 닦은 결과 저절로 발현되는 노스님의 성스러움을 알아차리는 데 근 2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4)고 고백한다. 도인은 진정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던가. 그리고 범인은 도인을 보면 비웃는다고 하던가. 불문에 들어선 수행자도 도인의 면목을 알아보는 데 20년이 걸렸다는데, 나같은 범인이야 도인을 만난들 무심코 지나치고 말 것 아니겠는가.




[심우장에 전시되어 있는 만해스님의 오도송 필묵의 각자. 이 오도송과 관련하여 법희스님이 만공회상에서 한 마디 일렀다.]

 

내가 법희스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만해스님의 오도송과 관련한 일화 때문이었다. 현재 심우장 내에 전시되고 있는 만해스님의 필묵을 보면 오도송의 마지막 구절은 “雪裡桃花片片飛”인데 «한용운 전집»에는 “雪裡桃花片片紅”으로 다르게 실려 있었다. 궁금하여 자료 조사를 해보았더니, 만공스님이 “飛”자를 “紅”자로 고치는 게 어떻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공법어»를 살펴보니, 마침 이 오도송과 관련한 선화(禪話)가 있었다.

서울에 있는 만해 한 용운 스님이 오도송을 지어 와서 이르되,

남아가 이르는 곳마다 다 내 고향인데,
몇 사람이나 객의 수심 가운데 지냈던고!
한 소리 큰 할에 삼천 세계를 타파하니,
설한에 도화가 조각조각 날으네.

스님이 반문하여 이르되, “날으는 조각은 어느 곳에 떨어졌는고?” 하였다. 용운 스님이 답하여 이르되, “거북털과 토끼 뿔이로다.” 하였다.

스님이 크게 웃으며 다시 대중에게 이르되, “각기 한 마디씩 일러라” 하니, 법희 비구니가 나와서 이르되, “눈이 녹으니 한 조각 땅입니다.” 하거늘, 스님이 이르되, “다만 한 조각 땅을 얻었느니라” 하였다.

— «만공법어»(덕숭총림 1986) 134면

만공스님이 만해스님의 오도송을 들려준 뒤 대중에게 한 마디 이르라고 했을 때, 한 스님이 나와 “눈이 녹으니 한 조각 땅입니다.”는 일구를 내놓았다. 나는 그 한 마디에 놀랐고, 또 만공과 만해라는 거인들 사이에 한 마디 내놓은 분이 비구니 스님이라는 것에 놀랐다. 그분은 누구일까? 그러나 그분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없었다. 그저 이야기로만 전할 뿐.

자연인 그대로의 맑은 삶. 그 자체로 많은 수행자들을 교화한 법희선사. 그의 흔적은 어느 곳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선사의 삶을 따르고 그분의 수행을 흠모하던 이들의 기억 속에서 오늘까지도 빛을 발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빛은 내 가슴 속에서 오래도록 꺼지지 않고 남아 한 가닥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렇듯 훌륭한 삶이 머지않아 잊혀질 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이었다. 그분의 이야기를 내게 해주던 스님도 그것을 못내 애석해하였다.

선사를 기억하는 이들이 세상에서 사라진 후에도 그분의 아름다운 삶이, 지나가는 시간 속에 묻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치졸한 필치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생애를 글로 옮겨 보았다.(9)
 

우리 옆에 너무나도 조용히 왔다 갔던 훌륭한 도인을 이렇게라도 남겨서 전하지 않는다면 머지 않아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는 염려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47)

이렇게 해서 «법의 기쁨 사바세계에 가득»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작가는 만공어록에 실려 있는 법희선사의 선화 몇 가지, 탄허선사가 쓴 비문, 그분을 가까이 모셨던 분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그분의 생애를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남들의 전언에 따른 생애의 복원은 요원한 일이며, 특히 수행자의 전기적 생애를 기록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이 책은 일반적인 전기와는 달리 문헌자료를 토대로 한 전기적 생애가 주를 이루지는 않으며, 그분의 수행과정과 선화,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감화받은 이들의 증언이 중심이다. 그리고 그분의 구도의 일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선불교적 전통과 가르침들이 밑그림으로 많이 보태졌다. 선불교 전통에 대한 설명 내용은 익히 알고 있는 터라 특별히 주목할 것은 없었지만, 법희라는 인물을 둘러싼 시대적 배경과 기라성 같은 주변 인물들과의 교유, 후학들의 존경과 증언 내용은 법희선사의 일면모를 그려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책에 밝혀진 자료들을 토대로 유추해 보니, 법희스님이 만해스님의 오도송과 관련하여 한 마디 일렀던 때는 놀랍게도 서른을 갓 넘은 젊은 시절이었다. 속된 편견으로 말하자면, 서른 초반의 여자인 것이다. 서른 초반의 여자, …, 놀랍지 않은가?

전기는 법희스님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다. 서너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여덟 살 때 어머니를 여읜 어린 소녀.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읜 것이 한 사람의 생애를 어떻게 조율하는지 나는 안다. 나 역시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여덟 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그 막막함, 내가 무너질 때 나를 받쳐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그 절망감. 여덟 살의 아이가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기억. 그 어둡고 광막한 하늘이 어쩌면 그토록 내 마음과 흡사하던지, . . . 나는 아직도 중고등학교 시절보다 초등학교 어린 시절의 일들이 더 정확하게 기억난다. 아마도 그 기억들이 나를 지금과 같은 종교적 인간으로 이끌었는 지도 모르겠다.

법희스님의 수행과정을 읽어가다 보니 내가 어린 시절에 올려보았던 밤하늘이 자꾸만 떠오른다. 아마도 그 밤하늘과 같은 거대한 침묵이 희노애락에 물들지 않는 삶, 그림자 같은 생활을 선사했을 것이다. 남에게 최대한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조심스런 자세, “조용하고 정결한 움직임”, 그리고 안목을 갖춘 뒤에도 대중들의 눈에 띄지 않는 변함없는 생활.

그 날 이후에도 법희의 생활은 예전과 다름없었다. 달라진 것은 그의 눈빛이었다.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더욱 깊어진 눈빛은 맑고 밝았다. 하루 일과를 보내며 잠시도 부질없는 것에 마음 가는 일이 없었으며 일상에 반드시 필요한 말 이외에는 거의 묵언으로 지냈다. 그에게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아는 이는 어른스님 두어 명에 불과했다.(178)

만공스님이 법희스님에게 전법게를 내린 것은 법희스님 나이 서른의 일이다. 만공스님은 전법게를 내리면서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이제부터 자네는 오후(悟後) 수행에 전념하고 금생에는 어느 자리에서나 법을 설할 생각 말게나. 요즘 사람들은 용심이 지나쳐 시기하는 자가 많으니 자네의 시절인연이 그런 줄 알고 내 말을 잊지 말도록 하게.(201)

시절은 1916년, 나이 서른의 비구니 스님. 만공스님의 당부대로 법희스님은 평생동안 단 한 번도 법석에 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그분의 법문도 없고 그분의 어록도 전하지 않는다. “법희선사는 스스로 남긴 기록이 아무것도 없다. 오도송도 열반송도 법어도 남아 전해지는 것이 없으며, 유별난 행적도 특기할 만한 일례도 없다.”(46) 작가의 표현대로, “그림자조차 거두어 가버린, 자신의 자취를 철저히 지워 버린 법희스님의 일생”(47)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은 매우 열악한 집필조건에도 불구하고, 소설처럼 작가의 감정을 개입시키는 바 없이, 증언을 토대로 그분에 대한 존경의 념을 품고 전기를 집필한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덕분에, 조용히 와서 조용히 그림자마저 거두어 가신 자리를 그려볼 수 있었다.

그림자마저 거두어 가버린 일생인 만큼 독자들은 이 책에서 구체적인 전기를 기대할 수는 없겠으나 그와 반비례로 감화는 더욱 클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전기적 사실은 잘 기억나지 않고 법희선사의 면모만 선명하게 남는다. 그분의 고요하고 정결한 움직임을 그려보면서 오늘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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